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원짜리 다리 보조기를 팔아 장삿속을 채우는 의사들이 있다. 아이들의 휜 다리를 교정한다는 것인데, 사실 대부분은 정상이어서 치료가 필요 없다. 치료 효과도 없는데다 장기간 보조기 착용으로 아이가 정신 장애나 성장 장애를 겪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 때문에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사 신분을 이용한 사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부 차원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주부 김송이씨(34)는 최근 서울 신사동에 있는 한 뼈 성장클리닉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아이의 휜 다리 교정을 잘한다고 소문난 곳이다. 4살짜리 딸아이가 안짱다리(무릎을 붙이면 정강이가 바깥쪽으로 벌어진 다리, 일명 X자 다리)로 걷는 자세를 걱정하던 터였다. 그는 “의사로부터 아이의 다리가 휘었으니 어릴 때 보조기를 채워서 교정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척추까지 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보조기는 100만원이 넘고, 매달 병원에 갈 때마다 진료비도 몇만 원씩 내야 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보조기 착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느 부모라도 아이의 다리를 예쁘고 곧게 만들고 싶어 한다. 아이 다리가 휘었느니 보조기로 교정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으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이런 심리에 편승한 일부 개원 의사들은 정상적인 다리 모양을 가진 아이에게조차 보조기 판매를 유도한다. 아이의 휜 다리 교정은 수술과 같은 큰 치료가 아니어서 부작용이나 의료사고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사회적인 관심은 적지만 의료윤리 문제인 만큼 사회적 이슈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치료가 불필요한 아이에게 보조기를 파는 의사들이 있는데, 같은 의사로서 부끄러운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아이의 다리는 휘어 있다. 출생 후 2년까지는 발목을 붙이고 다리를 폈을 때 무릎 사이가 벌어지는 O자 다리(내반슬)가 된다. 3~4세가 되면 다리가 X자 모습(외반슬)으로 바뀐다. 무릎을 붙이면 정강이가 바깥쪽으로 휘어지는데, 아이가 종종 W자 모양으로 다리를 구부려 앉는 이유다. 5~7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곧은 다리 모습을 갖춘다. 조태준 서울대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자라면서 다리 모양이 변하는 것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라며 “병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리 보조기를 이용한 교정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1~7세 아이의 휜 다리는 ‘정상’
병적인 경우란 한마디로 희귀병(구루병, 경골내반, 외상, 섬유성 이형성증 등)에 의해 다리가 휜 상태를 말한다. 엑스선 촬영과 다리 각도 등을 측정해서 수술 등 치료법을 결정한다. 질병으로 뼈가 휘었더라도 보조기로 치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수성 서울아산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보조기가 필요한 치료는 10명 중 한 명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적다”며 “특히 다리가 곧지 않은 것은 뼈가 휜 것인데, 휜 뼈는 보조기로 치료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성장클리닉, 뼈 교정클리닉 등의 간판을 단 의원이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 인기다. 보조기 착용으로 아이의 다리가 곧게 자랐다는 부모들의 입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자라면서 다리가 곧게 펴진 것인데도 마치 보조기 때문으로 오해한 것”이라며 “의사가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런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온 ‘아이 성장의 기본은 뼈의 정렬’이라는 홍보 문구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몇몇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살펴본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일부 의원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아이의 발을 모으고도 무릎이 5cm 이상 벌어지면 보조기 착용으로 교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성인 기준이며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그 간격이 변하므로 엑스선 촬영 등으로 뼈의 모습을 보고 치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보조기를 착용하기 전과 후의 사진도 있다. 휜 다리가 보조기로 바르게 정렬됐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진들을 살펴본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아이의 다리는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O자 다리, X자 다리, 곧은 다리로 만들 수 있다”며 “따라서 보조기 착용 전후 사진은 아무나 찍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학병원 교수도 “다리가 휜 성인도 엉덩이에 힘을 주고 무릎을 붙이면 곧은 다리처럼 보인다”며 “이런 사진은 의료 지식이 없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종의 사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치료가 필요 없는 정상적인 아이에게 보조기 착용을 강요하는 행태다. 한 뼈 교정클리닉 관계자는 “병적으로 휜 다리만 보조기를 착용하도록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이 클리닉에서 보조기 착용을 권유받은 아이가 최근 한 대학병원을 찾아 재검사를 받았다. 이 아이의 다리를 검사한 정형외과 교수는 “그 아이의 다리는 정상이어서 아무런 치료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그 클리닉에 다녀온 아이 부모들에게 들어보니, 그 의원은 거의 모든 아이에게 보조기 착용을 강요했다”며 “정상인데도 ‘아이의 다리가 휘었는데 방치하면 척추도 휘어서 자세가 나빠져 공부에도 지장이 생긴다’는 말로 과도한 공포심을 일으켜 아이가 보조기를 착용하도록 유도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개원의들은 아이가 보조기를 보통 1~2년 동안 착용하도록 권한다. 무릎을 90도로 굽힌 상태로 무릎 아래 부위를 철제 보조기로 고정한다. 아이들에게 보조기는 족쇄와 같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그런 보조기를 몇 개월 착용하기도 어려워서 대부분은 중도에 포기한다”며 “대학병원에서는 20만원 정도인 보조기를 일부 클리닉에서는 자체적으로 특수 제작한 보조기라며 100만원 이상을 받고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시간 보조기 착용하면 부작용
교정 효과도 없는 보조기 착용으로 아이가 성장 장애나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온종일 또는 잘 때만 보조기를 착용하더라도 한창 뛰어놀 시기에 활동할 수 없어서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면서 “오랜 기간 보조기를 착용해서 다리 움직임이 둔해지면 성장 장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의 휜 다리 교정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울 신사동에 있는 한 뼈 성장클리닉 원장은 소아과 전문의다. 소아과 전문의가 정형외과 치료를 해도 될까.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수술과 같은 큰 치료가 아니라서 소아과 전문의의 (정형외과) 진료는 가능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다른 소아과와 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물어보니 의과대학에서 뼈 교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의료법상으로는 문제없지만 소아과 의사는 뼈 교정에 비전문가라는 얘기다.
이와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부 소아과 개원의들은 외국에서 그럴 듯한 증명서를 따와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 한 소아과 의사는 미국에서 받은 신발 치료 관련 자격증과 수료증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를 본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정형외과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처음 보는 증명서”라고 말했다.
비전문가가 뼈 교정을 하며 소비자에게 치료 근거도 없는 보조기 착용을 유도하는 행태로 인해 의료계는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의료법상 의사가 자신의 진료 과목 외의 진료를 했다고 해서 제재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학회 차원에서 대응을 고려했지만 의료법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정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기 의사’에 속지 않는 법 ● 아이의 다리가 휘어 보여도 대부분은 정상적인 성장 과정의 일부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검사를 받고 싶다면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 동네 소아과에서 보조기 치료를 권유받았다면 대학병원이나 정형외과를 찾아 재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 보조기 교정과 함께 물리치료나 재활치료를 권유받는 경우도 흔한데, 치료 효과가 의심스럽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민원을 접수할 수 있다. 근거 없는 치료에 대해 치료비를 되돌려 받은 사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