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재벌 용역회사 노릇 했나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5.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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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S5 출시 맞춰 의료기기 관련 고시 개정…삼성 특혜 의혹 불거져

4월11일 출시한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5’를 두고 여론이 시끄럽다. 갤럭시 S5는 애초 의료기기로 분류돼 시중에 출시되지 못할 위기를 맞았다. 삼성은 정부에 관련 법 개정을 요구했고, 관계 당국은 ‘안 된다’는 기존의 태도를 180도 바꿨다. 삼성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이는 이유다. 게다가 오·남용 대책 없이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를 푸는 행태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의료계에 팽배하다.

논란의 핵심은 갤럭시 S5의 심장 박동수 측정 기능이다. 삼성은 스마트폰 뒷면에 심박 수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달았고 그 수치를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배포했다. 사용자가 심박 센서에 4~5초 동안 손가락을 대면 심박 수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의료기기법에 따르면, 심박 측정 기능을 탑재한 기계는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이 기능이 있는 갤럭시 S5도 예외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제조·유통·판매를 할 수 있다. 삼성은 오래전부터 이런 현실을 알고 갤럭시 S5를 의료기기 범주에서 빼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래야만 갤럭시 S5를 시중에 판매할 수 있고 수출에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 소비자가 삼성 갤럭시 S5로 자신의 심박 수를 측정하고 있다. 원 안의 사진은 스마트폰 뒤편에 있는 심박 측정 센서. ⓒ 시사저널 임준선
삼성, 식약처에 두 차례 법 개정 요구

지난해 12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삼성 법무팀(임원과 변호사 등 2명)은 식약처의 김영권 의료기기안전국장 등 실무진 3명과 마주 앉았다. 전자제품 제조업체가 식약처 간부를 만난 이유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갤럭시 S5는 의료기기가 아니라는 점을 식약처에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라 법무팀이 식약처 간부를 만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회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삼성은 식약처에 관련법(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전달했다. 한마디로 갤럭시 S5가 의료기기법에 걸려 출시하기 어려우니 관련법을 바꿔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 삼성 법무팀이 움직인 것이다. 삼성은 한 달 뒤인 1월21일 오전에도 전무급으로 구성된 법무팀을 오송에 있는 식약처로 보냈다. 변호사 2명을 대동한 법무팀 임원은 식약처 의료기기안전국장실에서 김 국장과 실무진 2명을 만나 신속한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몇 주가 지난 2월10일 삼성은 식약처에 민원을 제출했다. 갤럭시 S5가 의료기기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미 삼성과 식약처는 두 차례 만나 갤럭시 S5가 현행법상 의료기기에 속한다는 것을 인지했고, 삼성은 의료기기 범주에서 갤럭시 S5를 빼려고 법 개정까지 요구한 상황에서 뒤늦게 이와 같은 민원을 제출한 것은 절차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갤럭시 S5 출시를 앞두고 식약처의 공식 답변이 필요해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삼성의 요구에 식약처가 관련법을 바꾸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부담스러워 양측이 미리 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민원 제출은 요식행위”라며 “삼성은 갤럭시 S5 출시를 1년 가까이 준비하면서 꾸준히 식약처와 협의했을 것이고, 민원 제출은 여론을 의식해 정식 절차를 밟는 시늉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된다’던 식약처, 하루아침에 입장 돌변

