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원짜리 공장 무법천지로 변했다
  • 중국 다롄 시=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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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째 조업 중단된 STX다롄 조선소 현지 취재 3만명이던 직원 겨우 200명만 남아

STX다롄조선은 2007년 STX그룹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連) 시 528만9256㎡(160만평) 부지에 약 3조원을 투자해 만든 초대형 조선소다. STX다롄건설·STX다롄엔진 등 13개 계열사와 40여 개 협력업체의 투자 규모까지 더하면 STX다롄조선에 투입된 금액은 4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조선업 불황이 이어지고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지난해 4월부터 조업이 중단된 상태다.

1월10일 중국 다롄 시 장흥도의 STX다롄 조선소를 찾아갔다. 한때 3만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작업을 하던 조선소 공장은 폐허처럼 삭막했다. 수백 대의 차가 가득 서 있어야 할 조선소 정문 앞 주차장에는 고작 3~4대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이미 90% 가까이 공정을 마친 배 한 척만이 이곳이 조선소라는 것을 흔적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1월10일 중국 다롄 시 장흥도에 위치한 STX다롄 조선소가 가동이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9개월 가까이 방치된 조선소에는 이제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서다. 그동안 조선소 안의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직접 만들어 썼지만, 월급이 계속 밀린 엔진 공장 직원들이 집단 항의에 나서 결국 조선소 불빛을 밝히던 엔진마저 멈췄다.

현재 조선소에 출근하는 직원 수는 불과 200여 명. 주로 중국인 직원들인데 이들은 이직을 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STX다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중국의 사회보험제도 때문에 현재 다니는 회사가 직원들의 사회보장보험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마음대로 이직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STX대련은) 보험금 때문에 중국인 직원들을 내보내고 싶어도 내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래서 기존에 만들어놓은 선박을 내보낸 뒤 들어온 인도금으로 (직원) 월급을 줬는데 이마저도 끊겼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공장 부품 빼돌려 팔아”

주인 없이 방치되고 있는 조선소의 실상은 참담했다. 현지의 주요 협력업체 관계자는 “모두 떠나고 난 뒤 조선소는 무법지대가 됐다. 일부 직원들은 공장 안에 쌓여 있는 부품을 공공연히 빼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월10일 STX 조선소 일대를 방문했을 때, 조선소에서 부품을 빼내는 직원들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조선소가 위치한 항구의 바다에 구리선이나 철강 부품들을 내던져두고 나중에 이것이 물 위로 뜨면 뗏목을 타고 가서 건져내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간 큰 직원’들은 암암리에 설계 도면 거래에 나서기도 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STX다롄의 현지 협력업체들 또한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납품 대금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 계약에 맞춰 만들어놓은 물품들마저 고철 덩어리가 됐다. 이미 한국 협력업체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 회사들이 모여 터를 잡았던 STX한국협력공단에는 원래 12개의 기업이 있었는데 지금은 단 두 곳만 남아 있다. STX다롄조선의 40여 개 협력업체들은 이미 2년 전부터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도산한 곳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STX다롄조선의 현지 협력업체들로 구성된 STX채권사협의회의 최희암 대표(고려용접봉 중국법인 대표)는 “며칠 전에도 한 협력업체 대표가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결국 야반도주했다”며 “협력업체들이 STX다롄으로부터 받아야 할 대금이 1000억원대에 달한다. 현지에 남아 있는 업체들은 중국 기업과의 거래도 불가능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STX다롄조선은 중국의 조선소에 흡수될 위기에 처해 있다.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미 2년 전부터 ‘중국의 다롄조선(중국 북방 지역의 대표적 조선소)이 STX다롄조선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지난해 STX다롄 조선소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기 직전에는 중국의 남방 지역 조선집단에서도 기업 인수를 위한 실사에 나섰다고 한다. 현지 관계자는 “공장이 멈춰서기 한두 달 전에 남방 지역 조선집단에서 실사를 나왔는데 당시 부채와 운영 자금까지 포함해 200억 위안(약 3조원)이 들어간다고 했다”며 “중국이 절대 제값에 사려고 하지 않는다. 중국 쪽에선 (STX다롄이) 청산 절차에 들어가고 이를 (중국이) 공개 매각해 값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STX다롄이 중국에 넘어가면 한국 조선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게 뻔하다. 한국의 첨단 조선 기술을 덤으로 넘겨주는 꼴이 된다. STX채권사협의회의 최 대표는 “3조원의 국부가 중국으로 빠져나갈 상황인데도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STX그룹 채권단조차 손을 놓고 있다”며 “이대로 (STX다롄이) 청산 절차에 접어들면 매각을 통해 중국 조선소로 합병될 것이다. 결국 4조원의 투자금은 물론이고 한국의 기술력 또한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중국 기업이 STX다롄을 흡수할 경우 세계 조선업계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STX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만약 중국 조선소가 STX다롄을 헐값에 매입하면 STX의 엔진 공장이 통째로 중국에 넘어가게 된다”며 “중국에는 선박 엔진 기술이 없는데 이 기술이 넘어가면 설비 장치는 물론, 기계 배치 동선까지 중국 수중에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는 “STX조선이 자체 개발한 신공법인 ‘플로팅 기법’은 기존의 플로팅 도크(해상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바다 위의 도크) 건조 공법을 개선해 선박 건조 시간을 단축시킨 공법이다. 또 한국의 조선 기술 가운데 ‘육상 건조 공법’이 있는데 말 그대로 평지에서 배를 만든다는 뜻”이라며 “이는 모두 중국에는 없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중국 조선업체는 군함·일반함 등을 주로 수주해왔는데 이는 특수함을 만들 수 있는 엔진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는 “중국 조선업계가 STX다롄조선을 통해 한국 엔진 기술 및 노하우를 흡수하게 된다면 중국이 한국 조선 기술을 추격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월10일 STX다롄 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조선소 안에서 부품을 빼내는 직원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 시사저널 최준필
한국 ‘조선강국’ 위상 크게 흔들릴 것

