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들이 어디선가 ‘마지막 기록’ 쓰고 있다면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3.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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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자살자 대부분 유서로 폭행 고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학생들은 유서를 남긴다. 노트나 메모지에 자필로 남기거나, 휴대전화에 유서를 저장하는 일도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짧게 문자메시지로 전달하기도 한다. 자살한 학생들은 죽는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이 당했던 폭력을 세상에 알린다. 혼자 고민하고 끙끙 앓다가 폭력의 실상과 부당함을 유서를 빌어 폭로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해 학생들의 실명을 적시하며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살한 학생들은 유서를 통해 사회, 학교, 가정에 메시지를 남긴다. 이는 사회에 던지는 고발장이다.

대구 경산 고교생 최 아무개군도 편지지 2쪽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아파트 복도 창틀 아래 쪼그려 앉아 눈물로 썼다. 최군의 유서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담았다. ‘죽어서도 영원히 사랑할게… 나는 정말 이렇게 살아갈 날 많이 남아 있고, 또 미래가 이렇게 많은데 먼저 죽어서 미안해’라는 대목에서 삶의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내가 죽는 이유를 말할게요’라며 자신이 당했던 신체 폭력, 금품 갈취, 언어폭력 등을 자세히 언급했다. 최군은 학교폭력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CCTV를 더 좋은 것으로 달거나, 사각지대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써내려가며 얼마나 고뇌했는지 마지막 말은 ‘나 목말라, 마지막까지 투정부려 미안한데 물 좀 줘…’였다. 유족들은 추모 공원에 안치된 최군의 유골함 앞에 생수병과 물 한 컵을 놓았다.

3월4일 오전 7시45분쯤 부산 중구의 한 빌라에서 중학교 3학년인 박 아무개양(14)이 투신했다. 박양은 집 안에 일기장 3장을 찢은 종이에 유서를 남겼다. 구체적인 자살 이유와 누가 괴롭혔는지는 적지 않았다.

다만 짧게 ‘죄송해요. 외톨이가 될까 봐’라고 남겼다. 박양의 가족은 박양이 친구 2명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박양의 죽음과 괴롭힘이 연관된다고 보는 이유다. 박양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3권의 만화일기도 남겼다.

ⓒ 시사저널 임준선·박은숙
학생 자살자에겐 ‘명백한 이유’ 있다

지난해 4월16일 경북 영주시의 한 아파트 현관에서 중학교 2학년인 이 아무개군(14)이 투신했다. 현장에서 이군의 유서가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친구 전○○가 서클에 가입하라고 협박하고 때려서 죽고 싶다.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학교폭력 때문이다’라며 자신을 괴롭힌 친구 2명의 실명을 거론했다. 친구의 강요·협박·폭행이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알렸다.

학생 자살자들에게는 명백한 ‘죽음의 이유’가 있다. 이들의 죽음을 두고 ‘좀 더 참지’라는 안쓰러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른들의 사고방식과 잣대로만 본다면 이들의 죽음은 의미가 없다. 그런 어른들의 이기심이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청소년들의 자살을 막는 길은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소통이다. 자살한 학생들의 유서는 이들의 마지막 기록이다. 거기에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담겨 있다. 자살자들이 이 사회에 남기려고 한 마지막 메시지가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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