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바 10억원어치 주세요”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4.12.1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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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강화·가격 하락으로 ‘금 테크’ 늘어

지난 8월 서울 서초동의 한 주택을 개조한 사무실. 화재 복구작업을 하던 인부 조 아무개씨는 붙박이장 밑에서 1㎏짜리 금괴(골드바) 130개를 발견했다. 시가 65억원 상당. 공사를 의뢰한 가족도 금괴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조씨는 금괴를 몽땅 빼돌려 호화 생활을 즐기다 내연녀의 배신으로 붙잡혔다. 원래 주인은 2003년 치매로 사망한 박 아무개씨. 박씨는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모은 돈을 금괴로 바꿔 보관하곤 했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선물로 금괴를 나눠줬을 정도다. 상속·증여세 측면에서도 유리했을 터다.

롤러코스터 같은 금값에 전망 엇갈려

부자들이 금을 선호하는 건 부피가 작은데도 자산가치는 탁월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선 투자 목적으로 금을 사재기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실명제법이 강화되면서 차명 자금을 안전 자산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늘어난 데다 국제 금 시세도 많이 떨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다만 금값 전망을 놓고선 전문가마다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 일러스트 최길수
한동안 침체됐던 금 거래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KRX금거래소의 금 거래량은 11월 18만8316g으로, 전 달(17만8126g)에 이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11월의 일평균 거래량은 전달(8482g) 대비 11.0% 늘어난 9415g으로 집계됐다. 금 거래량은 올 9월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4000~5000g 선에 불과했다.

개인투자자들의 금 매수세가 불붙고 있는 게 특징이다. 금 거래소에서 개인의 매수 비중은 9월 87.0%, 10월 93.7%에 이어 11월 94.0%로, 올 3월 개장 후 가장 높았다. 공도현 한국거래소 금시장운영팀장은 “금 거래소에서 금을 샀다가 가격이 오른 후 실물로 찾겠다는 개인투자자가 많은 것 같다. 내년 초 협의 대량 매매를 가능케 하는 전산 개발까지 완료되면 금 거래가 지금보다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 등의 귀금속 도매상가를 통해 골드바를 구입하거나 시중은행의 골드뱅킹에 투자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관석 신한은행 자산관리솔루션부 팀장은 “금융실명제법 강화로 차명 자산을 환원하는 과정에서 금을 저가 매수하겠다는 수요가 많다”며 “골드바 가격은 1㎏당 5000만원 가까이 하는데, 10억~20억원 단위로 사겠다는 자산가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차명 거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금융실명제법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금융 거래를 하다 적발될 경우 실소유주와 명의 대여자, 금융회사 관계자까지 형사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차명의 금융 자산을 갖고 있는 부유층이 법망을 피해 실명 전환을 서두르면서 금과 같은 실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제 금 시세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2010년 2월 온스당 1052달러(뉴욕상품거래소 기준)까지 떨어졌던 금값은 이듬해 9월 1899달러로 치솟았다. 불과 1년 7개월 만에 80.5%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 이후 수요 부진과 달러 강세에 따라 하락세를 보였다. 올 11월엔 1142달러까지 낮아졌다. 2010년 4월 이후 최저치다. 현재 온스당 1200달러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향후 전망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산업 수요 부진에다 강(强)달러의 영향으로 안전 자산인 금값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는가 하면, 현재가 바닥권이어서 장기 수익률 측면에선 최고의 투자 자산이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금값 하락을 내다보는 쪽은 달러 강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금 보유량을 늘리는 점도 주시해야 한다. 이철희 위안타증권 연구원은 “달러 가치가 흔들릴 때는 안전 자산인 금을 축적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지금은 반대로 강달러 시대다. 최소 3~4년간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금과 같은 귀금속은 투자 대안이 되기 어렵다”며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금 매수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금값이 지나치게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손동현 현대증권 연구원은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나 금 선물 동향을 살펴보면 투기 목적으로 금 시장에 유입됐던 글로벌 자금이 대부분 빠져나갔고 공급량은 대폭 감소했다”며 “단기 투자 목적이 아니라면 금 매수에 나설 타이밍”이라고 했다.

금 거래소·은행에서 매수하면 신뢰할 만

일반 투자자들이 금을 매입할 수 있는 곳은 다양하다. 귀금속 상가와 금 거래소, 시중은행 등이 있다. 서울 종로 도매상가에선 금을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주로 1g 단위의 금괴를 취급한다. 다만 순금의 품질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시중은행에서 금괴를 사면 안심할 수 있다. 수수료가 약 7%로 비싼 편이다. 부가가치세(10%)는 별도다. 골드뱅킹을 이용해도 된다. 실물 금을 주고받지 않고 금 계좌에 순도 99.99%의 금을 적립해놓는 방식이다. KRX금거래소의 금괴도 믿을 수 있다. 증권사 창구나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통해 일반 주식처럼 매매하면 된다. 각 증권사에 지급하는 위탁 수수료는 0.5%가량으로 저렴하다. 한국거래소의 수수료는 내년 3월까지 면제다. 1g 단위로 현물로 인출해 사용해도 된다.

홈쇼핑이나 인터넷에서도 금을 판매한다. 매매 단위로 1돈(3.75g)부터 25g, 50g, 55g, 100g, 110g 등 제각각이다. 문제는 가공비를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정확한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온라인 매장에서 구입한다고 해서 저렴한 것도 아니다.

향후 금값이 뛸 것으로 본다면 금 펀드에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KB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등이 총 1600억원 규모의 금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금 펀드의 지난 2년간 수익률은 -35.45%(에프앤가이드, 12월10일 기준)로 부진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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