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손’에도 욕망·폭력·희망 있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12.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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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계간지에 단편 <손> 발표한 김훈

소설가 김훈이 오랜만에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문학동네 계간지 겨울호에 <손>을 내민 것이다. 그 <손>을 슬쩍 보니 ‘기자 김훈’의 손이, 당시 펜을 움켜쥐고 있었을 그 손의 체온이 느껴진다. 기자로서 보았던 세상을 들려주기라도 하듯 소설의 시작이 경찰서다. 그는 경찰서 건물에서 맡은 지린내를 묘사하면서 ‘경찰서에 끌려오는 사람들의 오줌은 훨씬 더 독한 모양’이라고 썼다. 김 작가는 경찰서에서 본 범죄자의 손을, 피해자 아버지의 손을, 피해자의 손을 그려나간다. 각각의 손을 통해 악과 폭력, 헌신, 욕망, 희망 등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 시사저널 박은숙
7년 만에 내놓은 ‘김훈’식 단편

언제부턴가 김 작가는 장편소설만 쓰고 있다. 2007년 <남한산성>에 들어간 이후부터 그랬다. 2011년 <흑산>에 오르고서도 단편을 발표하는 일이 없었다. 써지지 않았거나 장편이라는 긴 여행길에서 쓸 틈을 얻지 못했거나.

<칼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김 작가지만, 그는 단편 <화장>과 <언니의 폐경>으로 각각 이상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단편의 묘미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2006년 김훈 작가의 ‘빛나는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강산무진>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의 단편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무심하게 세월만 흘렀고, 이를 기다리다 지친 출판사가 김 작가에게 단편을 졸랐다. 그 출판사가 펴내는 계간지 담당자는 2013년 겨울호를 준비하면서 반가운 원고를 안아들 수 있었다.

올봄까지만 해도 경북 울진의 지인이 마련해준 집필실에 머물렀던 김 작가. 요즘 경기도의 한 섬에서 장편을 집필 중이란다. 김 작가는 단편 <손>을 내밀게 된 연유를 소설 끝에 짧게 소개했다. 한 소방관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단초였다.

어느 날 작가는 도봉산악구조대에서 근무하는 젊은 소방관의 편지를 받았다. 소방관은 부산에서 인명 구조 활동을 하던 시절 한 여인의 목숨을 구하려다 실패했던 이야기를 김 작가에게 털어놓았다. 물에 빠진 여인을 가까스로 건져냈는데, 인공호흡을 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소방관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의 목과 머리카락을 부여잡던 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작가는 출판사의 요청도 있었지만 이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꼈다.

<손>은 1인칭 소설로 중년 여성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세상을 읽어나간다. 중년 여성이 성폭력 사건 용의자로 붙잡힌 아들 때문에 경찰서를 방문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여성은 아들 편에 서지 않고 경찰보다도 더 냉철하게 사건을 바라본다. ‘아들의 생애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어미의 시선이다. 성폭력을 저지른 아들의 손은, 더 이상 어릴 적 예술가가 될 손으로 봤던 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혼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자식이다. 이혼 후 전 남편에게 맡겨졌던 아들은 열 살 되던 해 남해안의 항구도시에서 서울까지 생모인 주인공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친할머니에게 되돌려 보내야 했고, 아들은 성장해 가출하고야 말았다. 아들이 최근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어미의 눈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했을 아들의 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경찰서에서 아들에게 강간당한 후 한강에 투신한 피해 여성의 아버지를 만난다. 목수가 직업인 그의 손은 이 세상 아버지의 손을 대변하는 듯하다. 목수는 딸이 자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상구조대원의 출동 일지 사본을 증거물로 제출한다. 구조대원의 출동 일지에는 ‘여자의 손은 살려고 무얼 자꾸 잡으려 했다’고 적혀 있다.

군인 신분인 아들은 결국 특수강간·특수감금·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군사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는다. ‘나’는 피해 여성의 아버지가 목수로 일하는 사찰 공사장을 찾아간다. 살려고 무얼 자꾸 잡으려 했다는 피해 여성의 손을 떠올리면서.

고귀함과 야만이 공존하는 인간 세상 그려

김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손을 묘사하면서 세상의 불합리함과 비정한 인간사를 담담히 그려나간다. 기자가 사건을 보도하는 것처럼 치밀한 단문으로 써 단숨에 읽힌다. 그래서 1인칭 소설인데도 주관은 거의 개입되지 않았다. 김 작가는 최근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에세이에는 주관적인 생각과 정서가 노출돼 있다. 하지만 내 소설에는 내가 거의 노출이 안 돼 있다. 나는 이 세상의 바탕이 인간의 악과 폭력 그리고 야만성, 약육강식 등과 인간의 아름다움, 인간의 이성,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인간의 열망 등이 공존하는 것이라 본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 야만 등과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말을 그대로 그의 작품들에 반영해온 것이다. <손> 또한 그렇다. 김훈 작가는 지금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 연필을 손에 움켜쥐고 꾹꾹 눌러 쓴다. 작가의 생각을 손이 느끼고, 그 느낌을 아는 손은 원고지에 조각하듯 그려나갈 것이다.

김 작가 아버지는 소설가였다.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어서, 병상에 누운 아버지가 구술하는 소설을 아버지의 손을 대신해 받아 적었다. 그 손으로 원고료를 받았을 것이며, 일찍 세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가 본 세상은 그의 움켜쥔 손을 거쳐 기사로, 에세이로, 소설로 탄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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