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권력 접수한 잠룡들 대권 경쟁 불붙이다
  • 감명국·이승욱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6.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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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남경필·원희룡·홍준표, 야당 박원순·안희정 급부상

‘통령(統領)’의 사전적 의미는 ‘일체를 통할하여 거느리는 사람’이다. 우리에겐 대통령이란 용어가 훨씬 더 익숙하다. 대통령의 어원은 통령에 ‘대(大)’자를 하나 더 붙인 것이다. 통령의 최고 우두머리 개념이다. 그래서 대통령에 이은 공식 2인자를 ‘부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으로 부르고,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을 가진 자를 ‘소통령’이라 빗대어 부르기도 한다.

6·4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7명이 선출됐다.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면서 광역단체장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지방정부의 수장인 시·도지사를 가리켜 일각에서는 “과거 임명직 관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민선 체제에서는 ‘통령’으로 불러야 제격이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서울시장은 공공연히 ‘소통령’으로 회자된다. 광역단체장도 ‘지방 소통령’으로 빗대어 부르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지방정부의 행정권과 인사권을 총괄하는 시·도지사는 원칙적으로는 차관급이다. 서울시장만 장관급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 배지를 떼고, 장관 명패를 던지고 시·도지사에 도전하는 정치인들이 줄을 잇는다. ‘소통령’을 위해서, 그리고 그 다음 고지인 대통령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다.  

(왼쪽부터)박원순 서울시장 ⓒ 서울시 제공,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자 ⓒ 연합뉴스, 안희정 충남지사 ⓒ 연합뉴스, 홍준표 경남지사 ⓒ 연합뉴스,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 ⓒ 시사저널 포토
“이번 선거는 세대교체·세력교체 신호탄”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박근혜정부를 심판하지도,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을 버리지도 않은, 한마디로 유보적 판단을 내렸다. 황인상 P&C 정책개발원 대표는 “세월호 참사가 큰 변수가 되지는 못했다. 사건이 갖는 비극성 탓에 여야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 정서적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여야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유권자의 분명한 요구는 있었다. 변화를 원했고,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다. 지방정부의 수장으로 믿을 만한 인물에게 힘을 실어줬고, 잠재력 있는 새 인물을 선택했다.

새정치연합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선 고지를 밟으며 단박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 그 자신 선거 유세 과정에서 “임기 중인 2017년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음에도 정치권에서는 이를 수사 정도로 치부하는 듯하다. 정치는 생물이란 것이다. 역시 재선 고지를 밟은 새정치연합의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새누리당의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대권 욕심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안 지사는 ‘충청 대망론’을 역설해왔다. 안 후보는 지난 5월17일 후보 등록을 한 후 “지방정부 운영을 통해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면, 그 다음 날이라도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겠다”며 ‘대망론’에 불을 지폈다. “도정은 뒷전이고, 대권에만 신경 쓴다”는 비난이 나올 법도 하지만, 안 지사의 대망론은 소외감에 빠진 충청 도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안 지사 측 역시 승리 요인을 긍정적 선거 캠페인과 조용한 선거, 그리고 충청 대망론으로 꼽았다. 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지사 역시 유세 과정에서 “경남도지사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면 경남 사람들이 얼마나 좋겠느냐”며 대권 도전 의지를 밝혔다. 

개혁·소장파 출신 여당 의원에서 나란히 도지사로 입성한 남경필·원희룡 당선자 역시 이번 선거를 통해 명실공히 ‘잠룡’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새누리당의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자와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자, 새정치연합의 윤장현 광주시장 당선자와 이낙연 전남도지사 당선자 등도 이번 선거를 통해 한껏 드높인 인지도와 지방 권력을 기반으로 향후 좀 더 큰 ‘꿈’을 표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6·4 지방선거는 차기 잠룡들을 대거 배출하면서, 향후 대권 구도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경필·원희룡, 소장파에서 대권 주자로

전계완 매일P&I 대표는 “이번 선거는 세대교체, 세력교체의 신호탄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보수와 진보의 이념 프레임이 깨졌다. 이제는 구세력과 신세력 간에 치열한 싸움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남경필·원희룡·박원순·안희정 당선자를 대표적인 신세력으로 꼽았다. 황인상 대표 역시 “이번 선거에서 잠룡들은 기존 정치인과 큰 차이를 보인다. 연령별로 갭이 있고, 모두 개혁 성향의 인물들이다. 1.5세대들의 새로운 정치가 기대된다. 기존 정치권이 새로운 세력들의 움직임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정치 지형의 격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1995년 첫발을 디딘 후 민선 지방자치는 올해로 20년째를 맞고 있다.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면서 지방정부 수장의 정치적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 지방 권력을 통해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는 도식이 일상화되고 있다. 과거 ‘3김 정치’로 대표되는 구체제가 정당 정치를 지배하고 있을 당시만 해도, 당 총재 아래서 부총재·사무총장·원내총무 등이 2인자를 다투며 차기 대권 주자 경쟁을 벌였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예비 ‘잠룡’들은 당내에서 경력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을 대권으로 가는 엘리트 코스로 인식했다. 당내 주요 보직을 맡기 위해 의원 배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은 필수고, 장관 등 공직 이력은 또 다른 훈장이었다. 지방행은 권력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치부돼 설령 지역구가 지방이라도 집은 여의도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인 보스 체제가 무너지고 민선 지방자치의 위상이 커지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지방 권력을 기반으로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최대 덕목이 정치력과 행정력임을 감안할 때, 장관 등 행정 관료 출신들은 정치력이 부족하고, 반면 의원 등 정치인 출신들은 행정능력에서 검증이 안 된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게 바로 광역단체장인 셈이다. 2인자 자리를 두고 당내에서 혈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입기보다는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정치 지도자로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키우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다. 여기에는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도 한몫한다. 지방정부에서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고, 이 과정에서 능력이 검증된 대권 주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6·4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순식간에 부쩍 큰 인물이 된 여권의 차기 잠룡은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다. 6·4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기근에 시달리던 새누리당 지도부는 ‘중진 차출론’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당초 외부에는 차출론 대상이었던 두 사람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전략적인 제스처에 불과했다. 여론을 살피며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제 두 당선자의 공식 출마 선언이 있기 전 기자와 만난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당내 선거 기획에 깊숙이 관여했던 이 관계자는 “중진 차출 대상자들이 지금은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은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며 “본인들이 아무리 저울질해도 지금의 조건에서는 대권 가도를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대권 가도에 도움이 될 것이며, 결국 그런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비주류로 사느니 지방행 결행

