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하이텍 보안에 구멍 뚫렸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5:28
  • 호수 12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구원이 핵심 반도체 기술 유출 시도…국정원·검찰 공조로 출국 직전 체포

지난 8월13일 오전 11시께.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동부하이텍의 핵심 반도체 기술을 빼낸 책임연구원 유 아무개씨가 이날 오후 4시 비행기로 출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무전기에서 유씨가 공항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흘러나왔다. 잠복하고 있던 국정원과 검찰 수사관은 출국 직전 유씨를 체포했다. 수천억 원대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국내 반도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8월 초부터 유씨를 내사해왔다. 유씨는 후발 업체인 W사 김 아무개 사장과 공모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빼돌린 기술을 바탕으로 싱가포르에 회사를 설립했고, 유씨는 고가의 주택과 거액의 연봉을 약속받았다.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국정원은 유씨의 퇴직일이나 출국 날짜 등을 은밀히 체크했다. 내사 과정에서 유씨가 이미지센서(CMOS) 회로도 등 핵심 기술 자료 1000여 장을 출력한 사실을 밝혀냈다. 유씨가 회사 서버의 보안 프로그램을 우회해 기술 자료를 유출하려 한 사실도 확인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유씨가 이미 8개월 전에 W사에 합류한 상태였다”며 “동부하이텍에 근무하면서 주말을 이용해 W사에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핵심 반도체 기술이 유출될 뻔한 동부하이텍 부천공장 클린룸. ⓒ 뉴스뱅크 이미지
회사 보안 시스템 우회해 기술 유출 시도

국정원은 동부하이텍 소재지 관할인 인천지검 부천지청에 첩보 내용을 이첩하고, 유씨에 대한 출국 금지와 수사를 요청했다. 추가 내사 과정에서 유씨가 싱가포르행 항공기에 탑승하려 한다는 사실을 출국 하루 전에 알게 됐다. 이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국정원은 이 사실을 검찰에 통보했고,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유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다행히 국정원과 검찰의 공조 수사로 유씨는 공항에서 체포됐다. 검찰은 8월22일 유씨를 영업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유씨와 공모한 후발 업체 사장 김씨는 기소중지 상태다. 인천지검 부천지청 관계자는 “김씨는 현재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김씨의 신병을 현지에서 직접 확보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씨가 빼돌린 기술이 실제로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김씨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다. 검찰은 그 부분에 대해 수사 중이다.

동부하이텍은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평소 유씨를 잘 알고 있다는 한 직원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관련 사업부의 매출이 아직 50억원대에 불과하다”며 “설계 기술이 유출된다 해도 제품화하는 데 2년 이상 걸리는 만큼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나 국정원은 관련 기술의 가치가 수천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휴대전화뿐 아니라 디지털카메라, 블랙박스 등으로 반도체의 용도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씨가 빼낸 것은 CMOS 이미지센서 기술이다. 이미지센서는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비메모리 반도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계가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는 올해 CMOS 이미지센서 시장을 82억 달러로 전망했다.

동부하이텍도 최근 위탁 생산에 한계를 느끼고 독자적인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관련 부서를 꾸리고 2년여 동안 제품 개발에 힘썼다. 평소 ‘기술 독립’을 주장해온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물이 CMOS 이미지센서 기술이다. 이 제품은 최근 스마트폰 수요가 급격이 늘어나면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스마트폰 판매량이 2011년 1억대에서 올해 2억대를 돌파할 것으로 평가된다. 동부하이텍은 최근 중국의 유명 전기전자그룹 비야디(BYD)에 관련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관련 기술이 유출됐다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김준기 회장

재계에서 김준기 회장의 ‘반도체 사랑’은 유별나다. 김 회장은 동부하이텍이 적자 구조를 탈피하고, 자체 기술을 개발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은 2003년 인수한 아남반도체를 통해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특성상 초기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동부는 2004년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1조9000억원을 끌어왔다. 2007년에는 알짜 계열사 동부한농과의 합병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자 했다. 동부한농이 거느린 알짜 사업 부문과 계열사 지분은 동부하이텍을 회생시키는 데 거름 역할을 할 전망이다.

