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게모니 싸움 중심에 서다
  • 차윤주│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4.3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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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발 후폭풍…청와대-새누리당 관계 재정립 불가피

크든 작든 선거가 끝나면 정치판에는 어김없이 후폭풍이 분다. 4·24 재보선은 국회의원 3명을 새로 뽑는 초미니급이었지만, 등원한 이들의 면면이 불러올 정치 지형 변화는 메가톤급이 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국회 복귀가 관심을 끈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 여당 내부의 권력 구조 변화가 가시권에 들었다는 판단에서다. 거물급인 김 의원의 복귀로 여당 내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친위 세력과 독자 세력 사이에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될 조짐이다.

정치판에서는 최근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회자된다. 친이나 친박이라는 게 다 각자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모였고, 이제 둘 다 목표를 달성했으니 계파 색을 털어내라는 조언이다. 요즘 분위기에선 새누리당이 강을 건넌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런 면에서 김 의원은 ‘뗏목 버리기’의 적임자로 거론된다.

김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개국 공신이다. 지난해 대선 때 박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 등으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김 의원을 구원투수 격인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중앙선대위에 들였다. 김 의원은 고비마다 능력을 보여줬다. 선대위 안에서 유일하게 박 대통령에게 ‘선조치 후보고’ 권한을 가진 인사였다. 김 의원 혼자만의 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이겼다. 이는 지난해 4·11 총선에서 공천장도 못 받을 정도로 박 대통령 주변에서 멀어졌던 김 의원에게 원내 복귀의 문을 열어준 계기였다.

4월24일 부산 영도구 김무성 새누리당 후보 선거 캠프에서 김 후보가 개표에서 크게 앞서 나가자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친박·중박·비박으로 ‘3분’ 될 수도

원내 재진입이라는 제1 목표를 달성했지만 김 의원의 암중모색은 더 깊어질 듯하다. 우선 새누리당에서 그의 입지가 애매하다.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사이의 중간쯤에 선 모습이다. 오는 5월에 있을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한 최경환 의원 등이 친박계 친위 결사대라면, 이재오 의원이 이끄는 친이계와 정몽준 의원 세력 등이 비박계로 불린다. 비박은 당권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김 의원은 한때 친박계 좌장으로 군림했지만 ‘배신자’ 낙인이 찍혔다. 이런 김 의원이 다시 친박 핵심으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박 대통령을 대하는 김 의원의 태도도 늘 말썽이었다. 김 의원은 바닥부터 다져온 정치 경륜이 없는 ‘후광 정치인’ 박근혜를 예전부터 마음으로 ‘극존’하진 않았다고 한다. 이번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에도 “당선되면 당장 박 대통령과 저녁부터 먹겠다”고 해 구설에 올랐다. “대통령을 아직도 만만하게 본다”며 친박계가 발끈했다.

이처럼 모호한 위치가 김 의원에게는 가능성이다. 김 의원이 친박과 비박의 완충 지대를 전략적으로 꿰찰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박 대통령에게 서슴없이 “밥 먹자”고 하는 김 의원의 이미지가 오히려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친박과 비박을 아우르는 ‘범박(凡朴)’의 영주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엄밀히 말하면 박 대통령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에 서는 ‘중박(中朴)’이다. 벌써 당내에서 옛 영화를 되찾으려는 친이계와 무기력한 여당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초·재선 소장파 의원들이 김 의원에게 한껏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낸 4선의 정병국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김무성은 워낙 사람이 좋다. 성품이 좋고 누구나 친해지는 사람”이라며 “김무성은 친박도 비박도 아니다. 억지로 갖다 붙이니까 친박이 된 것이다. 이런 그가 돌아오면 당의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수도 있다. 김무성 의원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차기 욕심’ 오해다. 당내 세력 재편이 대권욕으로 비칠 경우 김 의원은 칼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집권 첫해부터 2인자를 키우는 대통령도 없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다이내믹한 정치 지형이 가능한 나라도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남짓 지나 차기 주자가 너무 빨리 움직이면 대통령의 권력 누수를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그동안 정치권에서 도의적 차원에서 새 정부 1~2년차엔 차기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인식되어왔다. 이런 때 김 의원 때문에 촉진된 권력 재편이 대권 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최악의 수다.

사실 모든 정치인은 대권을 꿈꾼다. 김 의원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장래 희망 란에 ‘대통령’이라고 썼다고 한다. 실제 김 의원은 4월1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재보선에 당선된 뒤 당권과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서 확답을 피했지만, 굳이 부인하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마당에 ‘5선 중진’이자, ‘부산 맹주’의 일거수일투족은 불필요한 오해와 과대 해석을 낳게 마련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김무성 의원 등원으로 새누리당은 정계 개편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내 권력 구조 개편 이상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차기 대권 주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15일 청와대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이한구 원내대표 등 여당 대표단과의 회동에서 ‘정부조직법 문제’에 대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 ⓒ 뉴시스
김무성 의원 도전은 10월이 변곡점

김무성 의원의 거취와 관련해 새누리당에서는 10월 재보선을 주목한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4월21일 새누리당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에서 “김 의원이 대표직에 도전하리라는 것은 다들 알지 않느냐. 문제는 시기”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김 의원이) 10월 재보선이 끝나고 당이 어려울 때 나오느냐,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오느냐를 정치 상황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4선의 한 중진 의원도 기자와 만나 “일단 김 의원은 10월 재보선 전까지는 세 규합만 할 것”이라며 “10월 재보선에서 여당이 패해 과반수가 무너질 가능성이 큰데 그 전에 당권을 쥐어서 괜히 책임론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10월 재보선에 패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조기 전당대회론이 나올 테고, 그러면 김 의원 외에 대안이 없다는 취지다. 이때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쥘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집권 2년차에 실시되는 내년 지방선거 지형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만약 황우여 대표가 10월 재보선에 패하고 불명예 퇴진한 뒤 김 의원이 들어오면 지방선거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잘못하면 김 의원도 내년 지방선거 패배로 불명예 퇴진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도 많은 의원은 “김 의원은 그런 리스크를 안고도 차기를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김 의원이 현 지도부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도 큰 손해는 없다. 내년 5월 2년 임기의 대표에 취임하면 2016년에 있을 20대 총선의 공천 지분을 챙길 수 있다.

이래저래 김 의원의 주판알 굴리기가 분주해질 2013년의 늦봄이다. 여의도에 다시 돌아온 김 의원이 이번 봄, 꽃놀이패를 쥘지, 늦추위에 더 오랜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할지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때를 놓치지 않는 것, 또는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냉정하게 집어내는 것, 그것이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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