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로 빚어낸 놀라운 황홀경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2.11.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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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돌아온 미셸 오슬로의 실루엣 애니메이션 <밤의 이야기>

의 한 장면.
<프린스 앤 프린세스>로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는 아름다운 세계를 관객 앞에 펼쳐 보였던 프랑스 감독 미셸 오슬로가 돌아왔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의 13년 만의 속편이라 불릴 만한 애니메이션 <밤의 이야기>는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빛과 그림자, 그리고 놀라운 색채감으로 황홀경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HD급 해상도를 고려했다는 작업의 결과물이 탄성을 자아낸다.

이야기의 구성은 전작과 같다. 도심의 소음이 잦아들고 마침내 밤이 찾아오면 작은 극장에 모여드는 세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년의 남자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려 하는 소년, 소녀. 이들은 기존의 설화와 동화를 자기 방식으로 변형하며 새로운 판타지를 꾸며나간다.

극중극 형식을 띤 애니메이션 <밤의 이야기>가 전하는 새로운 동화는 모두 여섯 가지이다. 보름달이 뜨던 밤 늑대로 변해버린 왕자와 그를 사랑한 공주, 동굴을 따라 죽음의 왕국에 간 소년의 모험, 인신 공양의 제물로 바쳐진 소녀를 구하려는 기사의 활약, 모두를 춤추게 하는 마법 탐탐, 거짓말을 못 하는 소년을 시험에 들게 한 사랑, 사악한 마법사의 저주로 변해버린 공주와 건축가의 아들 이야기가 가지각색의 그림자 인형 그리고 화려한 배경 위에 펼쳐진다.

전작인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다양한 성격의 남녀 주인공을 내세워 다소 우화적이고 비틀린 재미를 주었던 것에 반해 신작 <밤의 이야기>는 정석적이고 동화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쉽지만, 중세 유럽과 고대 아시아,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시공간의 제약을 훌쩍 뛰어넘는 감독의 상상력과 표현력만큼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각각의 이야기에 적확하게 어울리면서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영상미는 84분의 러닝타임을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으로 가득 채운다.

자애롭고 순수한 주인공, 해피엔딩이라는 지극히 동화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지만, 6년에 걸쳐 이루어진 작업의 결과물을 보는 순간 관객은 납득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캐릭터와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마법사라 칭하는 감독의 자신감, 이유 있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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