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히 맞선 주장, 누구 말이 맞을까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12.15 20:33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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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체크] 20년째 날 선 공방 ‘사법시험-로스쿨’ 갈등 되짚어보니…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사법시험(이하 사시) 존치와 폐지를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사시 진영’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영’이 서로 맞서 날 선 공방을 펼치는 모습이다. 여론전도 치열하다. 사시가 권위주의에 빠진 ‘법조계 카르텔’의 원흉이라는 비판이 있는가하면, 로스쿨은 부모 잘 만나 성공하는 ‘현대판 음서제’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스쿨 도입, 노무현 정권의 일방통행?

로스쿨 도입이 최종 확정된 것은 노무현 정권 때인 2004년 10월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부터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로스쿨을 비롯한 법조 인력 양성 방안은 해묵은 논쟁 중 하나였다. 시곗바늘을 2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로스쿨 제도 도입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시기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 중반기인 1995년부터다. 군 개혁의 일환으로 하나회를 청산하고 경제 개혁 차원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던 YS 정부는 사법 개혁의 과제 중 하나로 로스쿨 도입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법조계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개혁의 주체부터 논란거리가 됐다. 사법 개혁 문제를 끄집어낸 것은 국무총리 소속하에 있던 세계화추진위원회였다. 국제화·세계화·선진화를 국정 목표로 삼았던 시절이다. 사법제도 역시 세계화의 대상으로 여겼던 셈이다. 청와대가 여론몰이 식으로 로스쿨도입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반발에 직면했다.

부산·경남 민변 소속 변호사 26명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부산·경남 민변은 “사법제도의 당면한 근본 문제인 사법권의 완전한 독립과 사법의 민주화 문제를 외면한 채 우리의 여건과 맞지 않는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간과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부산·경남 민변 대표간사가 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다. 문 대표는 노무현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

결론 없는 논쟁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계속됐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시절인 1999년 대통령 자문기관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로스쿨 제도 도입을 건의했다. 하지만 또 다른 자문기관인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4년 후인 2003년 로스쿨 도입 문제가 재점화했고, 이듬해인 2004년 로스쿨 제도를 2008년부터 시행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 건물 © 시사저널 박은숙

로스쿨 도입과 사시 폐지는 무슨 관계?

YS 정권은 1995년 로스쿨 신설 방안을 검토하면서 사시 폐지를 후속 조치 중 하나로 꼽았다. 사법 인력 충원에 우선 초점이 맞춰졌다.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 인력이 너무 적어 과다 수임료와 같은 여러 문제를 낳고, 이는 결국 국민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시험을 통한 소수 인원 선발’인 사시 제도가 ‘교육을 통한 법률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사법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목됐다.

노무현 정권에서 로스쿨 도입을 확정지었을 때도 사시는 2008년 로스쿨 시행 후 5년간 병행 실시되다가 2013년에 완전 폐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유예 기간 5년동안 합격자 수를 점차 줄여나가 결국 폐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시 유예 기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로스쿨 법안은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했다. 로스쿨은 2009년 처음 개설됐다. 올해로 6년째를 맞는데 아직 사시는 폐지되지 않았다. 이는 사시 폐지에 대해 2017년까지 8년간 유예 기간을 둔다는 사시 폐지법안이 2009년 4월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유예기간을 더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사시 진영’에서는 로스쿨 도입과 사시 폐지는 별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사법 인력충원을 위해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다면 사시와 로스쿨 제도를 함께 운영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사시가 로스쿨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른바 스펙이나 경제력이 부족해 로스쿨 교육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시를 통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시가 ‘법조인 카르텔’ 만든다?

로스쿨 도입 후 사시 폐지 방안이 추진된 배경 중 하나는 소수 정예로 선발된 사시출신 법조인이 이른바 ‘법조인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폐쇄적인 사법특권층이 법체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전관예우를 비롯한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반발도 컸다.

‘로스쿨 진영’에서는 지금도 사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변협의 주류는 여전히 사시 출신 변호사들이다. 따라서 사시와 로스쿨을 병행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수평적 경쟁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대한변협의 경우 등록 인원 2만명 중 6000명 정도가 로스쿨 출신이고, 나머지 1만4000명이 사시 출신이라고 한다. 로스쿨 출신 배출이 오래되지 않아 대한변협을 이끄는 집행부가 사시 출신이기는 하지만 갈수록 로스쿨 출신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 역할 한다?

최근 국민 여론이 사시 폐지보다 사시 존치 쪽으로 기우는 듯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 진영’에서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자녀들이 로스쿨 진학 후 변호사 자격 취득이나 취업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부모의 부와 지위가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방편으로 로스쿨이 활용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 진영’에서는 사회적 약자 배려에서 로스쿨이 사시보다 더 적극적이라고 반박한다. 전국 25개 로스쿨이 정원의 5~10%에 해당하는 인원을 특별전형에 배정함으로써 제도적으로 취약 계층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언제 합격할지 장담할 수 없는 사시를 준비하는 데 드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시 진영’이 강조해온 ‘희망의 사다리’가 허구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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