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거꾸로 성장' 속 소득 격차만 커졌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4.0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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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대국과 경제 대국 진입’ 선언 앞둔 북한의 경제 실상 / 50년 동안 실질 국민 소득 안 늘어

북한은 4월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이해 대규모 축전을 열고 ‘강성대국과 경제 대국 진입’을 선언한다. 경제 대국 진입이라는 표어에 걸맞지 않게 북한 경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년 동안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GNI)은 여전히 1990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미약하게나마 나아질 조짐이 보였지만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성장 동력이었던 중화학공업 기반 무너져

경제 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북한의 산업은 뒷걸음쳤다. 국가 기간 산업이자 성장 동력이던 중화학공업 기반은 무너졌다. 이로 인해 국가 산업 구조에서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북한이 해마다 연초에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신문에 발표하는 신년 공동사설에는 2010년부터 3년 연속 경공업과 농업을 ‘주공 전선(주력 산업)’으로 강조한 것도 중화학공업 붕괴로 인한 산업 생산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북한 주민의 빈곤은 갈수록 심해지고 경제는 저성장 함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1인당 실질 GNI가 아예 늘지 않았다. 북한의 1인당 실질 GNI는 1960년대 초반까지 늘어났으나 그 이후부터 줄곧 줄어들었다’라고 분석했다. 국제연합(UN)은 ‘북한은 1970년부터 2010년 사이 해마다 3.9% 역성장했다’라고 발표했다. 폐쇄 경제와 계획 경제의 비효율성이 축적되어 만성적인 경제 정체에 빠진 탓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에서는 국민 경제라는 범주가 사실상 실종되었다. 거시 경제의 재생산이나 순환 구조가 파괴되었다. 국민 경제는 특권 경제와 내각 경제의 이중 경제 구조로 바뀌었다”라고 분석했다. 북한 경제는 당 경제, 군 경제, 인민 경제, 군수 경제, 시장 경제, 특구 경제라는 6개 구획으로 나뉜다. 당 경제는 김정은 통치 자금이나 노동당 운영 비 조달을 담당한다. 군 경제는 군 운영비를 조달하고, 인민 경제는 내각이 운영한다. 군수 경제는 군수품 생산과 수출입을 담당한다. 시장 경제는 주민이 자발적으로 꾸려간다. 이 밖에 당이나 내각이 총괄하는 특구 경제가 있다. 당 경제, 군 경제, 특구 경제는 각각 노동당 39호실, 인민무력부, 당이나 내각이 통제한다. 시장 경제는 주민에 맡긴다. 북한 당국은 주민 경제와 일부 내각 경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방기한다. 북한 당국이 국민 경제 전체를 끌어안고 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갖가지 거시 경제 지표는 ‘경고음’을 내고 있다. 재정난, 물가 상승, 환율 불안이 한꺼번에 겹쳐서 발생하고 있다. 북한의 재정 위기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은 다른 나라 정부와 달리 정부 채권을 발행해 세수 부족분을 막을 수 없다. 오로지 화폐 발행이라는 통화 정책만 제한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 실물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화량만 늘어나니 물가가 오르게 된다. 물가 상승은 북한 주민 대다수가 의존하는 암시장에서 발생했다. 물가가 올라 통화 가치가 떨어지니까 북한 주민은 원화보다는 외화를 선호한다. 재화 공급량은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 공급이 부족하니 물가는 오르고 북한의 원화 가치는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 와중에 화폐 개혁이 잦아지면서 화폐 탈취 위험까지 상존한다.

대외 무역 의존도 심해 경제의 ‘달러화’ 가속

갈수록 높아가는 대외 무역 의존도는 북한 경제의 ‘달러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을 크게 늘리고 있다. 대중국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외화는 가치 저장 수단에서 교환 수단으로 쓰임새가 커졌다. 2009년 화폐 개혁은 달러화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북한 주민은 이제 원화보다 달러화나 위안화를 선호한다.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간다. 지난 2년 동안 원화 가치는 곤두박질치면서 환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환율 상승은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경제 실정이 겹치면서 북한에서는 식량·에너지·원자재 부족 현상이 만성화한 지 오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난이다. 지난해 북한 식량 사정은 2006년 이래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식량 공급량은 4백32만t이다. 최고 수요량인 4백60만~5백40만t에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자체적으로 생산한 물량은 3백90만t이다. 나머지는 외부에서 들여왔다. 국제연합(UN)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나 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배급량은 지난해 3백g(1인 1일 기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5~9월 사이에는 2백g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상이 나쁘고 비료 투입량이 줄다 보니 생산량이 감소한 탓이다.