당초 식약처는 심박 측정 기능이 탑재된 갤럭시 S5를 의료기기가 아니라고 볼 만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을 삼성에 전달했다. 심박 수가 표시되는 제품은 의료기기라는 법 규정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식약처는 내부적으로 삼성의 요구를 받아들여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식약처는 법 개정 절차를 진행 중이었고, 삼성은 고시 개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3월17일 고시 개정을 예고했다. 삼성의 법 개정 요청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관련법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갤럭시 S5의 사양을 확정하고 생산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라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고, 혁신 제품이 규제 때문에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관계 당국과 상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식약처가 법 개정을 속전속결로 처리한 행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학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공청회는 아니더라도 관련 전문가 집단의 토론 등을 거치는 등의 절차를 생략한 채 식약처가 법 개정을 서두른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은 3월27일 SK텔레콤 대리점을 통해 갤럭시 S5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법 개정이 공포되지 않은 때였다. 의료기기를 식약처의 승인 없이 유통·판매한 행위는 불법이다. 심박 측정기를 제조·판매하는 ㄴ업체 관계자는 “제품 샘플을 만들어 식약처에 설명하고 승인을 받아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며 “유통·판매도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심박 수 측정 센서는 있지만 작동은 되지 않는 상태로 갤럭시 S5를 출시했기 때문에 의료기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식약처 관계자는 “현행법상 기능 작동 여부와 상관없이 심박 수 측정기는 의료기기에 해당한다”며 조기 출시한 갤럭시 S5가 의료기기임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4월8일 고시 개정을 공표했다. 사흘 후인 4월11일 삼성은 갤럭시 S5를 공식 출시했다. 식약처가 기존 입장을 바꿔 갤럭시 S5를 의료기기 범주에서 제외한 근거는 의료진의 소견이었다. 장병원 식약처 차장은 “법률은 물론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는데 심박 수는 의료행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며 “심박 측정기를 의료용과 운동용으로 구분하고 운동용은 의료기기 범주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고시를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한철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혈압·호흡·산소포화도와 함께 심박 수는 주요 활력증후(바이탈 사인)”라며 “응급·외래·입원 환자는 모두 이 활력증후를 측정받도록 돼 있고, 이는 어떤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지를 의사가 판단하는 기본 정보”라고 강조했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도 “심박 수는 의료행위에 반드시 필요한 바이탈 사인”이라며 “심박 수가 의료행위에 필요한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은 식약처가 조언을 받았다는 의료진이 속한 병원을 문의했지만 식약처는 공개를 거부했다.

식약처는 갤럭시 S5를 운동용으로 보고 의료기기법 범주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운동용과 의료용의 기준은 무엇일까. 식약처 관계자는 “질병을 진단할 때는 병원에 가서 받아야지 운동용을 의료용으로 쓴다면 사용자 책임”이라며 “칼을 요리용으로 허용해주지만 잘못 사용했다고 해서 유통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고시 개정에 따른 형평성 비판을 받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 ⓒ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계 “심박 수는 의료행위에 중요한 정보”

운동용과 의료용 심박 측정기는 기능상 차이가 없어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식약처가 이런 기준도 없이 운동용과 의료용 심박 수 측정기를 구분해서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삼성의 스마트폰 출시에 맞춰 법을 바꾸느라 미처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심박 측정기를 생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병원에서 사용하면 의료용, 개인이 병원 밖에서 사용하면 운동용”이라고 말했다. 갤럭시 S5를 의사가 사용하면 의료용이 된다는 말이다. 삼성 관계자도 “병원에서 (갤럭시 S5를) 사용하면 의료용이 된다”고 인정했다.

이런 식으로 사용자가 임의로 갤럭시 S5를 의료 및 진단용으로 이용했을 때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예컨대 특정 환자가 갤럭시 S5로 측정한 심박 수치를 믿고 병원에 가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 자신이 갤럭시 S5로 측정한 심박 수와 의사가 측정한 수치가 다를 경우 의사의 진단을 불신해 진료를 거부할 소지도 있다. 허대석 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물론 건강한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심박 수를 측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 특정 환자가 그 기능에 의존해 오·남용할 경우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푸는 게 마땅하다. 규제 완화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그동안 요청해도 되지 않던 규제 완화가 대기업의 한마디에 처리됐다면 특혜 시비가 생기고 형평성 논란도 피할 수 없다. 삼성의 요청 후 3개월 만에 관련법을 개정한 식약처가 재벌의 용역회사라는 비아냥을 받는 이유다. 심박 측정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심박 측정기를 출시하느라 식약처 관계자를 수십 번 만나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운동용이든 의료용이든 용도에 관계없이 의료기기라고 해서 돈을 들여가며 의료기기 승인을 받아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대변인실은 “삼성전자 관계자가 질의해 전문가·법률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외국 규제 동향을 파악하고 검토해 제도를 개선했다”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자문을 요구하면 정부로선 당연히 응해야 하는 게 맞다. 삼성 특혜라고 얘기하면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4월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약처 업무보고에서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갤럭시 S5는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로 유권해석을 받았지만, 식약처는 삼성전자에 의료기기 품목 허가 절차를 밟으라고 권고하지 않고 갤럭시 S5를 의료기기에서 빼는 쪽으로 고시를 개정했다”며 “국민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식약처가 대기업 편의를 위해 서둘러 고시를 개정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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