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폭삭 무너져 대형 인명 피해 날 뻔했다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6.02.18 15:57
  • 호수 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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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 노린 영화 같은 ‘기름 절도단’ 일망타진 풀스토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간 큰 도둑들이 벌인 미완의 범죄였다. 지난 2월3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도유(盜油·기름 절도) 조직을 적발하고, 자금 총책 정 아무개씨(44) 등 6명을 붙잡아 이 중 4명을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및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송유관에 구멍을 뚫은 다음 대한송유관공사 소유의 경유 등 기름 161만 리터를 훔쳤는데, 시가로 22억원어치에 달했다.

범행 수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나라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은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땅굴을 팠는데, 자칫 고속도로가 무너져 내려 대형 인명 피해를 야기할 뻔했다. 다행히 이들 일당의 범죄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일망타진되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기름 절도 사건이 발생한 충북 청주 흥덕구 경부고속도로(왼쪽)와 굴착 현장. ⓒ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경찰, 첩보 입수 후 검거 작전 돌입

지난해 11월 중순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지수대) 김상중 경감은 부하 직원인 박준 경위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보고를 받았다. “팀장님, 경부고속도로상에 있는 송유관을 뚫고 기름을 훔치는 조직이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김 경감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도유범들이 파놓은 땅굴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대형 안전사고를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반 침하 등으로 순식간에 고속도로가 무너지면 그곳을 지나던 차량들이 땅속으로 추락하면서 많은 재산·인명 피해가 날 것이 불을 보듯 빤했다. 김 경감은 이런 사실을 지휘 라인에 보고한 후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먼저 도유범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가입 내역 등을 파악해 피의자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그리고 장물 취득 업소, 피의자들의 역할, 범행 수법, 범행 차량, 범행 계좌 등을 특정했다. 이렇게 해서 도유범 일당은 총 11명으로 압축됐다.

그다음에는 도유범들이 파놓은 땅굴을 찾아 나섰다. 경찰은 대한송유관공사·한국도로공사 등과 공조해 범행 현장인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산읍 오산리에서 땅굴의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을 찾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송유관이 매설된 곳에 나 있는 땅굴의 종착 지점은 찾았으나, 시작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송유관공사는 “우리 일이 아니다”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결국 지능수사대(지수대) 경찰관들이 직접 찾아야 했다.

김상중 경감은 “그걸 찾느라 우리가 정말 고생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찾다가 안 되니까 나중에는 포클레인을 동원해서 땅을 뒤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중장비를 동원해서도 땅굴의 시작 지점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뒤져도 보고 찔러도 봤지만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 시작 지점을 찾고 있을 때 범행 현장의 지형지물을 관찰하던 박준 경위의 눈에 컨테이너 박스가 들어왔다. 박 경위는 현장에 있던 중장비로 컨테이너를 옮기도록 했는데, 그 안에 땅굴이 있었다. 지수대가 그토록 찾던 땅굴의 시작 지점이었다. 땅굴은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폭과 높이가 80cm, 길이가 70m나 됐다. 비밀 땅굴은 경부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굴착 지점 건너편에 있는 송유관까지 연결됐고, 이 땅굴로 들어간 고압 호스를 통해 기름 161만 리터가 빼돌려졌다.

땅굴 안을 살펴보던 지수대 경찰관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돼 있었던 것이다. 땅굴 안에는 기름에서 나온 유증기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유증기는 밀폐된 공간 내에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데다, 흘러나온 물로 인해 지반 침하까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 경감은 “지반이 침하되고 토사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면 서서히 지반이 내려앉다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거기가 고속도로인 데다 하루 평균 8만8000대가 시속 100㎞를 넘는 속도로 달린다”며 “만약 고속도로가 무너져 내렸다면 8차로 대로를 달리던 차들이 연쇄적으로 추락하거나 충돌 사고가 일어나 대형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다”고 아찔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기름 절도가 벌어진 현장. ⓒ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철저하게 범행 모의 후 역할 분담

도유범들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완전 범죄를 노리고 사전에 철저하게 범행을 모의했다. 자금 총책인 정씨는 기름을 빼내는 책임자 이 아무개씨(40), 땅굴 파는 책임자 김 아무개씨(45)를 포섭한 후 자금 지원, 땅굴 시공, 운반 감시 등으로 역할을 분담시켰다. 그 규모로만 보면 기업을 방불케 한다. 이들은 또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송유관에서 100m 떨어진 장소에 컨테이너 창고를 빌렸다.

기존 도유 조직과 확연히 다른 것 중 하나가 훔친 기름을 판매할 주유소까지 매입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훔친 기름 운반을 위해 25톤 카고 차량과 30톤 탱크로리 차량도 구입했다. 이들이 사용한 장비를 보면 전문 업체를 능가한다. 땅굴을 뚫기 위해 강관 압입 공법에 필요한 중장비를 동원했다. 송유관에는 기름이 빠져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진동감지센서와 유종 감별기, 유압계 등을 달았다. 땅굴 내부에는 전기시설, 환풍기, 배수시설,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했는데 범행 준비자금만 7억~8억원이 들어갔다.

