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 명분 아래 기업에 너무 많은 요구 마라”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6.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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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트 스피치 한 진념 전 경제부총리 인터뷰

“기업은 이윤을 남겨야 한다. 그렇다고 이윤만 남겨서는 안 된다.” 196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듬해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에 몸담은 이래 해운항만청장과 동력자원부장관, 노동부장관, 기아그룹 회장, 기획예산처장관 등을 두루 역임한 진념 삼정KPMG 회장이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1년 초대 재경경제부장관 겸 부총리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그는, 현재도 경영과 강연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진 전 부총리는 <시사저널>이 주최한 ‘2013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서 키노트 스피치를 했다.

진 전 부총리는 “‘굿 컴퍼니(Good Company)’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착한 기업’ ‘좋은 기업’이다. 이 말에는 직원·투자자·협력사·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굿 컴퍼니’는 ‘사랑받는 기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굿 컴퍼니를 뛰어넘는 그레이트(Great) 컴퍼니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이상민
시장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데.

현재 세계 경제에는 저성장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돈 풀기와 환율 경쟁이 경제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경쟁 강도도 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비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업가 정신을 통해 창조와 혁신을 거듭하면서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해왔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와 시장 중심 경제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이익 우선의 기업 성장, 단기 성과에 매몰된 경영 방식, 주주 제일주의, 재무제표 중심의 경영 행태에 대해 ‘탐욕’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로 대변되는 전 세계적인 불평등 반대 시위는 시장 만능 자본주의 체제에 경종을 울렸다.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경영 환경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나날이 높아지는 소비자의 윤리·환경 의식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매개로 하는 기업과 소비자 간 쌍방향 의사소통은 ‘민주적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직과 투명 경영을 넘어 ‘공정 경쟁’ ‘함께하는 시장경제’ ‘지역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 의식’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시장과 사회 변화에 대응해 사회적 책임(CSR) 실천을 통한 지속 가능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주주·직원·소비자·협력업체의 사랑 받아야”

최근 들어 굿 컴퍼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는 ‘코리안 미러클(Korean Miracle)’이라 불릴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고속 성장은 경제 개발을 위한 국민적 열정과 리더십 그리고 기업들의 유례없는 도전과 혁신이 가져다준 결과다. 최근 우리 경제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밖으로는 발 빠른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반격으로 시련을 맞고 있다. 안으로는 경제 민주화라는 커다란 이슈에 직면해 있다. 소득 양극화, 가계 부채,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 산업과 내수 산업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각종 불공정 거래 행위와 ‘갑을 관계’로 대표되는 우월적 지위 남용이 우리 경제·사회의 병폐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 굿 컴퍼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굿 컴퍼니는 어떤 기업이라고 보는가.

시장과 사회는 수직 관계에서 수평 관계로 바뀌고 있다. 감성 시대에 ‘민주적 시장경제’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경제 주체 간 새로운 관계 정립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업도 나라 경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이런 경제·사회 환경에서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공익재단 설립이나 기부 등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기업 주변의 이해관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어가는 ‘굿 컴퍼니’ 모델이 절실한 때다.

굿 컴퍼니가 되려면 무엇보다 경영자의 의지와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굿 컴퍼니가 담고 있는 핵심 가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통해 존중받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굿 컴퍼니가 되기 위한 조건을 네 가지로 정리해봤다. 첫 번째, 기업은 항상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물론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돈만 벌면 된다는 기업은 더는 살아남을 수 없다. 두 번째, 항상 사람을 앞세우는 기업이어야 한다. 직원은 가장 소중한 인적 자산이다. 직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기업은 소비자의 사랑을 얻기 어렵다. 직원 존중과 열린 소통, 사람 우선의 기업 문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세 번째, 준법경영과 윤리경영을 실행해야 하는데 그 시작은 공정 경쟁의 질서를 준수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관행 때문에’ ‘다른 경쟁 기업들도 다 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주와 소비자뿐 아니라 직원, 협력사, 지역 사회 등 이해관계자를 균형 있게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로리 바시 박사가 저서 <굿 컴퍼니>에서 화두로 제시한 ‘사회적 가치의 시대(Worthiness Era)’에 주목하고 있다.

굿 컴퍼니가 많이 탄생하기 위해선 정부와 사회가 해야 할 역할도 크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민주적 시장경제에서 ‘사람 중심’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굿 컴퍼니’ 모습을 언급했는데, 자칫 논리의 평형을 깨뜨릴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이른바 경제 민주화라는 깃발 아래 기업들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경제 민주화만 되면 소득 격차도, 실업 문제도, 사회 불평등도 해소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일자리 만드는 것도, 국내 투자가 부족한 것도 모두 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부와 사회는 굿 컴퍼니로의 변환을 위한 환경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갑을 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 스스로도 동참해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정부와 사회의 역할까지 기업에 떠넘긴다면 기업 본령인 역동성(Dynamism)과 혁신(Innovation)의 기(氣)까지 꺾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와 시장 그리고 사회와 기업의 역할을 좀 더 투명하고 분명하게 정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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