이미 ‘조선(造船)강국’ 한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중국 조선업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업이 싼 인건비를 앞세워 저가 공세에 나서면서, 한국 조선업은 상선 수주량 경쟁에서 ‘세계 1등’ 타이틀을 2년 연속 중국에 빼앗겼다. 문제는 앞으로다. 중국은 수주량에서 이미 한국을 능가한 데다 최근 들어 고부가가치 선박 개발 등 기술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의 첨단 선박 기술을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조선업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조선 기술 개발에 평균 10년이 걸린다.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기술을 빼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란 뜻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계의 선박 수주량은 2012년부터 중국에 밀리기 시작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연간 수주량은 808만677CGT(표준 화물 톤수)로 821만712CGT를 기록한 중국에 밀렸다. 지난해에는 양국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는데, 한국의 지난해 연간 수주량은 1608만6986CGT로 1991만1994CGT를 수주한 중국에 크게 뒤처졌다.

지난해 전 세계 선박 수주량 규모는 4884만965CGT이고, 중국의 전 세계 선박 시장점유율은 40.9%에 달한다. 수주량을 척수로 환산하면 1007척에 이르는데 이는 전 세계 발주량인 2206척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33%로 중국과는 6.9%포인트 차이가 난다. 2012년(한국 32%, 중국 32.1%)의 0.1%포인트 차이에서 더 벌어졌다. 중국의 선박 시장 점유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저가 수주를 앞세워 일본과 유럽 지역 수주를 휩쓴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수주량 기준으로 한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줄곧 세계 1위를 지켜왔지만 2007년 처음으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준 이후 2010년까지 내리 2위에 머물렀다. 2011년에 다시 반짝 1위에 올랐다가 2012년부터 다시 2년 연속 2위로 내려앉았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의 기술 추격이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기술력에서 중국보다 앞서 있고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집중한 덕분에 수주 금액 측면에서는 여전히 ‘세계 1위’ 위상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발주된 LNG선 32척 가운데 26척을, 드릴십 10척 가운데 8척을 수주했다. 한국의 수주 금액은 441억 달러로 중국(327억 달러)보다 114억 달러가 더 많다.