여권의 예비 잠룡으로 꾸준히 거론되던 두 사람이 지방정부행(行)을 결정한 것은 당내 역학 구도와도 관련이 있다. 원희룡·남경필 두 당선자는 개혁·소장파라는 공통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당내 입지로 보자면 비주류로 분류된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키웠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비아냥거림도 들어야 했다. 때문에 대권 주자로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선거를 당내 응집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비록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여권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던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7선 배지를 내려놓고 출마를 결심한 것도 최종 목표인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 측근 의원은 “차기 대권을 위해서는 지방선거에 나가서 주위에 사람을 모아야 한다”고 정 후보에게 출마를 적극적으로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 비주류로 불편하게 부딪치느니, 지방정부의 수장을 통해 행정 능력과 대중성을 인정받으며 차기를 도모하겠다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전략은 지금까지는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당내에서 ‘독불장군’으로 통하는 홍 지사는 서울 지역구에 머무르다 지방정부 장악으로 기반을 잡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2년 총선에서 5선에 도전했다 낙선한  충격은 컸으나, 오히려 12월 경남도지사 재보선 도전 기회를 잡으면서 홍 지사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를 지원하는 등 경남을 넘어 부산까지 넘보며 PK의 새 맹주를 꿈꾸고 있다. 

안철수와 문재인이라는 거물급 대권 주자가 포진해 있는 야권도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나란히 재선에 성공하면서 단번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박 시장과 안 지사의 위치가 새정치연합 계파 구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안철수·문재인에서 박원순·안희정으로

새정치연합은 크게 ‘친노’와 ‘비노’, 그리고 ‘친안(親안철수)’으로 구분된다. 비노와 친안을 묶어서 그냥 비노로 통칭하기도 한다. 지금껏 친노에선 문재인 의원, 비노에선 안철수 대표가 각각 수장 겸 차기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해왔다. 여기에 친노 진영의 안 지사와 비노 진영의 박 시장이 가세하면서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안희정 지사는 6·4 지방선거를 통해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대권 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안 지사는 ‘친노’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문재인 의원과 달리 친노 주류와는 다소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충남 지역에서 광역단체장으로 재선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안 지사가 향후 문 의원의 대항마로 범친노 진영의 지분을 요구하게 될 경우, 또 다른 잠룡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와 더불어 친노 진영 내부에서 이합집산이 잇따를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장 안철수·문재인 의원과 더불어 야권 대권 주자 ‘빅3’를 형성할 전망이다. 오히려 안철수 대표의 경우, 새정치연합 창당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 때문에 당내 견제 세력이 많은 반면, 박 시장은 안철수 진영과 기존 민주당 진영을 포괄하고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는 향후 당내 주류와 관계 설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동지관계인 안 대표의 지지율이 최근 주춤해지는 상황에서 박 시장이 ‘비노’ 진영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한껏 높아진 셈이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안 대표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공천 갈등 등으로 상처를 입었다. 문 의원은 현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야당 잠룡이라고 봐야 한다. 역시 변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친노 내에서 안희정과 문재인의 역할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야권 내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안철수·문재인 쌍두마차 체제에서 박원순·안희정 쌍두마차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방정부 수장들의 대권 도전사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의 ‘산실’로 여겨지는 역대 민선 광역단체장들의 대권 도전사는 민선 1기 서울시장인 조순 전 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그는, 1995년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해 초대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 후 민주당을 탈당한 그는 1997년 속칭 ‘꼬마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지만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하고 출마를 포기했다. 조 전 시장을 포함해 역대 서울시장은 어김없이 대권 주자 반열에 올랐다. 고건 전 시장도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주자로 부각됐고, 한때는 지지율 선두를 달리기도 했지만, 2007년 1월 결국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꿈을 포기했다.

광역단체장 출신으로 유일하게 대권 고지를 점령한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한나라당 재선 의원을 지낸 이 전 대통령은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단번에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2007년 당시 박근혜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한 그는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경기도지사 출신 역시 대부분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민선 1기 이인제 전 지사는 1997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김대중·이회창 후보에 이어 3위로 낙선했다. 뒤를 이어 손학규·김문수 지사도 대선에 도전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 전 지사는 2007년 한나라당과 결별한 후, 범여권이 결집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역시 패해 대권 도전 코앞에서 좌절당하는 아픔을 연거푸 맛봐야 했다. 김문수 지사는 재선 도지사 시절이던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나섰지만 박 대통령에게 졌다. 손 전 지사와 김 지사는 2017년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도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비수도권에서는 주로 경남도지사 출신들이 대권 주자로 주목을 받았다. 1995년부터 경남도지사로 내리 3선을 한 김혁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노무현 정부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후, 2007년 대선 후보로 거론됐지만 다른 후보들에게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태호·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역시 여야에서 대권 주자로 부각되며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대선 후보로 나서지는 못했다. 호남에서는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대권 주자로 물망에 올랐다. 3선 도지사로 당선된 그는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했지만, 같은 해 8월 “도정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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