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은 이부진, 패션은 이서현이 들고 나갈 것”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20:20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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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건희’ 시대, 삼성그룹 3세 후계구도 밑그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그룹 3세들의 후계구도는 명확했다.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력인 전자·금융 계열사를 맡아 그룹을 승계하고,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차녀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사장)이 각각 호텔·중화학과 패션·광고 계열사를 물려받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14년 11월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테크윈 등 화학 및 방산 계열사 4곳이 한화그룹에 매각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화학 부문을 이부진 사장에게 승계한다는 시나리오가 무너진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삼성정밀화학과 삼성비피화학도 지난해 10월 롯데그룹에 매각됐다.

 

올해 초에는 제일기획 매각설이 불거졌다. 프랑스 대형 광고 에이전시인 퍼블리시스가 제일기획의 지분 30%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발단이었다. 한국거래소는 2월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제일기획 측은 “주요 주주가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고 답변했다.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확인된 바가 없다”며 매각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제일기획 매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매각과 함께 임직원 30%가 조정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얘기가 제일기획 사내에서 돌고 있다. 삼성그룹 3세들의 경영권 승계구도에서 이부진·이서현 자매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뿐 아니라 후계구도도 변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더 오리무중에 빠진 삼성 3세 후계구도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는 반대다. 최근 계속되는 계열사 매각과 사업 구조 재편으로 후계자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한 것이 단초였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현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에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됐다. 삼성물산은 현재 삼성생명의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를 보유하고 있다. 통합 삼성물산의 탄생으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뿐 아니라 삼성전자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 부회장도 최근 2000억원 규모의 삼성물산 주식과 302억원 규모의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취득했다.

 

시장에서는 현재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설,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설, 삼성물산의 플랜트 부문과 삼성SDS의 합병설, 그리고 삼성전자 분할설과 함께 삼성물산 주택사업 부문 매각설, 에스원 매각설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추가로 거론되고 있다. 삼성생명은 1월28일 매각설이 나돌던 삼성카드 지분 37.5% 전량을 1조5405억원에 삼성전자로부터 매입했다. 이번 거래로 삼성물산은 삼성카드의 지분 71.9%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삼성생명이 삼성증권 지분 7.92%를 추가 매입할 경우 그룹 내 ‘중간 금융지주회사’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된다. 삼성 금융 계열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 역시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 측은 일련의 지배구조 변화를 후계구도와 연결 짓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는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변화는 후계구도 문제가 아니다”며 “다가올 위기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 차원에서 비주력 계열사 매각과 합병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시선은 향후 3세들의 후계구도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쏠려 있다. 이 부회장이 핵심 사업인 전자와 금융을 중심으로 그룹을 승계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부진 사장은 현재 호텔신라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01년부터 호텔신라에 합류해 면세점 사업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3남매 중 유일하게 등기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 사장은 호텔신라의 지분을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삼성증권 등 계열사들만 17.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사장이 현재 보유한 계열사 주식과 삼성생명 등이 보유한 호텔신라 지분을 맞바꾸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사장은 현재 삼성물산과 삼성SDS 등 2조23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며 “안정적으로 회사 경영을 하기 위해 계열사와 ‘지분 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13년 5월31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3회 호암상 시상식’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나란히 참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전자·금융 쪽 이재용 지배력 더욱 공고해져

 

제일기획을 맡고 있는 이서현 사장도 마찬가지다. 제일기획은 국내 광고업계 1위, 글로벌 순위 15위권의 알짜 회사다. 물론 삼성 계열사의 광고 의존도가 높은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지만, 2014년 매출 2조6663억원과 영업이익 1268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삼성물산(12.64%)과 삼성전자(12.60%), 삼성카드(3.04%)가 대주주다. 이서현 사장 역시 제일기획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제일기획이 매각되지 않는다면, 이 사장 역시 자신이 보유 중인 계열사 지분과 맞교환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이 맡고 있는 삼성물산의 상사 부문과 패션 부문의 처리 문제도 변수다. 삼성물산은 2014년 합병을 통해 매출 34조원대의 초거대 기업이 됐다. 사업 분야도 건설·상사·패션·리조트·식음료 등 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덩치가 너무 크고, 사업 부문 간 시너지 효과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부진 사장의 경우 2010년부터 상사 부문 고문을 맡고 있다. 면세점이 주력인 호텔신라와도 사업 연관성이 깊다.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부 사업 부문을 떼어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서현 사장 역시 오랜 기간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맡아왔다. 이 사장은 미국 파슨스디자인학교를 졸업한 후, 삼성전자 디자인센터를 거쳐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기획담당 상무, 제일모직 및 제일기획 부사장, 제일모직 경영기획담당 사장 및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 등을 거쳤다. 때문에 일찍부터 패션 부문은 이 사장이 물려받을 것으로 점쳐졌다. 향후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정착되면 패션 부문 역시 분리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나 후계구도를 놓고 이런저런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결국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며 “과거 이건희 회장 체제가 시작될 당시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제지 사업과 백화점 사업을 들고 독립했다. 이재용 체제가 안정화되면 후계구도 역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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