중국으로의 조선 기술 유출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조선 분야는 기술 개발 주기가 10년 단위로 돌아간다. 때문에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역으로 한 번 기술을 빼내면 10년 이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선박업은 평균 20년 정도 기반을 닦아야 하는 산업이다. 그래서 한 번 기술이 빠져나가면 20년 노하우가 한꺼번에 유출됐다고 봐야 한다”며 “산업 기술 유출로 연평균 50조원의 국부가 새나가는데 그 가운데 선박 분야가 35조원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한국의 조선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그중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사건이 가장 많았다”며 “이에 따라 한국 해경이 또한 기술 유출에 관심을 갖고 관련 부서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조선기술 보안의 키를 쥐고 있는 STX다롄의 미래는 암흑 속에 갇혀 있다. 우선 STX조선해양은 자금난 장기화로 중국 다롄 조선소 재가동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TX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STX그룹의 국내 사업장 챙기기도 바빠 STX다롄의 청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STX다롄 채권의 대부분을 중국 금융기관이 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다롄 조선소의 운명은 중국의 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STX다롄 조선소 인근의 STX한국협력공단 풍경. 예전에는 밤12시까지 불빛이 환했지만 지금은 이른 오후부터 어둠이 깔려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암흑 속에 갇힌 STX다롄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STX대련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실질적 주체는 STX조선해양이다. 현재 STX그룹내에 대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져 검토 중이라고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조선핵심 기술 유출을 우려할 정도로 STX대련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STX조선해양과 한국 채권단 그리고 중국 채권단까지 STX다롄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때문에 STX다롄채권사협의회는 “한국 정부가 STX다롄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STX다롄 사태에 대해 정부에서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업체들의 피해 규모는 물론이고 한국의 주요 산업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7년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발효돼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된 기술이 해외로 넘어갈 때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심의와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한다. 현재 전기·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원자력, 정보통신, 우주, 생명공학 등 8개 분야 55개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STX조선의 기술 또한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고 이 때문에 중국 기업이 (STX다롄을) 흡수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미 과거 상하이자동차 ‘먹튀’ 경험으로 인해 기술 유출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관계자들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 조선 기술 여러 번 빠져나가  


한 번의 기술 유출로 ‘세계 1위 조선강국’이라는 한국 조선업의 위상이 흔들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7년 대우조선해양 기술 유출 기도 사건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전직 기획팀장인 엄 아무개씨는 벌크선·컨테이너선·액화천연가스운반선 등 회사 선박 69척의 공정도 및 완성도 등이 담긴 컴퓨터 파일 36만여 개를 중국으로 빼돌리려다 적발됐다. 선박 1척당 설계비가 50억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엄씨가 빼돌린 선박 69척의 연구·개발비만 무려 5175억여 원에 달한다. 조선업계는 엄씨의 자료가 전부 중국에 유출됐다면 매년 15조5000억원, 향후 5년간 78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3000억원의 손실을 입은 ‘해치커버’ 중국 유출 사건(2012년)도 있다. 해치커버는 운항 중 파도와 비바람으로부터 대형 화물선에 실은 곡물과 광석 등을 보호하기 위한 덮개다. 전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유압식 자동화 기술로 부산에 있는 SMS(서해마린시스템)가 10년 이상의 연구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STX다롄, 중국 웨이하이 시에 위치한 삼진조선 등을 포함한 10여 개국에 수출하는 첨단 기술이다. 경찰은 중국으로 해치커버 기술을 빼돌린 SMS 전 설계부장 최 아무개씨 등을 체포했지만 이미 기술이 빠져나간 뒤였다.

조선업계의 불황을 틈타 특수 선박 기술을 중국에 빼돌리려고 한 사건도 있었다. 2012년 세광중공업의 전 영업기획이사 문 아무개씨 등 직원 3명은 세광중공업이 매각절차에 들어가자 취업하는 대가로 중국에 핵심 기술을 넘기려다 경찰에 적발됐다. 문씨가 넘기려고 했던 기술은 세광이 10년간 60억원을 들여 개발한 것이다. 게다가 특수 선박 기술은 유조선이나 화물선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기 때문에 한국 조선업이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맞서 키워가던 기술이었다. 문씨 일당이 적발되지 않았다면 중국 조선업계에 대항할 수 있는 한국 조선업의 ‘와일드카드’를 잃을 뻔했다.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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