지난 2006년 10월 핵실험을 실시한 이래 국제 사회는 대북한 식량 지원을 끊었다. 한국도 2002~07년 해마다 비료 35만t과 쌀 40만t을 지원하던 것을 2008년 들어 중단했다. 북한 당국은 해외대표부에 식량 확보 과제를 할당하고 국내에서도 식량 추렴에 나섰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영양 지원을 조건으로 북한 핵시설 사찰을 미국과 합의한 것도 식량난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식량난 해결과 함께 전력난 해소와 평양시 10만호 주택 건설이라는 과업에 집중하고 있다. 30만㎾ 규모의 희천발전소, 5만㎾ 어랑천발전소와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를 잇달아 건설하고 있다. 특히 발전량이 가장 많은 희천발전소 건설에 집중하고 있으나 발전소 건설에 소요되는 원자재와 자본이 부족하다 보니 공사 진척이 여의치 않다. 평양시 10만호 주택 건설도 마찬가지다. 자금과 원자재 부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자재와 자금 부족 탓에 10만호 건설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도 평양시 10만호 주택 건설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정체성에 걸맞지 않게 계층 간·지역 간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득 격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정책이 지난 2009년 단행한 화폐 개혁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 2009년 한 가구당 10만원 한도 안에서 신구 화폐를 바꾸어주었다. 화폐 개혁과 함께 물가가 치솟았다. 새 화폐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지난 2009년 말 1㎏당 25원이던 쌀값은 지난해 11월28일 4천원까지 올랐다. 1백60배 상승한 것이다. 노동자 실질 임금은 화폐 개혁 이전과 비교해 60%가량 줄어들었다. 북한 주민이 보유한 자산 가치도 아울러 하락했다. 이와 달리 특권층은 화폐 개혁과 이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자산을 현물과 외화 형태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특권층은 식량이나 생필품을 배급에 의존하므로 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각종 시혜 정책, 평양 위주로 시행

평양시와 기타 지역 사이 생활 수준 차이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갖가지 시혜 정책이 평양시 위주로 시행된 탓이다. 식량, 생활필수품, 주택과 여가 시설까지 평양시 주민은 다른 지역 주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풍족하다. 탈북자들은 ‘북한이 지칭하는 우리 공화국은 평양공화국과 지방공화국으로, 그 속에 사는 인민도 배급제 계급(특권층)과 자력 갱생 계급(주민)으로 완전히 갈려졌다’라고 평가한다.

김정은 체제 아래에서 북한은 당분간 김정일 정권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다.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북한 당국은 유훈 통치를 내세우며 종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정은은 권력(power)보다 권위(authority)를 갖춰야 한다. 권위는 권력 획득의 정당성과 업적에서 나온다. 김정은은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탓에 김정은 후견 그룹은 유훈 통치를 내세운다. 아버지 김정일의 권위를 빌려오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채택한 유훈 정치는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사후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김일성 정책을 답습한 것과 같다.  

김정일은 지난 2001년 선군 경제 노선을 공식화했다. 선군은 ‘군을 우선시한다’는 뜻이다. 북한은 경제와 사회 개발 전면에 군을 내세워 군수 산업과 중공업에 투자를 집중했다. 북한 경제 전문가는 ‘김정은이 당분간 선군 경제 노선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북한 당국은 2011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인민 생활 향상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설정했다. 지난해 북한 경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1년 북한 1인당 GDP는 7백20달러이다’라고 추정했다. 북한 경제는 전년 대비 4% 성장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목표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식량 작황과 북한과 중국 사이 교역이 늘어나면서 GDP가 올랐다”라고 말했다. 4년 만에 플러스 성장이다. 북한 당국이 인민 생활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확산되는 혁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민 생활고가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 체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국가보위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군과 공안기관을 장악하고 있어 북한 사회에 대한 통제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시장 경제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외부 정보가 활발히 유통되면 주민 불만이 집단 저항을 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0년부터 시장 거래에 대한 규제가 크게 줄었다. 시장 경제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북한은 폐쇄 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서 경제 특구가 잇달아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문수 교수는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서 개혁·개방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먹는 문제를 비롯한 민생 문제 해결, 나아가 경제 문제 해결의 방향은 포괄적으로 보아 개혁·개방 이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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