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화물기의 진실 언제나 건져올릴까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1.10.1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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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부인 성씨 “밝혀진 것 없는데 집에 돌아갈 수 없다”

▲ 지난 7월28일 추락한 아시아나항공 소속 화물기와 함께 실종된 최상기 기장의 부인이 인터뷰 도중 울먹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7월28일 오전 3시55분, 중국 상하이 공항 관제소에 “cargo fire emergency(화물에 불이 붙은 비상 상황)”라는 교신이 날아들었다. 인천을 떠나 중국 상하이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보잉747 화물기로부터였다. 화물기는 곧 레이더망에서 사라졌고, 결국 제주공항 서남쪽 1백29km 해상에 추락한 채로 발견되었다. 기체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바다에 흩어진 상태였다. 탑승했던 최상기 기장(52)과 이정웅 부기장(43)의 행방 또한 묘연했다. 안타까운 사고였다.

그런데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최기장을 둘러싼 의혹이 언론을 중심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고 한 달 전 최기장이 일곱 개의 보험에 들었다” “최기장의 채무가 15억원이 넘는다”라는 의혹이 잇달아 보도된 것이다. 그러자 ‘빚에 쪼들린 나머지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최기장에게 쏠렸다.

그로부터 70여 일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현재 제주도 남해상 바다에서 사고기 인양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자연히 블랙박스도 회수하지 못해 사고 경위는 지금껏 오리무중이다.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자살 의혹’의 대상이 된 최기장의 가족들은 상심의 시간을 보내며 최근에는 아시아나항공측과도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지난 10월11일 최기장의 아내 성연정씨(가명·51)를 만났다.

사고 한 달 전 한꺼번에 일곱 개의 보험에 들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최기장이 보험금을 노리고 이번 사고를 계획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개의 보험을 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올해 보험 두 개가 만기가 되어 새로 보험에 들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남편과 친분이 두터운 지인 세 명의 권유를 받아 일곱 개의 보험을 들었다. 보험 일을 하는 지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마침 새로 보험이 필요한 상황과 겹치면서 여러 개를 들게 된 것이다.

최기장이 15억원이 넘는 채무에 시달렸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현재 빚은 1억7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남편의 수입을 고려하면 충분히 갚아 나갈 수 있는 액수였다. 사실과 너무나 다른 보도를 접하고 언론이 참 무섭다고 느꼈다.

가족들이 모르는 채무가 있을 가능성은 없나?

우리 집 재산은 내가 직접 관리했다. 혹여 그런 채무가 있을까 해서 금감원을 통해 알아보려 했는데, 아무리 가족이라도 당사자의 사망 신고가 접수되기 전까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가족조차도 접근할 수 없는 개인정보를 도대체 누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인가.

아시아나항공측과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사고가 발생한 다음 날, 아시아나항공은 지방에 거주하는 우리를 회사 인근의 호텔에서 지내도록 배려해주었다. 간절히 수색 소식을 기다리며 그곳에서 두 달을 보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다. 생사 여부를 증명하는 물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가족들에게 할 만큼 했다”라며 그만 (호텔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사고 발생 이후 어느 하나 밝혀진 것이 없는데 그냥 집에 갈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이 반발하자, 회사는 호텔측과 이야기해보라며 일방적으로 손을 떼려 했다. 이런 과정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말들을 수차례 들었다.

어떤 말이었나?

 “이렇게 더 계셔도 드릴 것을 안 드리거나 안 드릴 것을 더 드리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남편의 구두 한 짝이라도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마치 더 많은 보상을 노리고 그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불쾌했다. 또 “(사고 원인을) 확인해봐야 안다. (창고에) 불이 났다는 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이 사고가 100퍼센트 회사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나.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 일이고, 나중에 받을 것이 보상금이 될지, 위로금이 될지 모른다”라는 말도 했다. 사고 원인이 남편에게 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고 느껴졌다.

“남편의 명예 우리가 찾겠다” 회사에 반감

▲ 제주해경 경비 함정인 1502함이 제주항으로 싣고 온 아시아나항공 소속 보잉747 화물기의 잔해. ⓒ연합뉴스

성씨는 “처음에는 회사를 믿으려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가 나약하게 있으면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최기장의 가족들은 머무르던 호텔 인근의 한 모텔로 거처를 옮긴 상황이다. 이곳에 머물며 수색 작업을 주시하는 한편 최기장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일단 숙박료를 아시아나항공측에서 제공하고 있기는 하나, 이것 역시 일주일의 시한을 두고 이루어진 타협일 뿐이라고 한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측에서는 최기장 가족의 반발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원하는 만큼 안 된 부분이 있어 서운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회사측 관계자는 “사고 후 7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수색에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회사 근처의 호텔을 제공하는 것에 명분이나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10월8일까지만 호텔을 제공하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사전에 충분하게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에 대해 불쾌한 언급을 들었다는 가족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고 원인과 관련한 공식적인 답변은 사고조사위원회로 일원화되어 있다.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는 당사가 공식적으로 어떠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해명했다.

가족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70여 일 동안 수색했지만 블랙박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체 인양도, 조사를 총괄하는 국토해양부 산하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맡아 진행하고 있다.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해역이 조사를 진행하기에 열악한 곳이다. 파도가 세고 조류가 빠른 한편 수중 시야도 매우 좁아서 탐색이 매우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비행기 잔해의 수거율은 대략 10% 정도이다”라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를 보아도 항공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 1~2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기체 인양 작업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 까닭에 회사측에서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측은 “작업은 전적으로 조사위 소관이고 조사를 진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우리와 국토해양부에서 공동으로 부담한다. 지금 현재로서는 (우리가) 얼마의 비용을 내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최기장의 가족들은 지금 진행되는 수색 작업이 중단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아들 최영훈씨(가명·25)는 “사고의 원인이 밝혀져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기를 절실하게 바란다”라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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