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다큐 경계 허문 ‘리얼리티쇼’ 열풍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10.3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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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정글의 법칙> 등 호평…‘진실’ 효과적으로 보여줘

▲ SBS (사진 왼쪽) | SBS (사진 오른쪽) ⓒSBS

<짝>은 예능일까, 다큐일까. 처음 이 프로그램은 SBS 교양제작국에서 1회적인 아이템으로 기획되었고, 만들어졌다. 그러다 고정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대중 정서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짝>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는 대중이 많다. 포털이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 추이를 ‘예능에서 몇 위’로 분류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이 예능처럼 웃음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자못 진지하고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거의 예능 프로그램에 보여주는 것만큼 뜨겁다. ‘남자 ○호가 여자 ○호를 선택했고,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인터넷을 가득 메운다. 도대체 예능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큐적인 교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는 무엇일까.

▲ SBS ⓒSBS
최근 들어 이렇게 정체성이 모호한 프로그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근 시작된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김병만의 ‘달인’ 캐릭터를 기대했던 많은 시청자는 <정글의 법칙>이라는 제목에서 타잔을 패러디한 <조지 오브 정글> 같은 코미디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예상을 뒤집었다. 집도 없고, 음식도 없는 아프리카의 오지에 떨어진 김병만과 리키 김, 류담과 광희는 그들끼리 생존해야 하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악어가 출몰하는 곳에서 잠을 자기 위해 집(그것을 집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을 짓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잡은 물고기를 끓여 죽처럼 조금씩 마시며 버티는 상황. 웃음은 쏙 들어갔고 대신 처절함만 전면에 부각되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김병만은 급기야 리키 김과 의견 대립을 일으켰고 광희는 힘겨운 상황 속에 눈물을 터뜨렸으며, 류담은 육체적인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예능으로 생각했는데 다큐더라’라는 의견이 시청 후기의 대부분이다.

이 프로그램들이 예능과 다큐 사이에 걸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그것이 이른바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서구에서 본격화된 리얼리티쇼 바람은 지금까지도 그 열풍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 서구에서는 거의 모든 소재가 리얼리티쇼에서 실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월스트리트 시위조차 리얼리티쇼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을 정도이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실제로 MTV 리얼리티쇼인 <더 리얼 월드(The Real World)>에서 반월스트리트 시위대에게 출연을 제안했고, 이것이 프로그램화될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그만큼 리얼리티쇼 형식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그것이 거대 담론이든, 아주 일상적인 것이든)을 모두 프로그램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양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본래 ‘리얼리티쇼’가 예능처럼 꾸며진 형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한 분파에서 실험적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다큐적인 카메라가 지금껏 예능이라는 견고하게 굳어져 있던 틀을 파고들어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방송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 SBS (사진 왼쪽)  ⓒSBSMBC (사진 오른쪽) ⓒMBC

교양다큐 출신 인력들이 예능 프로그램 맡아

▲ SBS ⓒSBS
이것은 이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는 인력들이 교양다큐 출신이라는 점에서 명확해진다. <짝>을 연출하는 남규홍 PD는 <인터뷰게임>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었고, 지난해에는 <SBS 스페셜>에 신년 특집 다큐멘터리 <출세만세>를 연출하기도 한 전형적인 교양 PD이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는 여느 다큐멘터리나 교양물과는 다른 결이 느껴진다. <인터뷰게임> 같은 경우가 그랬다. 인터뷰라는 엄밀한 다큐의 형식을 가져와 게임처럼 발랄하게 엮어놓은 이 <인터뷰게임>은 어찌 보면 <짝>이라는 프로그램의 전조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한편 <정글의 법칙>은 예능 PD와 교양 PD가 함께 만드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키스 앤 크라이>의 정순영 CP와 교양국의 박두선 CP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생생하고 야생스러운 다큐적 연출과 예능적인 재미를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물론 교양 PD의 예능 진출(?)이 그렇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미 MBC의 <자체발광>은 황당해 보이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시사교양국 PD가 직접 수행하고 프로그램에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최근 종영한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톱밴드>를 연출한 김광필 EP 역시 교양 PD 출신이다.

현실성과 판타지 사이에 놓인 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교양이나 다큐멘터리가 갖는 프로그램적인 성격 탓인지 사람들은 이들 프로그램이 드라마나 예능 같은 타 장르와는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처럼 여기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중은 다큐멘터리가 날것 그대로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인식하지만 실상 다큐멘터리만큼 연출이 중요한 장르도 없다. 이것은 진실을 왜곡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진실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경찰청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은 재연이라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끌어와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고, <한반도의 공룡> 같은 다큐멘터리는 아예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을 가져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교양이나 다큐가 예능과 섞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물론 다큐가 예능과 섞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리얼리티쇼’로 대변되는 방송 프로그램의 리얼 경향 때문이다. 영상의 일상화가 가져온 대중의 높은 식견은 이제 연출된 영상을 구별해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심지어 대중이 제작진의 조작을 영상 편집을 보는 것만으로 밝혀내는 시대가 아닌가. 이러니 연출된 장면이 갖는 효용성은 떨어지게 되었다. 날것의 영상을 가져와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물론 여기에도 편집의 연출은 있게 마련이지만)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예능과 다큐는 섞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 MBC ⓒMBC
따라서 이렇게 대중이 다큐와 예능의 중간 정도를 요구하게 된 상황에서 PD는 혼동을 겪기도 한다. 즉 다큐를 보여주어야 할 지점에 예능을 하려 해서 영상의 일관성을 깨뜨리기도 하고, 거꾸로 예능을 해야 되는 시점에 다큐를 해서 분위기를 경직되게 만들기도 한다. MBC <우리들의 일밤>의 한 코너인 <바람에 실려>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임재범과 일행이 미국 서부 여행을 하며 음악을 만들고 퍼포먼스를 하는 이 프로그램은 애초부터 다큐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임재범이 진짜 잠적해버리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프로그램을 접어야 하는가 하는 상황 속에서도 예능을 하려고 한 PD는 바로 그것 때문에 대중의 눈총을 샀다. 아직까지 리얼리티쇼 형식이 익숙하지 않았던 데서 나온 실수였다. 결국 예능과 다큐의 동거는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현 시점에 당연한 것이지만, 그 결합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얘기이다. 대중들은 현실성을 요구하면서도 어떤 판타지를 꿈꾼다. 예능과 다큐의 결합은 결국 이 양면 사이에 놓인 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아슬아슬하지만 아찔한 이 동거는 과연 대중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연예인 리얼리티쇼’, 예능의 한 장르 될까 

리얼리티쇼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리얼버라이어티쇼가 된 것은 그 일반인의 사생활을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정서적인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은 연예인으로 대체되었고, 사적인 것이 보여지지만 그것은 캐릭터쇼라는 안전한 장치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리얼리티쇼가 점점 부상하면서 연예인이 이 분야로 들어오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즉,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나 임재범의 <바람에 실려>는 그들의 적나라한 맨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리얼리티쇼에 가깝다. 서구에서는 일반인이 출연하는 리얼리티쇼가 대세이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연예인이 등장해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갖는다는 점에서 앞으로 연예인 리얼리티쇼가 예능의 또 한 분파를 형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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