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 된다고?
  • 소준섭│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12.01.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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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편입설 등 우려 많지만, 가능성은 희박…중국에도 실익 없고, 북한도 ‘주체 외교’ 계속할 듯

지난해 12월22일 북한이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신형 화물트럭들이 단둥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는 모습이다. 북한으로서도 후계 구도의 공고화와 안정화를 위해 중국과 밀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코스이다. 북한과 중국의 밀착은 특히 경제 협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11년 5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그해 6월 초 중국과 북한은 나진 특구와 압록강변의 황금평(黃金坪) 개발 착공식을 거행했다. 북한은 중국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한 나선(羅先)경제 무역 지역과 황금평 경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중국인 투자자들의 통신의 자유를 보장하고, 투자 자산의 보호를 인정하는 등 개혁·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중국측을 대폭 배려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북한의 대외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42.1%였고,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9.2%였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북·중 무역의 비중은 갈수록 확대되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북한의 대외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2.7%에서 52.6%로 확대된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38.9%에서 33%로 감소했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의 외국인 직접 투자액에서 중국의 비중은 2003년 0.7%에서 2008년에는 무려 94.1%로 급증했다.

이렇게 북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원자재와 설비는 거의 중국산이 휩쓰는 등 북한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에서 중국이 핵심 역할을 함에 따라 북한의 이른바 ‘자립적 민족 경제’가 붕괴 상황에 이르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대북 경협을 통해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과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진·청진항을 통한 태평양 진출과 우수한 지하자원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북 투자에 적극적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의 대북 직접 투자는 1천2백14만 달러로 2009년보다 크게 늘어났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이 북한에 투자한 금액은 1억1천44만 달러였다.

중국측은 그동안 상사의 형태로 북한과 교류를 해왔지만 최근에는 대형 국영 기업으로 전환되었고, 대북한 투자액의 약 70%가 지하자원 개발 및 관련 인프라를 건설하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대북한 연계 개발 전략에 따라 랴오닝(遼寧) 성의 ‘연해(沿海)경제벨트’와 신의주 일대, 지린(吉林)성 ‘창지투(長吉圖: 지린 성의 성도인 창춘을 비롯해 지린, 투먼의 도시를 연결하는 벨트) 선도구’와 나진·선봉 특구를 연계 개발하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현 시기를 ‘지역 강대국(regional power)’에서 ‘국제적 강대국(global power)’으로 부상하는 과도기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주변 지역,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확대해나가는 것을 전략적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동아시아 전략은 동남아와 동북아의 두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왔다. 이같은 방식은 사실 중국이 과거 역사 시대에 구사하던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었다. 즉, 중국 당나라는 한반도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베트남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했으며, 중국 한나라 시기에는 한반도에 한사군을 두고 베트남에 한구군(漢九郡)을 두었듯이, 전통적으로 동북아와 동남아의 두 방향을 지속적으로 공략해왔다.

현재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은 ‘서부 대개발’과 메콩 강 유역 개발 사업을 연계해 개발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에 반해 동북아 지역에서는 ‘동북 진흥 전략’과 두만강유역 개발 사업의 연계가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북한 개혁·개방 유도하는 데 초점

북·중 국경 도시의 풍경은 양국의 경제력만큼이나 뚜렷이 대비된다. 중국 변경의 작은 도시 단둥에는 압록강변에 20여 층 이상의 고층 빌딩이 즐비하지만(아래), 북한의 주요 도시인 신의주(위)는 기껏해야 4~5층짜리 낡은 건물만이 눈에 띌 뿐이다. ⓒ 연합뉴스
특히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개혁·개방과 북핵 문제의 합리적인 처리는 자국의 동북아 연계 개발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북한은 동북 3성과 주변 지역의 연계 개발 중 해상과 육상 통로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개방 없이는 두만강 유역 개발 사업의 성공이 불투명하다. 또한 나진항과 청진항은 동북 3성의 물류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관문이다. 이 지점에서 북핵 문제는 지역 연계 개발에 필요한 관련국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현 세계에서 북한의 맹방이자 동시에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중국에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된 이래 중국은 줄곧 북한을 자신들을 지켜주는 완충 지대로 파악해왔다. 소련 및 동유럽이 붕괴된 이후에도 중국에 대한 안보 측면에서 북한의 중요성은 감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국가 이익에 기초하고 있다. 즉, 동북아 지역 질서의 재조정이라는 관점하에서 한반도 문제를 ‘관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지킨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본 입장과 이익의 내용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그리고 북한 붕괴의 방지이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가 자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고 인식하고 있다. 

