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감사는 이미 정해져 있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9.16 14:49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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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 없다”는 건 ‘그냥 떠보는 얘기’ 공기업 지각 인사의 허실

‘노처녀, 시집 안 간다’ ‘노인네, 빨리 죽어야지’ ‘장사꾼, 밑지고 팝니다’.

지금은 세태와 맞지 않아 잊혔으나 한때는 ‘3대 거짓말’로 회자되던 우스갯소리다. 이 모델을 요즘 버전으로 되살릴 때 딱 어울리는 게 있다. ‘공기업, 낙하산 인사는 없다’도 그중 하나다.

‘낙하산은 없다’는 말은 웃기는 얘기다. 정권 획득에 수고한 사람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마당이다. ‘내 새끼 챙기기’가 급한데 하물며 수천 명에 대한 인사권과 천문학적 예산을 주무르는 알토란같은 자리들을 포기할 리 없다. 그저 ‘전문성 없는’ ‘나눠 먹기’라는 시비를 피하기 위해 신경 쓰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는 비단 현 정부뿐 아니라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자리를 고대하는 수많은 눈길이 인사위원장을 겸하는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에게 쏠려 있다. ⓒ 연합뉴스
임원추천위원회가 3~4배수로 올린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최적임자로 선정한다는데 이 또한 그럴듯한 명분일 뿐이다. 미리 내정된 사장·감사·임원이 그대로 임명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나머지는 들러리다. 혹시 내정자에게서 부적격 사유가 발생할 때 들러리 중 하나가 대타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싶지만 이는 오산이다. 이럴 경우 대개는 추천된 3~4인 모두 문제가 있다며 재공모 지시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알짜배기를 허투루 내버릴 리 없는 것이다.

사장 등을 내정하는 주체는 물론 청와대다. 인사위원장을 겸하는 실세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 전체를 재단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주무 부처 장관이나 공공기관을 통괄하는 기획재정부도 특히 박근혜정부의 첫 인사인 이번 일괄 인사에 관한 한 곁가지다. 행여 추천 정도는 할지 몰라도 ‘내정’과는 무관하다. 청탁을 받은 주무 장관이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게 엄살이 아니다. 오해나 받기 십상인 일에 끼어들 눈치 없는 장관은 없을 터이다.

이렇게 빤한 실상도 모른 채 스스로 전문가랍시고 응모한다면 ‘물정 모르는, 덜 떨어진 사람’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물론 개중에는 유력자의 언질을 받고 응모했으나 더 큰 유력자를 등에 업은 경쟁자의 끗발에 밀려 탈락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안 될 줄 빤히 알면서도 공기업 사장 후보군에 끼었다는 언론 보도를 기대하고 지원하는 못난 인사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임기 만료된 사장·감사까지 방치하고 있다며 아우성인 공기업 지각 인사의 속사정은 어떤가. 일단은 내정자가 최종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보면 틀림없다. 청와대는 그동안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등 18대 대통령선거대책기구와 새누리당 등으로부터 인물 천거를 받았다. 1단계 전형을 거친, 본인의 정보청구동의서를 받은 파일만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는 전언이다. ‘입막음’을 위해 야당 추천 인사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배려’하므로 수는 더 늘어났다. ‘야당 파일’에는 별표가 첨부돼 있다.

보통 ‘공기업 인사’라고 불리지만 ‘공공기관 인사’라고 하는 게 맞다. 노무현 정부 시절 책임 경영을 한다며 ‘민영화 공기업-정부투자기관-정부산하기관’으로 나뉜 것을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 기관’으로 재분류했다. 이에 따라 3개 부문 해당 기관은 2013년 현재 295개에 이른다.

공기업은 직원 50인 이상에 자체 수입이 총 수입액의 2분의 1보다 많은 기관이다.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이면 시장형 공기업, 그게 아니면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분류된다. 시장형 공기업에는 가스공사·석유공사·한전을 비롯한 발전소, 인천국제공항공사·부산항만공사 등 14개 기관이 해당된다. 준시장형 공기업은 조폐공사·관광공사·마사회·석탄공사·토지주택공사·감정원·도로공사·수자원공사·철도공사·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등 16곳이다.

