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정몽규 연합군, 신동빈과 ‘면세점 대전’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5.04.23 17: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 합자회사 설립 롯데와 한판승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기 위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손을 잡았다. 호텔신라가 범(汎)삼성가인 신세계그룹이 아니라 범현대가인 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은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호텔신라가 내놓은 ‘깜짝 카드’에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힌 경쟁사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가장 당황한 이는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신라면세점과 현대산업개발은 4월12일 초기 자본금 각각 10억원씩을 투자해 면세점업체인 HDC신라면세점을 세워 용산역사에 국내 최대 규모(1만2000㎡)의 면세점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제휴 제안은 정 회장 측이 먼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지난 1월12일 열린 현대아이파크몰 창립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시내 면세점 유치 도전을 선언하며 “해외 면세사업자 누구와도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현대산업개발은 외국 면세업체를 비롯해 다양한 업체들과 접촉해왔는데 최종적으로 호텔신라가 가장 먼저 현대산업개발의 손을 잡은 셈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의 합자회사 설립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 3월 초 현대산업개발 제안으로 두 회사의 실무진 접촉이 이뤄졌고, 3월 말 정몽규 회장과 이부진 사장은 현대아이파크몰 내 정 회장 집무실에서 만나 협상을 매듭지었다. 두 회사는 왜 갑작스럽게 손을 잡게 된 것일까.

현대산업개발 ‘경험’, 호텔신라 ‘입지’ 얻어

두 회사의 제휴는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윈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호텔신라는 단독이 아닌 공동 사업 추진으로 그동안 따라붙었던 ‘독과점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호텔신라와 롯데면세점은 국내 면세점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 4월 관세청이 발표한 신규 면세사업자 선정 평가 기준을 보면 총점 1000점 중 경영 능력(300점)과 관리  역량(250점)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호텔신라는 국내 2위 면세점인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며 많은 경험을 쌓아 이 부문에서 유리한 점수가 예상됐지만 관광 인프라 등 환경 요소(150점) 부문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서울 시내에 면세점용 건물이 없어 그동안 사업지 선정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산업개발은 KTX 호남선, 공항철도 등이 지나는 교통 요지인 서울 용산 민자 역사에 아이파크몰을 운영하고 있지만 면세점 운영 경험이 전혀 없다. 두 회사는 합작법인 설립으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단숨에 강력한 면세점 낙찰 후보로 떠올랐다.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의 합작법인 HDC신라면세점이 추구하는 목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면세점이다. 면세점이 들어서게 될 곳은 용산역을 둘러싸고 있는 아이파크백화점 패션관·리빙관·문화관 3개 동의 3~6층이다. 양사는 네 개 층을 리모델링해 최소 1만2000㎡ 규모의 면세점 공간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최대 면세점인 롯데월드면세점(1만1000㎡)보다도 넓다.

무엇보다 두 회사가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된 것은 최근 입장을 바꿔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참여를 선언한 롯데면세점에 대한 견제라고 볼 수 있다. 호텔신라는 지난 2월 끝난 인천공항 면세점, 제주 시내 면세점 유치전에서 상대적으로 롯데에 밀려 입지가 좁아든 만큼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는 총 12개 구역에서 롯데호텔이 4곳, 호텔신라가 3곳에서 사업자로 선정됐고 제주 시내 면세점 특허도 롯데호텔이 차지했다.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유치전에서 호텔신라가 반격에 나선 만큼 롯데는 여유를 부리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롯데는 계열사인 롯데호텔을 통해 월드타워점·소공본점·무역센터점 등 이미 3개의 서울 시내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총 6개인 서울 시내 면세점의 절반을 롯데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롯데면세점은 신규 사업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결국 입장을 바꿨다.

지난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점 사업권이 만료되면 연장이 불가능하고 새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롯데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롯데는 오는 12월 서울 시내 면세점 가운데 2곳(소공본점, 잠실 월드타워점)의 사업권이 만료될 예정이다. 롯데 측에서는 “6월 서울 시내 면세점 쟁탈전에서 떨어진 대형 유통업체들이 12월에 예정된 2개의 서울 면세점 사업권에도 도전장을 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롯데가 계속 소공동과 잠실 면세점을 운영하리란 보장이 없다”며 시내 면세점 입찰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롯데면세점이 글로벌 사업 확장에 난항을 겪으면서 서울 시내 면세점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롯데는 그동안 공들여왔던 이탈리아 면세점 기업인 WDF(World Duty Free) 인수에 실패했다. 롯데쇼핑은 4월15일 “(이탈리아 면세점 기업 WDF의) 인수 추진 여부를 다각적으로 검토했지만 WDF가 타사와의 매각 협상 진행으로 인해 롯데그룹과의 협상 불가를 통보해왔다. 이에 따라 WDF 인수를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롯데 측은 현재 동대문 롯데피트인, 롯데몰 김포공항점 등 이미 매장을 확보한 지역뿐 아니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신촌 등에 새로운 매장을 확보해서라도 6월 입찰전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현대백화점그룹도 결전 태세

시내 면세점 신규 입찰은 독과점을 막고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진행된 것이었으나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더욱 막강해진 호텔신라와 업계 1위 수성에 나선 롯데면세점의 대결 구도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롯데와 호텔신라가 전면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다른 기업들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신세계의 고민이 깊어졌다. 사실 신세계는 서울 시내 면세점을 노리는 다른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후보다. 부산 신세계면세점과 김해국제공항 면세점을 통해 면세 사업 능력을 이미 검증받은 데다 지난 2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한 개 구역에 대한 면세점 사업권을 따냈다. 신세계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점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기세를 몰아 서울 시내 면세점까지 확보하자’며 투지를 보여왔다.

HDC신라면세점은 서울 용산역에 위치한 현대아이파크몰에 국내 최대 규모의 면세점을 세울 계획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신세계는 서울 시내 면세점 후보로 서울시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과 이어진 강남점을 염두에 두고 고민 중이다. 본점은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심 지역에 위치해 있고, 강남점은 가로수길이나 청담동 등 새롭게 떠오른 상권에 위치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신세계가 본점과 강남점 중 어느 곳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어느 기업과 경쟁할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비교우위를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낸 상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4월9일 시내 면세점 후보지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무역센터점의 2개 층을 리모델링해 강남권 최대 규모의 고품격 면세점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많은 서울 동대문(케레스타)과 현대백화점 신촌점·목동점도 후보군에 올려놓고 저울질해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위치한 코엑스 단지가 향후 국내를 대표하는 외국인 관광 명소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무역센터점을 최종 사업지로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오는 7월 서울 시내에 면세점 3곳을 추가 허용하기로 하면서 입찰에 뛰어든 유통 대기업 사이에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 허용될 3곳의 신규 면세점 중 2곳은 대기업, 1곳은 중소기업에 돌아간다. 대기업 참여가 가능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 선정은 15년 만의 일이다.

게다가 면세점은 유통 대기업의 유일한 불황 탈출로이기도 하다. 실제 면세점산업은 유통산업 불황 속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2010년 4조5000억원, 2011년 5조3000억원, 2012년 6조3000억원, 지난해는 8조3077억원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600만명 시대를 열면서 올해는 9조원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 때문에 주요 유통기업들의 면세점 특허 선점을 위한 날 선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