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주의 黙黙不答]
  • 윤길주 편집위원 (ykj77@sisabiz.com)
  • 승인 2015.09.25 10:57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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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전세 없소?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판교를 지나면 거대한 신도시가 나온다. 여전히 곳곳에서 타워크레인이 위용을 뽐내며 건물 층수를 높이고 있다. 여기 뿐 아니다. 경기도 파주·평택·광명·배곶 등 수도권 전체가 공사판이다.

금새 도시가 뚝딱 생겨나니 어쩌다 한번 가면 눈이 핑핑 돈다. 그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아파트가 쏟아지는데 집 없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을까. 누가 이 집들을 소유하고 있을까.

정부는 공급이 늘면 집값이 떨어지고, 서민들 내 집 마련이 쉬워질 것이라며 전국에 신도시를 건설 중이다. 그래서 서민 주거 문제는 해결됐나. 천만의 말씀이다. 전세난이 얼마나 심각한가. 전세가 미쳤다는 말이 지금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기준 전국 주택보급률은 103%다. 수치로만 보면 어느 가구나 집 한 채씩은 소유할 수 있을 정도다. 정부는 주택보급률을 115%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유념해 볼 게 있다. 자가점유율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고 있는데도 자가점유율은 50%대에 불과하다. 이는 여러 채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과 전·월세 거주자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주택자가 많다는 것은 주택이 투기 도구가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집을 끝없이 지어도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 전세난은 현장에 가보지 않고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주택 거래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의 전세 물건은 씨가 말랐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건 지난봄보다 5000만~1억원씩 올라있다. 올려주지 못하는 세입자는 눈물을 머금고 월세로 전환하거나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세입자들이 아우성인데도 정부 대책이라는 게 알맹이가 없다. 국토부는 최근 전세난 완화를 위해 정비사업 규제완화, 뉴스테이 활성화 등을 내놨다. 하지만 정비사업 규제 완화는 재건축 과정에서 집값이 오르고 이주 수요로 인해 전월세난이 가중된다는 점에서 전월세난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

뉴스테이는 ‘귀족 월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 뉴스테이의 경우 월 임대료가 100만원을 훌쩍 넘길 것이란 예측이다. 매달 100만원 넘는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서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연말과 내년 봄 전세난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서울 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으로 내년까지 이주해야 할 가구 수가 6만가구가 넘는다. 재건축·재개발 이주 기간은 3~4개월로 짧아 단기간에 수천가구가 이주하면 인접 지역 전월세 시장이 폭발한다.

정부는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돌리기 위해 ‘금융 지원’에 적극 나섰다. 쉽게 말해 빚내서 집 사라는 것이다. 이건 꿀 묻은 독약이다. 당장은 전세자금 지원이 세입자에게 달콤하겠지만, 너도 나도 대출을 받으면 전세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 부작용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자 집주인들은 앞 다퉈 월세로 돌리거나 전세금을 올리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정부는 전세난 해소 의지가 있는가. 땜질식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먼저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수요자를 보호 할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할 때가 됐다. 집 주인들의 저항이 크겠지만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못할 것도 없다. 금융실명제나 부동산실명제가 어떻게 도입됐는지 복기해보라.

공급 측면에서도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집을 많이 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

나는 ‘미친 전세’ 문제가 내년 총선의 빅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는 곳이 표를 많이 얻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주부가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부동산중개업소를 떠돌고 있다. 이들에게 추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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