준정부기관은 공기업이 아닌 직원 50인 이상 기관 중 기재부장관이 지정하는데 이는 다시 기금 관리형과 위탁 집행형으로 나뉜다. 기금 관리형 준정부기관에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국민체육진흥공단·근로복지공단 등 17곳이, 위탁 집행형에는 건강보험공단·농수산식품유통공사·국립공원관리공단·교통안전공단·철도시설공단·지적공사 등 70개가 포함된다.

기타 공공기관으로는 수출입은행과 한국투자공사, 각 국립대학교 병원, 한국과학기술원, 한국폴리텍 등 178개 기관이 망라돼 있다.

10월 들어서야 대강 마무리될 듯

이 밖에 공공기관으로 분류되지 않는 각 부처 산하 기관이 300여 개 있는데 이런 것들은 해당 부처가 자체 인사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활용된다. 그러니까 청와대가 공공기관에 끼지 않는 이들 300여 개 기관까지를 직접 챙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300여 개의 사장·감사·임원 등 ‘요리’할 대상은 엄청나다. 자리는 수천 개가 된다.

이런 상황이니 인사가 늦어지는 것도 일면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기 인력에 비해 자리가 터무니없이 적다 보니 교통정리가 여의치 않고, 결국 인사가 미뤄지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 초기의 인사 난맥과 그에 따른 비판적 여론에다 낙하산 시비를 경계하느라 잔뜩 몸조심을 해야 했고, 첫 인사위원장인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인사 잡음 등에 휘말려 중도 하차함으로써 더더욱 늦어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와 대립했던 다른 진영 측 인물 ㅇ씨를 청와대 비서관에 기용했다가 대통령의 눈 밖에 난 허 실장은 이후 인사에서도 구설에 오르내렸다.

허 실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기춘 실장이 바짝 서두른다는 전언이지만 대선 논공(論功) 등 이런저런 요소를 감안하다 보니 마무리가 여의치 않을 것임은 대충 짐작된다. 김 실장 외에는 인사를 ‘주무를’ 핵심 실무자가 없는 것도 지연의 한 이유다. MB 정권 때는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대리해 박영준 ‘왕비서관’이 인사를 도맡았다.

한 관계자는 최종 단계에 이른 ㅎ공단 사장 인선의 경우 비위를 적시한 투서가 몰리는 바람에 중지해야 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름의 줄을 잡고 뛰는 사람들이 유력 경쟁자의 비위를 제보하는 일이 숱하고,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인선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사실 지각 인선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으나 MB 정부 때도 11월 들어서야 대충 마무리된 것에 견주면 아주 늦은 것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ㄱ공단 감사 등은 임기 만료 10개월이 지날 때까지 현직에 있기도 했다.

사장·감사·임원 임명을 위해서는 추천위원회(추천위)가 구성돼 일간지에 공고를 내고, 추천위가 응모자 가운데 3~4배수의 후보자를 선정한 다음 이들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에 천거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이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공정을 가장하기 위한 ‘쇼’라고 보면 가히 틀리지 않는다. 통상 기관을 대표한 추천위원이 ‘내정자’를 귀띔해 분위기를 잡으면 그 ‘내정자’와 2~3명의 들러리가 추천된다. 이 ‘쇼’를 위해 건당 3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니 예산 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자천 타천 들러리 못지않게 한심한 군상은 아직 임기가 남았다며 자리에 연연하는 이들이다. 일부는 튼튼한 연줄을 찾아 뛰고, 어떤 기관장은 혹시나 싶어 기관 평가 점수에 목을 매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대선 때의 기여를 인정받아 청와대의 확실한 언질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보따리를 싸는 게 일신상 이롭다. “산하 기관장으로 있는 지인이 내년까지인 임기를 채울 수 있도록 조르고 있어 골치를 썩이고 있다. 내가 나설 계제가 못 되는데도…. 그러다 망신이라도 당할까 걱정스럽다.” ㅇ부서장의 푸념이다.

“인사가 늦어진다고 아우성이지만 개의할 게 아니다. 불평불만은 이해 당사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다른 데로 튈 사람들도 아니지 않은가. 큰 그림은 정해졌으니 최종 검증만 하면 끝난다.” 공기업 인사가 추석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다만 잡음을 피하기 위해 일괄이 아닌, ‘산발적’ ‘축차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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