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공’에 빠진 윤태식 ‘참회’했을까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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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편지 보내 교도소 생활 전해

2011년 2월 기자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발신인은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지 김 사건’의 범인 윤태식씨였다. 편지지 넉 장 분량에 깔끔한 손 글씨로 쓴 편지였다. 이 편지는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의 강압 수사와 자신이 구속된 배경 그리고 이무영 전 경찰청장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기자는 2011년 1월 이무영 전 청장을 인터뷰했는데, 그것을 본 윤씨가 편지를 보낸 것이다. 윤씨는 수지 김 사건이 일어난 지 14년 만에 구속되었다. 그동안 자신의 구속 배경에 상당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8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을 보고 비로소 구속 이유를 알았다고 했다.

<동행>에는 ‘2001년 청와대에서 윤씨의 신원조회 기록을 봤는데, 사기죄 수감 기록과 혼인 빙자·강간 기록이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윤씨는 검찰에 사실 조회를 요청했고, ‘관련 전과가 없다’는 통보를 받은 후인 2009년 7월 “자서전 내용을 정정하라”며 이여사와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직접 여기(청주교도소)까지 찾아왔고, ‘소송을 취하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지만 거절했다. 법원에서도 판사가 부담을 느낀다고 하면서 서로 합의하라고 화해 권고를 내렸지만, 나는 판결을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법원은 2011년 3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윤씨는 2011년 11월 기자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내왔다. 광주의 한 중소기업체에서 보낸 서류 봉투를 뜯어보니, 그 안에 노란색 겉봉이 또 하나 있었다. 보내는 사람이 ‘윤사모 대표 배○○’이었다. 여기서 ‘윤사모’는 ‘윤태식을 사랑하는 모임’의 약자로 추정된다.

윤씨는 교도소 안에서 쓴 논문 한 권(‘무상복지 재원 창출 방안 고찰-창조형 민간 자원 ‘윤의 법칙’ 활용’)을 첨부했다. 그의 편지에는 기자가 쓴 ‘정치권 반값 등록금 정책 믿을 수 없다’라는 기사에 공감해 우편물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었다.

수지 김 사건의 범인인 윤태식씨가 교도소에서 보내 온 편지를 기자가 펼쳐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자신의 죄 반성하는 내용은 없어

윤씨는 당시 청주교도소 소재 법무부 제12공공직업훈련소 컴퓨터응용기계학과 정예 훈련생으로 선발되어 3년차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는 “‘윤의 법칙’ 신기술을 조만간에 세상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틈틈이 대학(경영학) 과정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윤씨는 교도소 수감 중에도 꾸준히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을 딴 ‘윤의 법칙’이라는 이론을 만들면서 출소 이후를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윤씨가 보낸 연하장이 왔다. 성탄절 인사와 새해 인사를 곁들인 연하장의 글씨는 붓으로 직접 썼다.

그런데 기자는 윤씨의 편지를 받고 의아한 것이 있었다. 그는 지금 교도소에서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평생 자신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런데 윤씨가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새로운 사업 구상보다 목 졸라 죽인 아내와 그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자 마지막 양심이다. 윤씨는 이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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