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愛國) 장사’ 보수단체들 기부금 횡령 논란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1.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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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우파 진영 ‘공기업 기부금 횡령’ 의혹 두고 대립
1월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김덕근(왼쪽 두 번째) 바른태권도시민연합회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애국단체총협의회 박정수 집행위원장이 공기업 기부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1월12일 오후 2시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원실 입구. 기자회견에 나선 김덕근 바른태권도시민연합회(바태연) 대표가 박정수 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 집행위원장을 호명하며 “훔쳐간 기부금 1억원을 즉시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박 위원장이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밝고힘찬나라)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인 2010년 4월28일 밝고힘찬나라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청년아카데미 운영과 해외연수 목적으로 받은 기부금 1억원을 정당한 절차 없이 자신의 개인 통장으로 이체시키고 문제가 야기되자 애총협의 ‘천안함 폭침 규탄집회’ 비용으로 썼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시사저널 제1369호 ‘보수우파단체의 수상한 돈 흐름’ 기사 참조>

김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바태연 대표이자 밝고힘찬나라 감사 명의로 박 위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박 위원장이 밝고힘찬나라의 기부금 1억원을 다른 계좌로 송금한 것은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고발장에서 문제의 계좌가 박 위원장 개인 계좌이거나 애총협 계좌이거나 관계없이 횡령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0년 2월23일 밝고힘찬나라 박정수 집행위원장 명의로 LH 사장 앞으로 보낸 ‘청년아카데미 후원 요청’ 공문과 당시 밝고힘찬나라 예금통장 사본 및 관련 인터넷 송금 자료 출력물 등을 증거 서류로 제출했다.

“LH의 1억원 기부 빙산의 일각”

김 대표의 이번 고발은 세 가지 지점에서 주목된다. 먼저 보수우파단체들의 운영자금이다. 그동안 대규모 보수 집회와 언론사 의견 광고 등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는데 이 자금이 어떻게 마련됐는지를 두고 의심의 눈초리가 있어왔다. 보수우파 진영의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 기업체에 전화해 ‘어느 단체를 좀 도와주라’고 한 후 그 단체에 ‘얘기해놨으니 어디로 찾아가보라’는 식으로 자금을 마련해줬다”고 밝혔다. 이 자금이 정부 정책을 옹호하고 정부 규탄을 반대하는 데 사용됐다는 것이다.

LH의 기부금 1억원도 이런 과정을 거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후원을 한 것은 맞지만 비공식적인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법인 설립이 돼 있지 않은 애총협이 2009년 법인 설립을 마친 밝고힘찬나라를 이용해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LH의 1억원 기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이 LH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MB(이명박) 정권 출범 후 보수우파단체들이 이른바 ‘애국(愛國)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이 제대로 사용됐는지 여부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사 의견 광고를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한 유력 일간지에 의견 광고를 게재하는 비용이 1700만원 정도로 책정돼있는데 실제 지불하는 비용은 9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 차액이 어디로 갔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수우파단체 내에서 자금과 관련한 문제제기가 사실상 금기시돼 있어 의혹을 더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보수우파 진영 내의 알력도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다. 김 대표가 애총협의 박 위원장은 물론 이상훈 상임의장의 책임론까지 거론하자 애총협 측은 국민행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서정갑 본부장을 김 대표의 배후로 지목하고 나섰다. 박 위원장은 1월6일 서 본부장에게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의 1억원 반환 청구에 대한 설명’이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서를 보냈다. 앞서 밝고힘찬나라는 지난해 12월29일 이 상임의장에게 ‘1억원 반환 청구’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애국운동의 동지 배신했다”

박 위원장은 내용증명서를 통해 “밝고힘찬나라 통장으로 입금되고 애총협에 지원된 1억원에 대한 자금 출처, 지원 경위, 사용처 등은 당시 사무총장이던 서 본부장이 이미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 본부장이 사용 내역을 알고 있으면서도 김 대표를 통해 마치 개인이 공금을 착복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해 서 본부장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고 전했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이 상당 기간 지속돼온 사실을 확인했다. 보수우파 행사에 한쪽이 참석하면 다른 한쪽이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몽니를 부렸다며 서로 보수우파 진영의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2014년 5월에 열린 밝고힘찬나라 임시총회에서 박 위원장이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나게 된 일과 지난해 4월에 치러진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회장 선거 과정에서 대립한 일이 기폭제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위원장은 밝고힘찬나라 임시총회 다음 날 “집행위원장의 사무보좌역인 사무총장이 집행위원장직을 차지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 배경과 관련해서는 2013년부터 밝고힘찬나라가 행정자치부 예산 지원을 받았고 2014년 다른 단체보다 월등히 많은 8200만원을 지원받게 된 점을 들었다. 박 위원장은 “애국운동의 동지를 배신했다”며 서 본부장을 맹비난했다.

향군 회장 선거에서는 양측이 서로 다른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 상임의장과 박 위원장, 그리고 서본부장은 모두 군 출신 인사다. 이 상임의장은 육군 대장 출신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박 위원장은 해병대 장성 출신이다. 서본부장은 대령연합회를 창설해 회장을 맡아왔다.

김 대표가 검찰에 박 위원장을 고발하기까지 보수우파단체는 물론 권력기관으로부터도 강한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한 점도 주목된다. 이들이 보수우파의 분열과 4월 총선을 거론하며 검찰 고발을 하지 못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분열의 문제가 아니라 부패의 문제다”며 “권력기관이 부패 인사의 호위무사가 되려고 한다면 이를 묵과할 수 없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에 역행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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