과거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북한과의 특수 관계를 위주로 운용되어왔다.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국일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2백만명의 인민해방군을 파견하고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까지 전사하면서 함께 미국과 맞서 싸웠던 혈맹 관계이다. 양국 관계는 1961년 7월11일 중국과 북한 간에 체결된 군사 조약인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간의 우호 협력 지원 조약’을 법률적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의 교류가 갈수록 확대되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더는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에 고착되어져 있지는 않다. 그러한 차원에서 중국은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상, 한반도의 비핵 지대화, 6자회담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개선을 북한 생존의 첩경으로서 인식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으로 북·미 관계의 정상화가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확대로 귀결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내심 우려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한·중 관계가 실질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나아가 한·중 관계가 미·일 관계를 견제하고 대항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중국은 북한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인 영향력 행사라는 창구 역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미 동맹의 균열 혹은 냉담화(冷淡化)와 주한 미군의 규모 및 역할에서 일정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과연 한·미 동맹 체제에서 냉전 체제를 해체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대한국 정책에서 ‘선이후난(先易後難: 쉬운 것부터 처리하고 어려운 난제는 뒤에 처리한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상호의 공통을 추구하고 서로 다른 견해는 보류한다)’ ‘순서점진(循序漸進: 차례에 따라 점진적으로 추진한다)’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개적으로는, 언제나 한반도 문제가 마땅히 남북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북핵 문제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동시에 경제적 접촉을 강화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2005년께부터 대북한 경제 전략을 ‘위기 관리(crisis management) 전략’에서 ‘적극적 접촉(active engagement) 전략’으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위기 관리 전략에서 중국이 최소한의 지원을 통해 북한 붕괴를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적극적 접촉 전략에서는 북한을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을 전후로 중국은 북핵 문제와 북한 경제 교류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기조를 채택했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이미 김정일 이후의 김정은 후계 구도를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에도 중국의 이러한 대북 정책 기조는 커다란 변화 없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9년 10월5일 방북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작별 인사를 나누며 웃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과 중국의 경제적 밀착 관계는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병합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며, 바로 그 순간 세계를 이끌어가는 세계 지도 국가로서 중국의 입지는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최소한 현 시기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현대의 국제 질서에서 어느 특정 국가가 다른 국가를 강제로 편입 혹은 흡수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중국으로서도 북한을 편입시켜서 얻을 것이 없고 반대로 그로 인해 입게 될 국가 이미지의 막대한 타격 등 결정적으로 잃을 것만 존재할 뿐이다. 더구나 현재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스스로 ‘세계와의 조화를 통해 평화적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발전 도상국’임을 자임하고 있다. 또 ‘책임 있는 국제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 중국 기업들의 북한 경협 참여는 미약한 경제성으로 인해 저조하며, 이에 따라 북한은 중국 정부 차원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북한은 전통적으로 어느 일방에게 종속되는 상황을 회피하고 이른바 ‘자주 외교’를 펼쳐온 역사적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북한의 ‘자주 외교’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의 ‘시계추 외교(pendulum diplomacy)’를 거쳐 1990년대에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남방 외교를 모색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추진했다. 여기에서 ‘시계추 외교’는 두 개의 국가에서 주기적으로 어느 일방에 대한 밀착과 상대방에 대한 거리 두기를 반복하는 외교 전략으로서 두 개의 국가에 동일한 비중을 두는 ‘등거리 외교(equidistance diplomacy)’와는 상이한 개념이다.

