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차가운 대접을 받고 있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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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 ‘부패방지법’ 개정 목소리 높아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영국 역사학자 로드 액튼의 말이다. 부패는 사회를 곪게 만든다. 고름을 짜내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양심’이 부패를 막을 수 있다. 절대화한 권력이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것을 막는 소금이 될 수 있다. 용기 있는 공익제보자의 행동을 사회적으로 권장하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200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Whistle-blowers’(공익제보자들)를 선정했다. 미국의 대기업 엔론과 월드컴의 회계 조작 사건을 고발한 공익제보자 3인이 주인공이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두 회사의 부실 경영은 오래 은폐됐을 것이고, 미국 경제는 더욱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한 공익제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2013년 6월27일 강원 평창의 한 보육시설 교사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교사들은 2013년 2월 어린이집의 부조리한 운영을 공익제보했다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 연합뉴스
‘보호증진법’ 제정으로 실질적 보호 강화

미국은 공익제보자 보호의 ‘선진국’으로 꼽힌다. 1960년대부터 관련 문제의식을 사회적 공론의 장에 끌어올린 후 제도화 수순을 밟았다. 1970년대 말 ‘공무원제도개혁법’에서 공익제보자 보호를 명시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공익신고자보호법’ ‘부정주장법’ 등을 제정하며 꾸준히 관련 법령을 보강해왔다.

특히 공익제보 활동의 부패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부적인 법령을 마련한 대목이 눈에 띈다. 공직에 있는 내부 고발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할 때 부처 예산으로 지급하는 것을 강제하는 법안, 금융 산업 공익제보자에게 인센티브 제공을 명시한 법안, 병원 근로자들의 고발에 불이익 조치를 엄금하는 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사회가 관련 법령을 지속적으로 보완·신설하는 이유가 있다. 현재의 한국처럼 공익제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2년 말 제정된 ‘공익제보자보호증진법’은 법원의 보수적 판결에 의해 위축되기 쉬웠던 공익제보자 보호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법은 이미 공개된 정보의 누설, 제보 동기, 사건 발생 후 공개할 때까지의 경과 시간 등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무엇보다 공익제보자가 제보 사실의 위법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합리적으로 믿은’ 경우 공익신고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공익제보자가 제보 내용 이외의 정황, 사실 입증 책임 등으로 느끼게 될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낸 것이다.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한 토론회에서 “이러한 규정이 실제 사례에서 충분한 규범적 효력을 갖게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공익신고 보호의 기본 정신을 이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공익제보자 보호 제도가 그동안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이 사실이나,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2011년 공공과 민간을 아울러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공익신고자보호법은 180여 개 법률만 대상으로 한다.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다. 차명 계좌, 분식 회계, 배임·횡령 등에 대한 공익제보는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일련의 판결들에서 공익 침해 행위 여부가 명확히 판명돼야만 보호조치가 유효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논란거리다. 합리적인 의심이 있었다고 판단될 경우 보호조치를 인정한 미국처럼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직에 있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부패방지법은 ‘정의형’으로 부패 행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는다. 부패 행위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고,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행정 당국과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는 식이다. 보호 대상을 특정해 나열한 ‘열거형’인 공익신고자보호법과는 다르다. 하지만 부패방지법은 상급 감독 기관이 아닌 언론 등에 관련 내용을 제보하면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시민의 ‘양심’이 공익제보자 지킨다

정민영 변호사는 “아직까지 우리의 공익신고자보호법이나 부패방지법은 신고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것보다는 신고를 처리하는 행정적 절차 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의 정부 개정안, 국회 개정안, 참여연대가 제안한 개정안 등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법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사회 인식의 변화다. 시사저널이 만난 공익제보자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서 좌절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엮이면 안 될 사람’ ‘괜히 튀어 보이려는 사람’ 등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비치는 현실이 그들을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한 공익제보자는 “나는 의인(義人)도, 불쌍한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제보자를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인 양 취급하는 분위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지금 언론에서도 공익제보자가 겪는 고통과 곤란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익제보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공익제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호루라기재단’의 상임이사인 이지문씨는 “공익제보가 더 이상 ‘희생’이 수반되는 것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잠재적 공익제보자의 존재가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예방하는 수준까지 관련 제도와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루라기’가 고양이 목의 ‘방울’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공익제보를 통해 발각된 비리의 당사자를 엄하게 처벌하고, 그들로부터 거둔 과징금을 제보자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해야 한다.”

미국의 보건학자 스페이드(Ariane Constance Spade)는 공익제보자의 심리·행동 변화를 4단계로 구분했다. ‘공익제보의 단계’ ‘희생의 단계’ ‘방황의 단계’ ‘승리의 단계’다. 공익제보자는 마지막 ‘승리의 단계’에서 승리감을 얻고 사건을 마무리해야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통제의 부재’를 경험하는 부정적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엇이 공익제보자에게 승리감을 줄 수 있을까. 신광식 박사(보건학)는 2006년 9명의 공익제보자를 심층 인터뷰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공익제보자들을 좌절시킨 것은 제도적 문제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차가운 눈길이었다. 참여자들이 상식과 양심에 기초해 당연하게 선택한 행동은 다른 원리, 즉 현실의 권위와 위계에 저항하고 의리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적대적으로 취급당했고 집단적 가혹 행위마저 정당시됐다.” 공익제보자의 ‘양심’을 지켜보는 시민의 ‘양심’이야말로 그들에게 승리감을 안겨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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