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놓친 골든타임에 ‘돌고래’는 울었다
  • 이승욱 기자·제주=김동은│제주매일 기자 (.)
  • 승인 2015.09.16 19:21
  • 호수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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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 제주 낚싯배 전복 사고…“초동 대처·수습 과정 세월호 판박이”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푸르렀다. 불과 닷새 전 거센 비바람을 일으키며 돌고래호를 집어삼킨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다는 고요했다. 9월10일 오후 1시40분쯤 제주항 앞바다의 푸른 물결을 잿빛 해경 함정이 갈라놓았다. 함정이 제주항 7부두에 정박하자 민간인 차림의 남녀노소 20여 명이 조심스럽게 내렸다. 무더운 날씨에 얼굴은 땀범벅이 됐지만, 그들은 뙤약볕을 피하지 않은 채 항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먼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저 어딘가에 내 가족이 아직 마지막 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버티고 있지는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한 듯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날 돌고래호 승선 인원 21명 중 사망자(10명)와 생존자(3명)를 제외한 실종자 8명의 가족 20여 명이 사고수습본부가 차려진 전남 해남을 떠나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제주 해양경비안전본부(해경)를 찾은 것이다. 돌고래호가 지난 9월5일 저녁 7시쯤 제주 추자도에서 출항해 전남 해남으로 가다가 실종된 지 닷새 만의 일이다. 돌고래호는 실종 후 11시간 만인 이튿날인 9월6일 오전 6시25분쯤 전복된 채 발견됐다.

9월9일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자 가족이 돌고래호를 인양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제주항을 찾은 최영태 실종·사망자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해남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제주에 닿지 않아 직접 오게 됐다”면서 “설 자리가 없어 제주 땅을 밟았다. (제주도민에게는) 정말 미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실종자 가족들이었지만 사고 수습 과정에 대해서는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제주시와 해경 등이 실종자 가족의 거처를 사고 현장과 가까운 추자도로 권하려고 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를) 추자도에 가라는 것은 언론과 차단하고 고립시키려 하는 것”이라면서 “사건이 명백히 밝혀지기 전에는 제주도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관련 기관의 초동 대처와 사고 수습 과정에서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불과 1년 5개월 전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낳았던 세월호 참사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후 해경의 초동 대처 미흡이 우선 도마에 올랐다. 해경이 사고 가능성을 인지한 후 수색이 이뤄지는 과정까지 부적절한 대응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고 후 23분 시간 허비

제주해경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9월5일 돌고래호와 함께 전남 해남 남성항으로 향하던 돌고래1호는 기상 악화로 같은 날 오후 8시10분쯤 상추자도로 돌아왔다. 이후 돌고래1호 선장 정 아무개씨(41)가 출입항신고를 위해 상추자도 해경출장소를 방문해 “돌고래호와 전화가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씨가 별도의 신고나 수배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경은 그를 되돌려보냈다. 정씨는 오후 8시25분쯤 다시 해경출장소를 방문해 돌고래호의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 확인 요청을 했다. 이 과정에서 돌고래호 항적이 오후 7시39분에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은 돌고래호의 승선자 명부를 갖고 있던 하추자도 해경안전센터를 통해 승객들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았고 오후 8시39분쯤 승객 명부에 있던 A씨와 연결이 됐다. 해경에 따르면, 당시 A씨는 “지금 잘 가고 있다. 곧 도착한다”고 답했고 해경은 오후 8시42분 ‘이상 없음’으로 본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A씨는 이후 8시45분 하추자도 해경안전센터에 돌고래호에 승선하지 않았다고 통보했고, 돌고래1호 선장 정씨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이에 정씨는 오후 8시50분 상추자도 해경출장소를 다시 찾아가 A씨가 돌고래호를 타지 않았다는 점을 재차 밝혔다. 그제야 해경출장소는 제주해경상황센터로 돌고래호의 실종 상황을 보고하고 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결국 돌고래1호 선장 정씨의 신고 후 23분이나 시간이 허비돼 돌고래호를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경은 A씨의 거짓말이 구조 지연의 원인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해경의 주장을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목도 나온다. 해경은 “돌고래호 안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승선자 중 10여 명과 통화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누구와도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고, 돌고래1호 선장 정씨가 이미 돌고래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밝힌 상태였다. 특히 항적도에서 돌고래호가 사라진 사실을 인지하고도 상황 판단을 부적절하게 했다는 책임에서 해경은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해경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사고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애초 제주해경은 사고 선체를 인양한 이틀 후인 9월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선박안전기술공단 등 3개 기관의 합동 감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주해경은 선체를 인양한 다음 날인 9월10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 명의로 국과수와 선박안전공단에 ‘감식 일시 변경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고, 합동 감식 연기를 돌연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의 연기 통보에 국과수 관계자들은 연구원으로 되돌아갔고 감식은 미뤄졌다. 이는 앞선 9월10일 해경이 기자들에게 국과수의 일정을 이유로 합동 감식 일정을 변경했다고 밝힌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해경은 “합동정밀 감식을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의혹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부처 간 책임 떠넘기려고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노출됐던 관련 기관들의 책임 떠넘기기 논란도 일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 해경 함정을 타고 제주항을 방문할 당시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아무도 탑승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위원장도 “(부처 관계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항만 관계자의 안전교육 등 여객선 안전관리 강화를 공언했던 것과는 달리 부실 관리 실태가 드러나 논란이 재연되기도 했다. 해경은 사고 발생 후 승선자 명부를 갖고 있었지만, 실제 승선자 명단과 달라 실종자 인원을 파악하는 데 혼선을 빚었다. 돌고래호 선장(사망)의 부인 이 아무개씨(42)는 “선장이 불러주는 대로 적었다”고 말하고 있다. 승선자 거의 대부분도 해난 구조에 필수적인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제주항을 방문한 9월10일 오후 4시28분쯤 추자도 추자대교 밑에서 돌고래호 실종자 시신 1구가 발견됐다. 지난 9월6일 낮 12시47분 추자 우두도 서쪽 0.8㎞ 해상에서 10번째 시신이 발견된 후 나흘 만이다. 이로써 돌고래호 전복 사고로 인한 피해자는 9월11일 오후 4시 현재 사망 11명, 실종 7명, 구조 3명으로 집계됐다. 피해자 가족과 야당은 현재 진행 중인 국회 국정감사에서 돌고래호 전복 사고와 관련한 원인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린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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