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가슴에 묻고 ‘학교폭력 감시자’로 뛴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3.2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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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사망 후 인생 180° 달라진 사람들

학교폭력으로 자녀가 희생된 가정에서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춘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지나도 가족들의 시간은 그날, 자녀가 죽은 날에서 정지한다. 꿈에서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깨어나면 현실이다.

그래서 가슴을 치고, 눈물 흘리고, 통곡한다. 승민이 아버지·어머니, 대현이 아버지·어머니, 대웅이 아버지·어머니, 영준이 아버지·어머니…. 이들은 동병상련의 처지다. 학교폭력으로 자녀를 잃었고, 또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

기자는 지난해 7월 대구에 갔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2011년 12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한 권승민군의 어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내려갔다. 지하철역을 나와 권군의 집 근처에 다가갈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천근만근 발걸음도 무거웠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초인종을 눌렀더니 권군 어머니 임지영씨가 현관 입구까지 내려왔다. 임씨는 차분하게 당시 상황과 현재의 심경을 전했다. 권군의 죽음을 가족이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임씨 가족은 아직 아들을, 동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금 임씨 부부는 ‘학교폭력 감시자’로 나섰다. 중학교 교사인 임씨는 자서전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를 펴내고, 학교폭력 예방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등 학교폭력 예방에 힘쓰고 있다. 임씨의 남편인 권구익씨도 지난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명퇴한 후 2월25일부터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인 EBS FM <경청> 진행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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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봉 참빛그룹 회장도 사랑하는 아들을 학교폭력으로 잃었다. 1986년 11월26일 당시 서울예고에 다니던 대웅군을 선배 두 명이 뒷산으로 끌고 가 폭행하는 과정에서 숨졌다. 이 회장은 한동안 방황하다 아들의 죽음을 기리는 ‘이대웅 음악장학회’를 만든 후 장학 사업을 시작했다. 학교폭력 예방 단체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종기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이사장도 아픔이 있다. 그는 원래 잘나가던 대기업 임원이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아들 대현군이 자살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는 사재를 털어 지금의 청예단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청소년 폭력 예방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이 청예단을 통해 학교폭력에서 벗어나거나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생명을 찾았다.

사진작가인 강막동씨도 2007년 5월 아들 영준군을 가슴에 묻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강군은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목매 자살했다. 이후 강씨는 생업이던 사진관 일을 접고, 아들이 왜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온몸으로 뛰었다. 홍권식씨와 이길수씨의 자녀는 2005년 급우들의 폭행과 괴롭힘을 당하다 사망했다. 이들도 거리 시위 등을 통해 학교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승민군의 어머니 임지영씨·아버지 권구익씨(ⓒ 시사저널 임준선·EBS 제공), 김종기 청예단 이사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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