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터지고 뼈 부서질수록 열광한다
  • 이교덕│ 기자 ()
  • 승인 2013.10.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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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격투기 UFC 인기몰이 정찬성·김동현·추성훈 등 한국인 파이터 대활약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지난 8월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눈이 동그래졌다. 많은 취재진에게 그는 “어휴, 정말 많이 와주셨네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국내 종합격투기 파이터의 귀국에 여러 기자가 몰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찬성은 국내에서 인기 있는 파이터다. 경기를 공격적으로 풀어가다가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한다. 관중과 시청자에게 박진감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2011년 UFC 데뷔전에선 상대의 온몸을 꽈배기처럼 뒤트는 ‘트위스터’라는 기술로 레너드 가르시아에게 항복을 받았다. 마크 호미닉은 경기 시작 7초 만에 쓰러뜨렸다. 지난해 더스틴 포이리에와의 경기는 ESPN에서 ‘올해의 명승부’로 꼽을 만큼 화끈했다.

정찬성은 지난 8월4일 UFC 163에서 챔피언 조제 알도에게 패했지만 잘 싸웠다. 1, 2라운드에는 밀리다가 3라운드부터 전세를 뒤집으려 했다. 4라운드 본격적인 역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펀치를 던지다가 갑자기 오른쪽 어깨가 빠졌다. 사고였다. 정찬성은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도 스스로 팔을 끼워 맞춰보려 했다. 상대의 빈틈을 발견한 챔피언 알도는 육식동물처럼 달려들어 정찬성의 오른팔에 세 차례 하이킥을 날렸다. 결국 정찬성은 반격하지 못하고 TKO로 패했다.

지난해 5월15일 더스틴 포이리에(미국)와의 경기에서 발차기를 하는 정찬성. ⓒ 고준일 제공
손에 땀이 흥건…아드레날린 분비 최고치

어깨를 넣으려는 모습을 지켜본 UFC 선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정찬성을 못마땅하게 보던 페더급 라이벌 컵 스완슨도 “코리안 좀비는 나한테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팬들이 그를 사랑한다. 어깨 부상이 선수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을 정도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휘된 승리의 의지는 경기를 지켜보던 국내외 팬에게 짠한 감동을 줬다.

정찬성의 경기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종합격투기의 인기가 왜 상승하는지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종합격투기는 현존하는 것 중 가장 개방적인 룰을 가진 투기 스포츠다. 서서 주먹과 발로 타격을 할 수 있고 누운 상태에서 목을 조르거나 관절을 꺾어 기권을 받을 수 있다. 경기가 끝나는 방식이 다양하다.

그래서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정찬성이 UFC 최초로 트위스터를 써서 승리할지, 강자 마크 호미닉을 7초 만에 쓰러뜨릴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피니시 기술’을 기다리다 보면 손에 땀이 흥건해지고 아드레날린 분비는 최고치에 이른다. 의외성은 종합격투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종합격투기가 가장 강한 투기 스포츠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룰이 개방적이니 어떤 투기 스포츠 선수가 와도 대응이 가능하다.

실제로 여러 세계챔피언 출신 복서가 종합격투기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010년 UFC에 IBF 미들급 챔피언 출신 제임스 토니가 출전했지만, 베테랑 랜디 커투어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1라운드 3분19초 만에 조르기로 패했다. 서서 주먹만 써오던 그는 커투어가 테이크다운으로 넘어뜨리고 위에서 누르자 허우적거리다가 기권했다.

최근 마이크 타이슨은 한 인터뷰에서 1993년 UFC 첫 번째 대회에서 우승한 호이스 그레이시와 당시에 맞붙었다면 승리할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주저주저하다가 “레슬링 등 그래플링 기술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답했다. 종합격투기 마니아인 그는 핵 펀치만 가지곤 다양하게 대응할 수 있는 종합격투기 선수를 꺾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선수들의 다양한 캐릭터도 종합격투기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룰이 열려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저마다 특기가 있고 경기 스타일이 다양하다. 과거 이종격투기 시대보다는 덜하지만 타격가, 레슬러, 서브미션 그래플러, 그라운드 앤 파운더 등으로 스타일이 나뉜다. 난타전을 즐기는 정찬성과 같은 선수도 있고, 레슬링으로 압박해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김동현 같은 스타일도 있다. 제각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오락실 대전 게임과 같은 느낌이다. 맞붙는 두 선수의 스타일에 따라 경기 양상도 천차만별이다. 두 선수의 조합으로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근 국내에서 UFC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은 여러 토종 선수가 강자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찬성은 물론이고, 2008년 5월 국내 최초 UFC 파이터가 된 김동현, 유도선수 출신으로 인기가 높은 추성훈, 양팔 길이가 2m에 달해 웰터급에서 가장 리치가 긴 임현규, 빼어난 외모와 깔끔한 기술을 가진 강경호,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벤 헨더슨의 등장은 국내 팬을 즐겁게 한다.

이들의 활약은 국내의 UFC 인기를 더욱 끌어올릴 전망이다. 알도와의 경기에서 당한 어깨 부상으로 최근 수술을 받고 약 1년 동안 재활을 해야 하는 정찬성은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지만, 맏형 김동현이 웰터급 타이틀 도전 경쟁에 한창이고 임현규가 2연승으로 성장하고 있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김동현이 3월3일 시야르 바하두르자다(아프가니스탄)를 테이크다운시킨 후 펀치를 날리고 있다. 김동현은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 고준일 제공
정찬성 vs 알도,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

UFC 전적 8승2패로 일본의 오카미 유신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 다승 기록을 가진 김동현은 10월10일 브라질에서 열리는 ‘UFC FIGHT NIGHT 29’에 출전해 신성 에릭 실바와 격돌한다. 최근 2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어 이번에 승리하면 대권 도전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지난 9월1일 UFC 데뷔 이후 2연승을 따낸 임현규의 기세도 좋다. 두 경기 모두 니킥으로 상대를 KO시켜 임팩트가 강했다. UFC의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엄청난 한국인 파이터가 또 등장했다”며 보너스로 5만 달러를 쥐어줬다. 임현규는 신장 187cm에 200cm 리치로 웰터급에서 최강의 하드웨어를 자랑한다. 톱클래스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자질을 지녔다.

밴텀급 강경호는 2연패 중이지만 기본 기량이 수준급이어서 분위기를 타면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다. 다만 UFC가 기회를 무한정 주지 않는다는 점이 걸린다. 4경기 계약 중 2경기를 패했으니, 반드시 2경기를 이겨야 생존이 가능하다. UFC는 연패에 빠지고 흥행성이 없는 파이터는 과감하게 퇴출시킨다.

추성훈과 벤 헨더슨은 한국계로 관심을 끄는 파이터다. 추성훈은 올해 만 38세로 전성기는 지났다. 4연패 중이라 1패를 추가할 땐 미래를 보장받기 힘들다. 현재 무릎 부상 치료 중으로 복귀 시기를 타진하고 있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벤 헨더슨은 UFC 라이트급 챔피언이었지만, 9월1일 앤서니 페티스에 암바로 패해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는 타이틀 탈환을 위해 다시 뛰고 있다.

UFC의 인기는 시청률에서 나타난다.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8월4일 정찬성이 알도와 맞붙은 UFC 163의 시청률은 평균 2.1%, 최고 4.9%로 케이블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대회를 1분 이상 본 시청자가 102만명이었고, 20대 남성 사이에선 점유율이 30%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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