이렇게 완벽한 준비를 끝내고는 경부고속도로 309.3㎞ 지점 고속도로 노면 밑을 1.82m에서 2.97m 깊이로 관통하는 약 70m 길이의 땅굴을 파 송유관에 구멍을 뚫었다. 땅굴이 완성된 후부터는 송유관에 고압 호스를 연결해 한 달여 동안 하루에 4만~6만 리터씩 휘발유 75만4700리터, 경유 84만3900리터, 등유 2만500리터를 빼냈다. 여기에는 고압 호스와 컨테이너로 위장한 25톤 분량의 유조차가 동원됐다.

이들의 범행 기간은 지난해 5월 중순부터 같은 해 11월23일까지 약 6개월간이다. 이렇게 훔친 기름은 미리 구입한 유조차 등으로 운반한 후 조직원 명의로 운영 중인 주유소에서 판매했다. 이 주유소에서 팔지 못한 나머지 기름은 경기·충청권 주유소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되팔았다.

이들은 각종 상황을 설정해놓고 이에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수사기관의 추적에 철저하게 대비한 것이다. 훔친 기름을 운반할 때는 앞뒤로 승용차 2대가 호위하도록 했는데, 만약 수사기관이 추적하면 고의로 사고를 내고 그사이 기름 운반 차량을 도피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추적이 안 되는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했다. 기름을 훔칠 때는 순찰조를 편성해 24시간 주변을 감시했고, 공범자들끼리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연락을 하지 않는 치밀함도 보였다. 범행이 발각됐을 때의 행동 매뉴얼도 만들었는데, “면세유인 줄 알았다”거나 “훔친 기름인 줄은 몰랐다”고 둘러대기로 각본을 짜놓았던 것이다.

지반 침하와 폭발 위험성이 있는 비밀 땅굴이 경부고속도로 아래 있었지만 반년 넘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처음 계획대로 ‘완전 범죄’가 되지는 못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서울경찰청 지능수사대의 첩보망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김상중 경감은 “우리는 연말연시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자칫 고속도로가 무너질 뻔했고, 큰 혼란을 겪을 수도 있었는데 그걸 막아냈다”며 “도유범들은 남이야 죽든 말든 기름만 훔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혀를 찼다.

이번 도유범 일당의 경우 한 경찰관과도 관련돼 있었다. 청주 흥덕경찰서 소속의 이 아무개 경위(45)는 주범 이씨의 부탁을 받고 범행에 가담한 땅굴 시공 전문가의 지명수배 여부를 알려줬다. 서울청 지수대는 이 경위를 사적인 용도로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불구속 입건했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 경위를 파면 조치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김상중 경감과 박준 경위 등 팀원들이 도유범 검거와 관련해 회의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갈수록 진화하는 기름 도둑들

대한송유관공사는 기름 도둑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도유범이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왜 그럴까. 국내에서 사용하는 원유는 전량 해외 산유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원유가 국내로 들어오면 2001년에 민영화된 대한송유관공사를 통해 관리된다. 지분 구조를 보면 산업통상자원부 9.8%, SK이노베이션 41%, GS칼텍스 28.6%, S오일 8.9%, 현대오일뱅크 6.4%, 대한항공 3.1% 등이다.

송유관은 전국 주요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데 그 길이가 자그마치 1200㎞에 달한다. 이곳을 통해 매년 국내 소비 경질유(휘발유·경유·등유·항공유)의 약 50%가 수송된다. 이처럼 송유관을 땅속에 매설해 기름을 수송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유류 수송이 가능해졌다. 연간 약 100만대에 달하는 유조차 운행 감소 효과도 있다. 여기에다 기후·시간·교통·환경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수송이 가능하다.

문제는 경질유를 송유관을 통해 수송하다 보니 기름 도둑들이 끊이지 않는 데 있다. 도유범들의 범행 수법은 갈수록 진화하고, 장비도 첨단화되고 있다. 중장비로 땅속에 수십 m짜리 땅굴을 파고 송유관에 은밀히 접근하는가 하면, 도유기 설치 과정에서 첨단 장비까지 동원하고 있다. 대한송유관공사가 누유 감지 시스템을 통해 기름이 새는 것을 감시하고 있지만, 야금야금 기름을 빼내는 도유범들을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솜방망이 처벌도 도유범들이 활개 치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3년간 도유범에 대한 재판 결과를 보면 지난 2011년 7월부터 2014년 8월까지 3년 동안 165명이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 중 66명(40%)만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형량도 1?2년 이하의 징역이 53명(80%)으로 가장 많았다.

때문에 도유범들은 “한몫 단단히 챙긴 후 짧게 살다가 나오면 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 5월 ‘송유관 안전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도유범들에 대해 2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했지만 도유범을 막는 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송유관 내 기름 절도는 환경오염이나 대형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도유 과정에서 송유관이 파손돼 기름이 쏟아질 경우 토양과 수질 오염이, 유증기가 발생해 불이 나면 대형 인명 피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사고로 장기간 송유가 중단되면 경질유 수급 차질로 자동차 제한운행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조악한 도유 시설 방치로 기름이 유출돼 토양과 하천 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13년 10월 경북 영천에서는 도유로 인한 누유 사고로 인근 하천과 과수원 등이 오염되기도 했다.

세금 탈루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다. 도유 제품에 대한 무자료 거래 등으로 세금 탈루나 국고 손실을 초래할 수 있고, 복구 기간이 최소 1~5년이 걸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대한송유관공사는 도유 예방책으로 누유 감지 시스템을 구축해 24시간 내내 누유 여부 및 위치를 파악해 사건·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기름 도둑을 좀 더 철저히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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