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지대, 안철수 깃발 아래 모일까
  • 감명국 기자·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2.09.0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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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총리 필두로 정치 세력화 모색…역대 대선 후보들도 가세 움직임

지난 8월1일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의원 연구단체 ‘한국적 제3의 길’ 주최로 열린 초청 토론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대선과는 다르다. 이전에는 ‘변수’였지만, 지금은 이미 ‘상수’이다. 오히려 제3 지대가 기존 정치권을 흡수할 것인지가 관심사 아닌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제3 지대에서 정치 세력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것에 대한 민주당 한 고위 당직자의 우려 섞인 반응이다. 물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염두에 둔 얘기이다. 역대 대선에서 전체 판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으면서도 청와대로 가는 길과는 거리가 멀었던 제3 후보의 파괴력이 이번 대선에서는 안원장을 축으로 구심력을 형성할 경우 기존 정당을 무력화시킨 채 청와대 입성도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제3 지대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우선 ‘여의도 정치권 바깥’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이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맞닿아 있다. 다른 하나는 여야 경쟁 구도에서 이탈한 정당 또는 정치 세력이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되는 제3 지대는 전자라고 볼 수 있지만, 후자의 요소까지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괴력이 더욱 주목된다. 여의도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염증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안철수’라는 인물이 중심에 설 경우 여의도 바깥은 물론, 민주당과 새누리당에서도 상당한 이탈자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운찬, ‘동반성장 국민연대’ 발족

이런 분위기를 간파하고 가장 먼저 깃발을 든 인물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이다. 정 전 총리는 8월29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은 기존 정치가 증오와 대립, 기득권 보호라는 틀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대안 정치 세력인 제3의 세력이 출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정당 없이 정치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제3 세력은) 정당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신당 창당을 기정사실화했다.

실제로 정 전 총리와 뜻을 같이하는 움직임도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를 지지하는 학계·법조계·언론계 인사 40여 명이 주축이 된 ‘시민의 힘’이 9월 중에 발족할 예정이다. 또한 정 전 총리가 동반성장위원회를 이끌면서 쌓은 인맥을 토대로 한 ‘동반성장 국민연대’가 9월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족식을 갖는다. 정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동반성장 국민연대의 경우 지역별 중소기업인 중심으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조직화가 진행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귀띔했다.

정 전 총리가 여의도 바깥에서 제3 지대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비해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굳어지는 듯한 여의도 체제의 균열을 도모하는 모습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선 3파전’을 강조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후보가 모두 확정되고 본격적인 검증이 이루어지면 양당 후보 지지자 중 상당수가 ‘제3의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 요지이다. 이대표의 한 측근은 “이번 대선에서도 충청권 표심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총선 과정에서 다소 흔들렸던 선진당의 지역 기반을 재구축하려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최소한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정가에서는 정 전 총리와 이대표의 이런 제3 지대 세력화 움직임도 결국은 ‘안철수’라는 가장 확실한 상품이 밑바탕이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안원장이 결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최종 단일화 과정에서 단일 후보로 추대될 경우,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안원장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세력으로 우군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제3 지대 세력화를 선점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 진영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안원장의 움직임 자체가 제3 지대의 가능성과 직결되는 셈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한 정책 자문 그룹, 법륜 스님이 이끄는 평화재단의 인적 네트워크 등이 가동되고 있고,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소’ 등이 언제든 싱크탱크로 기능할 수 있는 채비를 갖췄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의 합류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이다.

정 전 총리의 제3 지대 창당론도 결국 안원장과의 연대를 시사하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물밑에서 안원장측과 오가는 얘기가 없느냐”라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말씀드리면 거짓말이고 조금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 정가에서는 정 전 총리가 지난 8월27일 법륜 스님을 찾아가 환담을 나눈 것에 대해서도 안원장을 영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 실제로 정 전 총리측 관계자는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뜻은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본인이 직접 대권에 도전할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을 후보로 영입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안원장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선진당 이대표측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이대표는 측근들에게 “안원장이 막상 민주당으로 가고 나면 오히려 이에 실망한 제3 지대가 훨씬 크게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했지만, 최근 이명수 의원과 유한식 세종시장 등이 새누리당으로 가면서 선진당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자 안원장을 돕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안원장은 변수 아닌 상수’라는 데 주목

관건은 안철수 원장이 실제로 민주당 대신 제3 지대를 택할 것인지 여부이다. 역대 대선을 보면, 1992년 대선에서의 박찬종 후보, 1997년 대선에서의 이인제 대표와 조순 전 부총리, 2007년 대선에서의 고건 전 총리와 문국현 전 대표 등 제3 지대 후보들이 하나같이 인기 절정을 누리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좌절한 바 있다. 안원장이 간단하게 제3 지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최근 주목되는 현상이 있다. 역대 대선마다 제3 지대 대선 후보로 각광받았던 인물들이 최근 하나 둘씩 안원장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전 대표는 이미 공공연하게 안원장 지지 의사를 밝힌 채 당장 힘을 보탤 기세이다. 조 전 부총리도 안원장의 멘토 역할로 알려져 있고, 최근 고 전 총리가 안원장과 접촉했다는 얘기도 부쩍 회자되고 있다. 박찬종 변호사 역시 최근 들어 “안원장은 민주당 등 기성 정당에 입당하지 말고 제3 지대에서 힘을 키워야 한다”라며 훈수를 자주 두고 있다.

역대 제3 지대 후보들과 안원장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전 대선에서는 제3 지대 후보들이 ‘특정 후보가 1등이 안 되게 하거나, 또는 1등이 되게 하는’ 변수였던 데 비해 안원장은 본인 스스로가 청와대 입성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 중의 한 명인 ‘상수’이기 때문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제3 세력이 안원장과 정 전 총리를 필두로 새로운 정당으로 탄생된다면 중도층과 비(非)민주·새누리당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민주당에서 선출된 후보와 단일화를 거치면 대선 정국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압도할 만한 파괴력을 보이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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