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0,000명을 사수하라!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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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급감 고민 깊은 일본…매년 20만명 이민 수용 검토

충북 충주시의 한 시골 마을에서 20년 만에 고고성(呱呱聲)이 울렸다. 30대 농부는 건강한 사내 아기를 안고 기뻐했다. 서른다섯 살의 아내는 저 멀리 태국에서 왔다. 33가구 62명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고연령층 농촌 마을 사람들은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치 자신이 손자를 본 것처럼 즐거워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새 생명이 내뿜는 생기를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아기 탄생은 마을의 경사였지만 20년 만에 들리는 낯선 울음소리는 연민 어린 경사였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이 늘어나는 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이 문제가 국가의 대사(大事)가 됐다. 올해 5월 일본의 싱크탱크인 ‘창성회의’는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2040년이 되면 20~39세 여성의 수가 50% 이상 감소할 것이며, 앞으로 30여 년 동안 1000개 정도의 지방 마을에서 출산 적령기 여자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여기에 더해 전국 약 1800개 시 중 523곳의 인구가 1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 수용을 검토 중이다. 사진은 먼저 크게 우는 아기가 승리하는 나키즈모 페스티벌. ⓒ EPA 연합
공공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3월에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일본 정부가 예상하는 미래상은 참담하다. 국토교통성은 현재 1억2700만명인 일본 인구가 2050년에는 97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전국 약 60% 지역에서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고, 3분의 1 정도의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변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한 적이 없는 전체 인구 40%의 고령화는 암울한 예측이다.

2050년엔 인구 9700만명으로 줄어

일본 정부는 저출산과 고령화 중 그동안 후자 해결에 방점을 찍어왔다. 그런데 고령화 대책은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을 바꾸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빠르게 줄어드는 노동 인구가 증가하는 노인 인구를 지탱하지 못해서다. 그나마 있는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몰리면서 도쿄가 노동 가능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며 지방 도시는 쇠퇴하거나 사라진다는 게 창성회의의 전망이다. 보고서가 사례로 제시하는 인구 110만명의 아키타 현에서는 25개 시 중 거의 모든 자치단체가 생존이 어려워진다.

소멸 가능한 지역에는 야마구치 현의 나가토 시가 포함됐다. 이곳은 아베 신조 총리의 고향이다. 총리의 고향이 포함돼서인지는 몰라도 보고서를 본 아베 정부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고 재빠르게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4월21일 정부가 만든 ‘저출산 위기 돌파 TF(태스크포스)’ 팀에서는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다. 1명의 여성이 낳는 평균 자녀 수인 ‘합계 출산율’에 관한 목표치를 설정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 “무엇이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와 “숫자를 정하면 그것 자체가 정부의 압력이 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비록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일본의 성장 전략이 인구 유지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6월10일 일본 정부는 경제·재정 운용지침에 ‘50년 후 인구 1억명 사수’를 공식적으로 명기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고령자에 집중했던 복지 예산을 육아 예산으로 돌리고 출산자들에 대한 보조금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공장이나 노인 요양시설에서 활용할 로봇을 개발해야 한다는 SF적 대책에 비하면 출산 장려책은 10년 전, 20년 전에도 존재했던 구태의연한 방안이다.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아베 정부의 대책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등장했는데 바로 ‘외국인 노동자’ 부분이다. 일단은 단순 노동에 해당하지만 ‘매년 20만 이민자 수용’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앞으로는 간호사 등을 비롯해 기술자 중심의 이민을 장려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민의 문을 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일본의 인구 중 외국계 주민 비율은 2%에도 미치지 못해 다른 선진국들을 크게 밑돌고 있다. 이 낮은 수치도 사실 재일교포와 여러 세대에 걸쳐 일본에서 살고 있는 화교를 포함한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일본 입국자 가운데는 중국인 유학생이 많다. 그들의 노동력이 없다면 일본 도시의 수많은 편의점 카운터는 비게 된다. 1990년대에는 수천 명의 브라질인이 시즈오카 현을 중심으로 자동차 관련 공장에 다녔다. 그런데 일본 경기가 침체되면서 점점 외국인을 위한 입구가 좁아졌다. 한때는 2만명에 달하던 시즈오카의 브라질인은 9000명으로 감소했다. 하마마쓰 대학의 쓰무라 기미히로 교수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시기에 일본은 외국인에게 문을 활짝 열었지만 경기가 둔화되면 재빨리 문을 닫아버린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에게 ‘동화’보다는 ‘차이’를 강조하는 게 일본의 분위기다. 그런 배경에서 외국인을 받아들이자는 정책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사카나카 히데노리 이민정책연구소(JIPI) 소장은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 문제가 이렇게 활발하게 논의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정부와 국민에게 대규모 이민을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정책이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베 정부라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미즈호 증권의 우에노 야스나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대책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결정이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앞으로 있을 선거에 악영향을 걱정한 나머지 외국인 노동자 수용 문제를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선거에서 표를 걱정한다면 일본에서 이민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일본 여론은 여전히 이민에 신중하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이 4월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뚜렷한 경향을 알 수 있다. 인구 감소에 대해서는 79%가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걱정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과반이 넘는 54%가 부정적이라고 답하는 게 일본 민심이다.

외국인 노동자 수용에는 여전히 부정적

외국인 수용을 늘리려고 하자 반대하는 조직적 움직임까지도 나타났다. ‘이민·다문화 정책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의 모임’은 지난 3월에 20만 서명 모으기 운동에 돌입했다. 서명철을 들고 국회를 방문해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다. 인종 간의 차이를 강조하며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노골적으로 등장한 게 아베 정부 때부터라는 점에 미뤄보면 이번 정책이 장고 끝에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게이오 대학의 사이토 준 특임교수는 “인구 감소 문제는 이미 심각하며 정부는 즉시 대응책을 내놓아야 했다. 단지 고령자가 사는 오래된 나라가 목표인지, 외국인과 공존하는 경제 대국이 목표인지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아베가 ‘이민’이라는 화두를 꺼내든 것은 전반적인 일본 사회 구조 재설계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이웃나라의 대책이 우리에게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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