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외박하는데 경호가 문제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4.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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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간송문화전’ 논란…전문가들 “도난 위험” 지적

지난 3월2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인파로 붐비고 있다. 이렇다 할 기념비적 건축물이 없던 서울 동부 지역에 들어선 축구장과 야구장을 더한 것보다 더 큰 DDP에 많은 인파가 찾아들고 있는 것. DDP 측은 3월21~26일 이곳을 찾은 인원이 54만251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토·일요일에는 하루 15만~18만명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관심과는 별개로 이 건물에서 간송문화전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전시가 열리는 데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한 컬렉션으로서 <훈민정음해례본>, 겸재·단원·추사의 서화 등 국보급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이 대거 외부 나들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관 이후 하루 15만~18만명이라는 기록적인 인파가 모여든 DDP. ⓒ 시사저널 최준필 ⓒ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시사저널 김진령
3월21부터 9월28까지 6개월간 열리는 간송문화전은 1부 간송 전형필, 2부 보화각으로 구성된다. 1부에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과 상감청자운학문매병(국보 68호) 등 국보 8점, 2부에 금동삼존불감(국보 73호)을 비롯한 국보 4점 등 한국 최고의 컬렉션이라는 평가를 받는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12점과 보물 10점이 출품된다.

문제는 시장통처럼 북적이는 DDP에서 국보급 문화재 전시를 하는 게 문화유산에 대한 예우인지, 시민 세금으로 지어진 공간에서 유료 전시나 대관 전시를 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를 놓고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통 같은 곳에서 국보 전시 문제”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참여연대 운영위 부위원장)는 “DDP 자체가 동대문이라는 역사성을 뭉개버리고 지은 건물로 간송전이 열리기에 부적당한 곳”이라고 지적했다. “낮에 보면 살찐 거머리처럼 생긴 DDP를 짓느라고 5000억원이나 되는 막대한 혈세가 들어갔지만 서울시 신청사처럼 형태의 기괴함과 기능의 무용함, 역사의 파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홍 교수는 “DDP의 출입문이 40여 곳이고 외부 3층에서 1층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DDP의 구조를 고려할 때 국보급 문화재를 전시하는 것은 보안상 너무 위험한 일이다”며 이번 전시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DDP의 박삼철 전시본부장은 “간송미술전이 열리는 배움터 2층의 경우 DDP 자체의 경비 요원과 보안전문 업체의 경비, 민간 특수 경호요원 20명 등 3중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특수 보안요원에게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8억원에 달할 정도로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굴같이 길게 이어진 DDP의 회랑식 내부 구조에 대해 박 본부장은 “간송전이 열리는 공간과 둘레길은 완전히 차단된 공간으로 처음부터 박물관으로 설계됐다”고 해명했다. 안전에 문제가 있었다면 간송 측에서도 전시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이번 전시의 주최자는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DDP 운영 주체)이다. 그간 간송 정기전을 주관해온 곳은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였고, 이번 외부 전시는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과 전영우 간송미술관장 등 간송의 2세들이 주도했다.

간송 측에서도 외부 전시의 위험에 대비해 출품작에 보험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 간송 소장품인 <훈민정음해례본>의 경우 한 보험회사의 보험 평가액이 1조원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질 만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이런 국보가 하루 최대 18만명의 ‘순례객’이 오가는 북새통 한가운데 놓인다는 사실이 논란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삼성 TV 홍보에 국보가 찬조 출연한 모양새”

이번 전시의 실제 운영을 맡고 있는 간송C&D의 최정윤 이사는 “24시간 유·무인 경비를 하고 있고 전시대마다 항온·항습기를 달고 있다. 동시 최대 관람 인원도 200명으로 제한하는 등 작품 보존과 전시장 분위기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송전을 둘러싼 또 하나의 논란은 유료 전시다. 시민 세금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임대료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간송문화전은 1인당 입장료 8000원을 받는다. 이 중 75%는 간송미술문화재단, 25%는 서울디자인재단(DDP) 몫이다. 이에 대해 박삼철 DDP 전시운영본부장은 “간송에 주는 입장료는 연구·조사·기획하는 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수익 배분으로만 볼 게 아니라 다음 전시를 위한 연구·조사 분야에 대한 투자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간송과 서울디자인재단은 향후 3년 동안 DDP에서 12차례의 기획전을 연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와 관련해 최정윤 이사는 “3년 동안 간송 컬렉션을 바탕으로 다양한 협업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상업성 논란은 작품 전시 방법을 놓고도 이어지고 있다. 전시장 내부에는 삼성전자가 커브드 UHD TV를 통해 청자상감운학매병,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훈민정음해례본>의 정밀 촬영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상이 나올 때마다 TV 상단 오른쪽에 ‘삼성UHD’라는 로고가 붙박이로 커다랗게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좋은 뜻으로 협찬을 한 것이겠지만 ‘삼성의 TV 홍보에 국보가 찬조 출연한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삼철 전시본부장은 “초반의 실수로 봐 달라. 운영을 해나가면서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료 전시와 상업성 논란에 대해 조은정 미술평론가는 “간송전이 특정 기간에만 성북동 보화각에서 열릴 때 사람이 몰려서 오히려 관람이 어려웠다. 하지만 DDP에서 8000원만 내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료 전시가 접근성을 높였다는 아이러니가 생겼다”고 말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DDP라는 하드웨어 자체는 훌륭하지만 이를 채울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너무 즉흥적이다. 개관 기념전인 엔조 마리전 전시대는 독일에서 만든 것을 공수해왔고, 간송전의 전시대는 그것에 비하면 떨어진다. 지을 때부터 간송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지은 게 아니라 다 지어놓고 거기에 간송전을 끼워넣은 것”이라며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운영 경비 320억원을 자체적으로 벌어서 충당하겠다는데 서울시가 시민 돈으로 지은 건물로 임대사업을 하는 모양새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돈이 된다면 평화시장 땡처리 매장도 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간송전이 열리는 바로 아래층에서는 상업적인 성격의 스포츠용품 전시가 열리고 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대외 전시를 놓고 간송미술관에서도 고심을 많이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간송미술관이 보화각을 다시 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여러 여건이 성숙돼야 한다”고 밝혔다. 성북동 보화각에서 매해 봄·여름 열리던 간송 정기전은 이번 DDP 전시로 봄 전시가 생략됐다. 최 실장은 “가을에는 보화각에서 정기전을 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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