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세계에 자신 알리려는 열망 커”
  • 감명국 기자·정리│조유빈 인턴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8.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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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전하는 북한의 오늘

‘베일에 가려진 지도자’와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 한 장으로 그는 지금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7월30일 북한의 전승절 행사에서 그에게 유독 친근감을 표시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모습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박 사장이 미국 시민권자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남한에 사업체를 두고 있는 사업가다. 당시만 해도 개성공단 잠정 폐쇄가 계속되는 등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할 때였다. 박 사장은 지난 20년 동안 북한을 215차례나 방문했다. 김 제1비서도 지난해 2월 김정일 조문 때 이미 만난 바 있다. 북한의 변화, 김정은의 현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시사저널>이 서울 강남 평화자동차 본사 집무실에서 박 사장을 인터뷰한 8월14일, 개성에서는 남북 실무자들이 공단 재개 여부를 둘러싸고 막판 협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990년대부터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 처음 방문한 시기가 언제인가.

1994년부터 북한을 방문했다. 햇수로 20년 됐다.

어느 누구보다 북한의 변화 흐름을 잘 보고 있을 텐데, 이번에 직접 만나본 김정은 제1비서는 어땠나.

사실 북한에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선 지 2년이 안 됐다. 그나마 실제 정권을 잡고 정치다운 정치를 한 것은 1년도 안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짧은 7~8개월 사이에 (김 제1비서가) 지난 20년과 비교해볼 때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놓았다. 또 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계획이 거의 다 경제에 맞춰져 있다.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그 짧은 순간에 해놓은 일들을 보면 앞으로 무엇을 할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껏 우리가 (김 제1비서에 대해) ‘어리다’ ‘권력 기반이 약할 것’이라고 대충 평가해온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좀 더 냉철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확고하다고 보는 것인가.

북한도 남한과 다르지 않다. 김정은 제1비서가 형들을 다 제치고 권력을 물려받았을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더 잘해서 인민들에게 신뢰를 받아야겠다’ 이런 생각 없이 그냥 무조건 됐겠나. 그랬으면 2~3년도 버티기 힘들지 않겠나. 북한의 당과 군 간부들도 우리네 정치인들과 다르지 않다. 성질 급하고, 빨리 처리하는 것 좋아하고. 저들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북한 간부들을 만나보면 나한테 하는 이야기가 “(김 제1비서는) 도저히 20대의 젊은이가 아니다. 정말 짧은 기간에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고, 우리도 따라갈 수가 없다. 모시고 가기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벌써 간부들이 인정하고 있는 거다. 무엇이 그렇게 빠른가. 그 말은 지금 자기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국제적으로 제재를 받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걸 빨리 벗어나서 인민들에게 밥을 먹이고 희망을 주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김 제1비서가 국제적인 감각도 갖추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그게 아니면 외국 사람들을 상대로 관광 사업을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외국 기자들을 수십 명 불러다 식사와 호텔을 무료로 제공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다. 나도 식사와 호텔을 공짜로 제공받았다. 세계적인 신문·방송사 기자들을 불러 잠을 재우고 밥을 먹이면서 자기의 모습을 세계에 내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고 세계에 자신을 보이겠다는 열망과 의지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나를 알림으로써 세계 사람들이 나를 알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개성공단 실무 회담이 열리고 있다. 북한이 처음과는 달리 개성공단 재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 김정일의 유훈 사업이기 때문에 집착이 강하다고도 하고, 개성공단이 파행으로 치달으면 북한이 다른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분석도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저렇게 된 것에 대해서, 저 사람(북한)들도 닫으면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닫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도 일단은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남한에서 ‘개성공단에서 인질이 나오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수없이 나오지 않았나. 그리고 ‘미군이 (인질) 구출 작전을 해야 한다’ 이런 말까지 나왔다. 그런 얘기들이 보도가 됐음에도 개성공단은 ‘달러 박스’니까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으면 ‘봐라. 인질 삼으려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보지 않겠나. 그러면 뭔가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의사표시를 해야 했던 거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7월30일 평양에서 열린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돌 경축행사’에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 제공
남한에서의 다소 자극적인 표현에 자존심이 상해 개성공단 파행까지 야기했다는 말인가.

자존심이 상한 것도 있지만 그런 말(인질 구출 작전 등)이 확산돼버려서 자기들이 그것을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그런 소리까지 듣고 해야 되느냐’는 세력도 있을 것 아니겠나. 한마디로 ‘그렇게 납치·인질 그런 게 두려우면 오지 마라’ 한 거다. 그만두자고 한 것이 아니라 ‘인질이 두려운 사람들이 왜 오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들도 성질이 있지 않겠나. ‘인질이 두려우면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 인질이 되면 미군까지 와서 작전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냐’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개성공단이 잘되면 DMZ 평화공원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게 사실인가. 실제 김 부장이 ‘DMZ 평화공원’을 먼저 언급했나.

(DMZ 평화공원은) 김양건 부장이 아니고 내가 먼저 물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한 얘기이고, (남한에서) 많은 사람이 얘기를 하는 단계라 물어보고 싶었다. “DMZ 평화공원에 대해서 머지않아 (남한이) 정식으로 제안을 한다면 거기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그랬더니,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인 대답을 하더라. “아니, 지금 개성공단도 못 하면서 무슨 평화공원을 한다는 것인가. 객관적으로 말이 되느냐. 세계 전문가들한테 물어봐라. 개성공단도 못 하면서 그걸 한다고 하면 뭐라 하겠는가”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걸 기자들이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서 잘못 쓴 것이다.

김 제1비서가 ‘보여주기 식’ 사업을 많이 벌여서 평양 시내가 화려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도시 환경뿐만 아니라 실제 평양 시민들의 행동이나 외모 그리고 의식에서도 변화나 자유로움이 느껴지던가.

20년 전 여성들은 스커트도 없었고, 거의 바지를 많이 입었다. 그것도 국방색 군복 비슷한 옷 일색이었다. 등에는 이상한 천 가방을 짊어지고 다녔고. 지금은 어떤 면에서는 서울과 차이를 잘 모를 정도이고, 나는 오히려 (북한이) 중국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옷도 엄청 들어와 있고, 아이들의 패션도 다 달라졌다.

지방도 가본 적이 있나.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많지 않을까.

내가 불과 두 달 전에 열차 타고 신의주까지 간 적이 있다. 정주도 가보고. 금강산, 마식령 등 지방을 많이 다녔다. 아마 나처럼 북한의 지방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평양의 잔디밭이 달라진다면 지방도 달라진다. 지방도 같은 수준으로 하라는 지시가 중앙에서 내려가기 때문에 평양이 바쁘면 지방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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