2007년 12월 1조9000억원의 차입금 만기가 돌아왔다. 김 회장은 자산 매각을 통해 2009년까지 9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조건으로 1조2000억원의 거치 기간을 2012년 말까지 연장시켰다. 당시 자금 마련을 위해 매각한 자산은 대부분 합병 전 동부한농 소유였다. 김 회장도 3000억원에 달하는 사재를 출연했다. 이후에도 동부하이텍은 기존 차입금 차환과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계열사로부터 단기 자금을 계속 빌려 썼다. 때문에 경제개혁연대는 “김준기 회장이 부실 사업 리스크를 그룹의 우량 사업 부문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안팎의 우려에도 김 회장은 뚝심 있게 반도체 사업을 밀고 나갔다. 동부하이텍이 지난 2분기에 흑자로 돌아선 것도 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재계 관계자는 말한다. 동부하이텍은 2분기에 12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당기순이익은 아직 적자 상태이지만, 분기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주가도 오랜만에 상승세를 유지하며 8월 말 대비 5% 이상 올랐다.

하지만 적자 탈피에 대한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반도체 기술이 내부 직원에 의해 유출되면서 검찰과 국정원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특히 구속된 유씨가 내부에서 설계도를 인쇄하고, 서버를 우회해 기술을 유출한 사실까지 밝혀졌다. 회사의 보안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 회장의 입장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다. 이와 관련해 동부하이텍 측은 “내부 직원이 맘만 먹으면 삼성전자라 해도 막을 수 없다”며 “보안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202건의 국내 기술이 불법 유출되는 과정에서 적발됐다. 매년 40여 건의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2012년에는 기술 유출 건수가 30건으로 전년(40건)에 비해 25% 감소했지만, 사건 발생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기술 유출 범죄가 점차 지능화·첨단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추정하고 있다.

주목되는 사실은 대기업의 피해 건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 건수는 중소기업이 144건(71%)으로 가장 많았고, 대기업 48건(24%), 연구소 5건(2.5%)이었다. 대기업의 경우 2008년 16건, 2009년 11건, 2010년 10건, 2011년 11건으로 차츰 줄어들고 있다. 꾸준히 보안 관련 투자를 해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소기업 관련 사건은 2008년 24건에서 2011년 37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2012년의 경우 총 30건 중 중소기업이 24건(80%)을 차지했다. 기술 보호를 위한 투자 여력이 없는 데다, 당장의 영업 실적을 우선시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시사저널 포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기술 유출 피해 급증

전문가들은 전문 수사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아울러 내부 직원에 의한 기밀 유출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직원 윤리 교육 등을 통해 보안 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 관계자는 “최근 벌어진 기술 유출 사건 상당수가 연구원이나 협력업체 직원들을 통해 발생했다”며 “기업 스스로가 교육 등을 통해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기술이 유출된 동부하이텍 역시 내부 보안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혀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첨단 기술 유출의 경우 중국·타이완 등과 같은 주변의 기술 경쟁국으로 유출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전문 인력 양성과 함께 현재 정부 부처별로 나뉘어 있는 기술 유출 방지 체계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LG에서도 기술 유출됐다” 


지난해에는 삼성과 LG 두 곳에서 상용화되지도 않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인 아몰레드(AM-OLED)가 해외로 유출됐다. 기술을 빼돌리는 수법 또한 교묘해지고 있다. 아몰레드는 LCD보다 응답 속도가 1000배 이상 빠르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해 각각 1조3800억원, 1조270억원을 투자했다. 삼성과 LG는 아몰레드 기술과 관련한 시장 규모가 9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협력업체 직원들에 의해 이 기술이 유출됐다. 이 협력업체는 삼성전자 등에 LCD나 아몰레드 관련 검사 장비를 납품해왔다. 납품한 장비의 운용이나 기술 지원 등을 이유로 자연스럽게 공장이나 사무실 출입이 가능했다. 이들은 55인치 TV용 아몰레드(화이트올레드) 패널의 실물 회로도 등을 USB에 복사한 뒤 신발·벨트 등에 숨겨서 가지고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김영종)는 2012년 6월 아몰레드 기술을 해외 경쟁 업체 등에 넘긴 혐의로 O사의 한국지사 간부 이 아무개씨 등 6명을 기소했다.

비슷한 시기 LG전자에서는 시스템 에어컨의 핵심 제조 기술이 내부 직원에 의해 유출됐다. 이 회사의 박 아무개 부장과 윤 아무개 차장은 산업부 과제를 수행하면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연구비 8억원을 빼돌렸다. 박씨 등은 자체 감사에서 횡령 사실이 적발되자 PC에 보관된 연구 자료를 외장형 하드에 복사한 후 외부로 유출했다. 이후 중국을 오가며 경쟁사와 전달 조건 등을 협의했다. LG전자는 국내 시스템 에어컨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다. 박씨 등이 빼돌린 기술은 에어컨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후발 주자에게는 시장을 역전시키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박씨 등은 심지어 LG전자 측에 “29억원을 주지 않으면 국가 R&D(연구·개발) 수주 관련 회사 비리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박씨 등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도피했지만, 곧바로 긴급체포돼 구속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