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꾼’이라 쓰고, ‘권력자’라 읽는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7.2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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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 3인방 위세 막강…박 대통령 신임이 밑바탕

‘왕수석’이 아니라 ‘왕비서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에 대한 정치 전문가들의 판단은 2년 사이에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2013년 8월, 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실시된 시사저널의 ‘여권 권력 구도’ 설문조사에서는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권력 실세 1위에 올랐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제치고 ‘왕수석’ 시대를 연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집권 중반부로 접어든 지금, 100명의 정치부 기자 및 정치평론가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현 정부 실세 이름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세 비서관이었다. 청와대의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을 일컫는다.

이들 3인의 비서관을 두고 정치권 내에서는 공공연히 ‘문고리 권력’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을 계기로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들 3인방이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았던 정윤회씨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국정 운영에 전 방위로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정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비선 실세’ 논란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세 비서관을 가리켜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모두 유임시켰다. 안 비서관만 자리가 제2부속비서관에서 국정홍보비서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본지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정치부 기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세 비서관에 대한 이들의 평가는 “무슨 심부름꾼일 뿐이냐, 권력자다” 쪽에 가까웠다.

ⓒ 연합뉴스

“청와대는 ‘국회 의원회관 545호’ 복사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3년 초, 정가에서는 “청와대는 국회 의원회관 545호의 복사판”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박근혜 의원실’에서 보좌진으로 일해온 최측근들이 청와대 요직에 고스란히 앉으면서다. 세 사람은 2012년 대선 레이스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이춘상 보좌관과 함께 10년 이상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섬긴 ‘비서진 4인방’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 친박계 수장으로 군림하던 시절부터 친박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들이 막강한 문고리 권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많았다. 국회 의원회관 545호 시절부터 박 대통령의 수족으로 일해왔던 이들 3인방에게 권력이 쏠릴 것이라는 우려가 일찌감치 제기됐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세 사람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 논란이 불거졌다. 인사 및 재무를 관장하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임기 초반의 ‘밀봉·불통 인사’의 배후로 지목됐다. 최초 내각 구성 등 각종 인사에 이 비서관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제1·2 부속실은 박 대통령의 일정과 독대 면담 시간을 관장한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관리하는 곳도 부속실이다.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거치지 않고서는 장관조차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비서관의 위세가 치솟았다. 세 사람을 둘러싸고 “국정의 요소요소는 물론 심지어 정부 부처 국장 이하의 인사까지 시시콜콜하게 챙긴다”는 뒷말이 정치권에 무성했다.

이재만·안봉근 비서관을 둘러싸고는 주로 청와대 및 정부 부처 등 특정 분야 인사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진 정호성 비서관의 경우 굵직한 정무에 더 활발히 개입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예로 지난해 10월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에게 “정호성 비서관이 8월1일 중국에서 북한 국방위원회 소속 고위 관계자를 만나고 왔다”며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은 공식 부인했다. 하지만 정권의 최측근이자 핵심 실세가 맡기 마련인 대북 비밀 접촉의 실무자로 정 비서관이 거론되는 자체가 그의 정권 내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각종 뒷말과 추측의 한가운데 있었던 ‘3인방’은 지난해 말 ‘정윤회 파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전직 정권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관련 증언이 쏟아지면서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박관천 전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행정관)은 지난해 3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며 “청와대가 문고리에 놀아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전 경정은 “나는 민정 내부감찰팀에 있었다. 그런데 민정 내부감찰팀을 부속실이 컨트롤하려고 했다. 내부감찰팀은 청와대의 권력을 감찰하는 곳이다. 부속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감찰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 시사저널 이종현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 뉴시스

조응천·유진룡 등 “3인방 인사 개입” 폭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지난해 12월 안봉근 비서관이 청와대 파견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조 전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작년(2013년) 10월 말, 11월 초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1명을 검증하다가 ‘부담’ 판정을 내렸는데 안봉근 비서관이 전화해 ‘이 일에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달 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을 다 단수로 찍어서 내려왔다”며 구체적인 인사 개입 정황을 언급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니윤 관광공사 감사 임명에 청와대 3인방 중 이재만 비서관이 개입했다”는 등 이 비서관이 정부 부처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을 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배후의 ‘비선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와 청와대 3인방이 중심이 된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 “소설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박 대통령은 “묵묵히 고생하며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해 그런 비리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며 비서진 3인방을 재신임했다. ‘청와대 개가 실세’라며 비선 실세 논란에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100명의 정치부 기자 및 정치평론가들은 당·정·청의 쟁쟁한 정치인 및 관료들을 제치고 이들 ‘3인방’을 권력의 실세로 지목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나 박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정치 전문가들을 설득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던 셈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의 절대적 믿음과 신뢰 속에서 실세 권력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지금 여권에서 3인방을 따라갈 인물이 누가 있나. ‘기춘대원군’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청와대에 있을 때 상대적으로 비서관 3인방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청와대의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 과정에서 김기춘 실장이 비서 3인방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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