북한, 한·중·미 사이에서 ‘시계추 외교’ 노려

지난해 6월28일 개발 착공식이 열린 황금평에서 공사 인부들이 착공식 참석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냉전 시기에 북한은 중·소 분쟁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시계추 외교를 성공적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중소 양국의 화해 국면이 급속하게 전개되면서 시계추 외교는 효용성을 상실했다. 중국과 소련에게 모두 버림받게 된 북한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자신의 안전과 경제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남방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남방 외교는 주로 북한의 핵카드를 이용해 전개되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2000년에 들어 남북 및 북·중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북한은 한국과 중국의 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로 생존 전략을 모색했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중국에 대한 밀착이 심화되면서도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기 불과 4개월 전에 러시아 방문을 강행해 러시아와의 경협을 적극 추진했던 것도 어느 일방에 대한 의존 심화를 회피하려는 북한의 전통적인 ‘자주 외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보면,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 심화로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이른바 ‘동북 4성론’은 과도한 우려이며, 나아가 북한의 중국 편입 등의 주장 역시 과도하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북한의 존재를 그토록 중시하는가? 일본제국주의의 중국 대륙 침략 시기의 항일 투쟁과 국공 내전 과정에서의 혈맹적인 역사적 관계 외에도 현실적으로 중·미 관계에서 북한 카드가 지니는 중요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동북아시아에서의 주도권 행사에 그 목적이 있다. 아울러 북한은 중국에게 사회주의 형제국으로서, 특히 미군의 존재에 대한 완충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중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군대와 바로 육지에서 국경을 맞대고 ‘대치’해야 한다. 중국으로서는 가장 원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다. 또한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포함하는 한국이 수도 베이징과 가장 인접하는 국가일 뿐 아니라 한반도의 형상이 마치 망치 모양으로서 베이징을 비롯해 톈진, 다롄 그리고 동북 공업 기지 등 중국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이라는 존재는 중국에게 분명 ‘핵심 이익’에 준하는 범주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그러나 북한에 대한 ‘핵심 이익’이란 티베트나 신장 그리고 타이완이나 남중국해 등 중국 자국 영토에서의 핵심 이익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중국의 이 ‘핵심 이익’의 개념에 대해서는 2009년 7월 제1차 중·미 전략경제대화 회의석상에서 중국 외교의 실무 책임자인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중국 기본 제도의 유지 및 국가 안전, 영토 및 주권 보호, 지속적인 경제 및 사회의 안정적 발전이다”라고 규정한 바 있다. 중국의 대북한 경제 협력 및 지원은 북한 체제의 유지와 대북 영향력 확대라는 목표 아래 북한 변수의 안정적 관리와 북한의 변화 유도에 강조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진다.

‘경제적 종속은 곧 정치적 종속’이라는 인식을 지닌 북한으로서도 ‘동북 4성화’ 혹은 중국으로의 편입에 동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며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심화될수록 한국 혹은 미국과의 경제 협력 확대를 통해 균형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대외적 단속, 혹은 ‘주체 의식’은 예상 외로 강력하다. 예를 들어, 2010년 8월 창춘에서 김정일과 후진타오의 북중 정상회담 직후 북한 노동신문 사설은 ‘주체화는 우리 경제의 부흥과 비약의 기치이다’라는 제목의 논설을 싣고 ‘자력 갱생’을 강력하게 주창했다. 중국에 대한 경제 밀착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서 중국과 한국 간 균형 추구의 의도와 함께 그러한 메시지를 양국에 던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친러파도 친중파도 없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그들에 의하면 중국에 친척이 있는 인물은 북한에서 요직에 기용되지 못한다.

따라서 향후 북한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미국 사이에서 상황에 따라 ‘등거리 외교’와 ‘시계추 외교’를 적절하게 구사하려고 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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