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쑥쑥 자란 ‘한국판 ZARA’
  • 김형민 인턴기자 ()
  • 승인 2012.11.0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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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한 중견 기업의 성공 비결 ③│코데즈컴바인

인천시 연수구의 복합 쇼핑몰 스퀘어원에 입점한 코데즈컴바인. ⓒ 코데즈컴바인 제공
“코데즈컴바인을 한국판 ZARA로 키울 것입니다.” 2007년 말 중국으로 진출하기 전 박상돈 대표이사가 외친 말이었다. ZARA는 세계적인 제조·유통 일괄화(SPA) 의류 브랜드이다. 국내 시장은 물론 전 세계에 진출한 SPA 브랜드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박대표는 해외여행에서 귀국하는 소비자들이 한 보따리씩 ZARA 쇼핑백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ZARA를 목표로 선언한 지 5년이 흘렀다. 코데즈컴바인은 2007년 60여 억원이던 매출액을 5년 만에 2천2백억원 이상 끌어올렸다. 박상돈 대표의 선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답은 중국 시장이었다. ‘코데즈컴바인’은 코스닥에 상장하기 1년 전인 2007년 중국 하얼빈의 백화점에 시험 매장을 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국에 한국 유학생이 늘어나고 시장 개발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 연합뉴스
‘국내에 머물면 망한다’며 중국 시장 진출

그가 중국으로 진출한 것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국내 의류 시장은 판매와 유통 경로가 다양화되었고 브랜드 희소성이 떨어져 굵직한 의류 브랜드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다. 또,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도 갈수록 높아졌다. 해외 브랜드만 찾는 국내 고객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동시에 ZARA와 유니클로 같은 해외 SPA 브랜드의 선점 효과로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SPA 브랜드는 디자인에서부터 생산, 유통까지 하나의 제조회사가 모두 책임진다. 2주에 한 번 신상품을 내놓고 옷 가격의 거품을 제거해 소비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 브랜드가 SPA 브랜드로 시장 진출을 결심했을 때는 이미 해외 SPA 브랜드가 국내 시장을 잠식한 상태였다.

현재까지도 해외 SPA 브랜드로 인해 코데즈컴바인 같은 저가형 의류 브랜드는 설자리를 잃고 있다. 원대연 한국패션협회 회장은 “SPA 브랜드 시장은 오래전부터 국내외 경기 둔화 탓에 내수 패션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도 유일하게 성장한 의류 분야이다. 그러나 수익은 대부분 해외 브랜드가 가져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7년 당시에도 박대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국내 시장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명 백화점이나 강남, 홍대 앞과 같은 의류 거리에 멀티숍을 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코데즈컴바인이 중국에 처음 진출한 브랜드는 아니다. 박대표는 1997년 순우리말 브랜드인 옹골진을 선보이며 중국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중국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세금 등 법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유통 경로를 백화점으로만 고집했다. 그러자 백화점의 비싼 유통 마진이 실적 부진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열을 가다듬고 코데즈컴바인이 중국으로 진출할 때에는 유통 경로를 다양화했다. 또, 하얼빈에서 시험 매장을 운영하면서 중국 현지인 체형에 맞는 옷을 생산할 필요가 있었다. 단순한 브랜드 진출은 실패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현지 사람 체형이 생각보다 커서 다양한 치수를 보완·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저히 현지인들을 분석해 맞춤형 브랜드로 탄생한 것이 와이바이코데즈컴바인이었다.

그가 청바지 브랜드인 옹골진을 내놓았을 때, 국내에는 외환위기의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당시 소비자들은 우리 브랜드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컸다. 그가 선보인 옹골진은 그런 소비자의 욕구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참신한 디자인에 거품이 빠진 가격, 순우리말을 차용한 이름이 주된 성공 요인이었다. 옹골진 성공 이전 박상돈 대표는 이화여대 앞 옷가게에서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 거기서 키운 것이 옹골진이었다. 옹골진을 시작으로 마루, 노튼, 코데즈컴바인까지 단일 브랜드로는 각각 1천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회사 규모에 대비한 매출액만 따졌을 때 국내 의류 브랜드에서는 독보적인 매출 성과를 올린 것이다. 의류업계에서는 신화로 여겨진다.

경영권 분쟁과 갖가지 잡음은 걸림돌

그는 시장 수요에 발 빠르게 접근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자평한다. 그는 여전히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 있을 때도 홍대나 이대 주변 등의 보세 매장을 돌며 시장 수요와 패션 경향성을 파악하고 다닌다. 시장에서 멀어지지 않는 경영 철학은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와이바이코데즈컴바인 현지화에 큰몫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소비 시장으로 통한다. 중국에서 성공했다 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맞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준비 없이 중국에 진출한다면 빈 주머니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특히 패션 산업의 경우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은 필수이다. 중국 전문가 김형환 단국대 중문과 교수는 중국 패션 산업의 핵심은 ‘변화’라고 언급했다. 넓은 중국 대륙은 장소마다 유행이 다르고 정부에서 지정하는 법규가 까다로워 준비 없이 진출했다가 ‘쪽박’을 차고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코데즈컴바인은 이런 중국에 시험 매장부터 열고, 백화점보다는 직영점 위주로 유통 경로를 정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또한 SPA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을 눈여겨봤고, ZARA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했다.

코데즈컴바인은 2008년 상해에 현지 판매 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매장을 늘려갔다. 현재는 마카오에 1개, 중국 내에 44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에서 전개 중인 모든 브랜드를 진출시켜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SPA 사업을 중국에서도 전개할 예정이다.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임을 감안해 직영점을 60여 개까지만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 진출에 성공한 것과 달리 일각에서는 박상돈 대표와 관련된 잡음도 들린다. 우선 2010년 2월 벌어진 경영권 분쟁이다. 박대표는 당시 부인이었던 오매화 이사와 합의 이혼하며 한바탕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었다. 경영권 분쟁은 이혼 소송을 벌이는 가운데 오이사가 경영 참여를 선언하며 불거졌다. 이후 박대표가 경영권을 갖는 대신 오이사의 지분을 인정하기로 하면서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또 올해 초에는 자녀의 낙하산 인사로 시끄러웠다. 회사 지분 7.28%를 가진 아들 재창씨와 5.45%를 가진 딸 지산씨가 각각 과장과 대리로 입사했다. 잡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박대표가 소유한 개인 회사인 ㈜다른미래가 불공정 하도급 행위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같은 여러 잡음으로 인해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코데즈컴바인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그것은 이미 수치로 증명된다. 지난 5년간 매출액은 45배 성장한 반면, 시가총액은 80% 증가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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