‘빅리그’로 경쟁 부추기면 개그 전성시대 다시 열릴까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9.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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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에서 상금 걸고 개그맨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련…‘막강’ 출연진 확보

▲ KBS ⓒKBS 제공

개그 전성시대는 과연 다시 올 것인가. 최근 개그계에 부는 바람이 심상찮다. 그 진원지는 tvN에서 시작하는 <코미디 빅리그>라는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를 만들었던 김석현 PD가 CJ E&M으로 이적해 첫 출사표를 던진 이 프로그램은 애초부터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버금가는 ‘나는 개그맨이다’를 표방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정작 김석현 PD는 ‘나가수보다는 <뮤직뱅크>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즉 ‘나가수’처럼 관객이 평가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떨어뜨리는 서바이벌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한 시즌 동안 총 10회가 방영되는데, 각 회의 합산 점수로 최종 우승자가 가려지는 식이다. 개그맨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대목은 상금이 있다는 것이다. 1등이 1억원이고 2위와 3위도 각각 5천만원, 2천만원을 받는다. 물론 1억원이라는 상금은 총 10회로 나누면 회당 1천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닌 팀으로 돌아간다고 보면 실제 상금은 더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생활고를 느끼고 있는 개그맨에게 이 액수는 다른 방송을 통해 얻었던 출연료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코미디 빅리그>의 출사표가 흥미로운 것은 물론 이런 서바이벌 형식이나 상금 때문이 아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개그맨의 면면이다. <코미디 빅리그>에는 박준형·정종철·유세윤·장동민·유상무·오지헌·안영미 같은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은 물론이고, 김미려·전환규·이국주 같은 MBC <개그야> 출신 개그맨, 또 김기욱·윤택·김형인 같은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출신 개그맨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상파라면 상상하기 힘든 출연진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개그맨들, ‘부자유’스런 현실 벗어나는 계기 삼아

▲ 의 ‘생활의 발견’ 코너 ⓒKBS 제공

여기에는 tvN이라는 케이블 채널이 가진 매체적 장점이 자리한다. 지상파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지상파 출연은 전속제가 없음에도 일종의 배신이자 이적으로 비쳤다. 하지만 케이블은 지상파와는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점에서 방송사의 거부감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방송사가 이를 그대로 용인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코미디 빅리그>에 나간다는 것 때문에 그동안 출연했던 방송사로부터 불이익이 예고된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솔솔 흘러나온다. 이미 자신을 뽑은 한 방송사에만 출연한다는 이른바 개그맨 전속제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 들어갔을 때 이른바 ‘괘씸죄’가 적용되는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08년에도 <개그콘서트>의 간판이었던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이 <개그야>로 옮겨갔을 때 그들을 보는 시선이 ‘배신자’를 바라보는 듯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의 ‘집단 배신(?)’이 가능했던 데는 케이블이 가진 장점 이외에, 같은 개그맨으로서 갖고 있는 공감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미려와 전환규는 “MBC에서 제명될 각오로 왔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물론 농담이 섞인 것이지만, 그 속에는 뼈가 들어 있는 셈이다. 붙잡고는 있지만 어떤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방송사에 대한 나름의 항변이 거기서 느껴진다. <코미디 빅리그>의 진행을 맡게 된 이수근은 “가수와 연기자는 방송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노래하고 연기하는데, 왜 개그맨만 한 방송사에서 웃겨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반문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방송사는 과연 개그맨을 전속처럼 묶어둘 만큼 대우를 해주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들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 아닐까. 만일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못하면서 방송을 빌미로 개그맨을 붙잡아둔다면 이것은 <개그콘서트> 같은 경쟁 시스템의 오용이 되는 셈이다. 잔인할 수도 있는 경쟁 시스템으로 붙들어놓고 빼먹을 것은 다 빼먹으면서 생계 보장을 해주지 못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시스템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쟁 시스템은 좀 더 나은 개그의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지 개그맨을 활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김석현 PD는 “원래 있던 회사들이 개그맨에게 큰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쪽보다 내가 제시하는 비전이 더 클 것이다. 개그계의 환경을 바꿔보고 싶다”라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즉, <코미디 빅리그>라는 프로그램 속에는 현행 시스템이 갖고 있는 불합리한 점과 한계를 넘고자 하는 개그맨들의 속내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바이벌 개그 무대는 <개그콘서트>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연기와 합으로 짜인 콩트 개그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자 개그가 결정했던 독한 선택, 그 경쟁 시스템 말이다. 일주일 내내 고생해서 준비해도 관객으로부터 반응을 얻지 못하면 잔인하게 편집되고 말았던 서바이벌 개그 무대는 어쩌면 그래서 개그맨에게는 익숙한 전장인지도 모른다. 개그맨들은 당시 개그의 전성시대가 바로 그 시스템의 칼날 위에 서서 기꺼이 춤을 췄던 개그맨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개그맨 스스로도 그들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방송사에 귀속되기보다는 좀 더 새로운 ‘틀’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도 갖고 있다. 그러니 마치 이 개그 무대의 통합 리그전 같은 <코미디 빅리그>가 김석현 PD의 말대로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결코 섣부른 것이 아니다.

▲ SBS ⓒSBS 제공

흥미로운 것은 케이블 방송에서 개그 프로그램으로 자체 제작 예능 쇼의 영역을 확장하자, 공중파인 SBS에서도 이제 <웃찾사>가 꺼진 불을 다시 헤집어 불길을 만들려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그콘서트>의 독주 속에서 자체 시스템의 문제와 편성의 실패로 사라져버렸던 <웃찾사>의 부활은 <코미디 빅리그> 같은 새로운 개그 프로그램의 시작과 함께 개그계 전반에 활력을 줄 가능성이 크다. 10월부터 방영될 예정인 <웃찾사 2>에서 특이한 사항은 제작진 스스로 ‘사회성 짙은 개그’를 보여줄 것이라 공표했다는 점이다. 과거 <웃찾사>에서는 ‘부족한 사회성’이 늘 약점으로 지목된 적이 있다. 현실 공감 포인트를 잃어버린 개그가 맥락 없는 말장난이나 몸 개그로 흐르면서 상대적으로 사회 풍자가 강했던 <개그콘서트>와 늘 비교되었다. 즉, <웃찾사 2>의 풍자 개그 지향 발언은 <개그콘서트>와의 한판 승부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개그맨 옥죄기만 하는 장치 될 수도 있어

한편 상대적으로 MBC의 움직임은 없는 편이지만 <웃고 또 웃고>의 ‘나도 가수다’라는 코너가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이다. 물론 이 코너의 힘은 그 패러디 대상인 ‘나가수’에서 비롯된 바가 크지만, 심지어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는데도 이토록 화제가 되는 것은 그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MBC가 자정 시간으로 밀쳐버린 개그 프로그램을 먼저 되살릴 가망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만일 <코미디 빅리그>가 개그쇼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SBS의 <웃찾사 2>가 <개그콘서트>와 경쟁하는 구도를 갖게 된다면 MBC로서도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편성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개그계에 새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확실하다. 유명 개그맨을 끌어모아 야심차게 시작한 <코미디 빅리그>가 어떤 성적표를 보여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새로 시작하는 <웃찾사 2>와 비교당하면서 개그쇼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결국 개그맨들에게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새로워진 시스템이라고 해도 그 시스템 위에서 한바탕 마음껏 개그를 펼칠 수 있는 개그맨의 처우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상황은 늘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경쟁 시스템은 개그맨을 주목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옥죄기만 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개그 전성시대가 다시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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