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가 아닌, 한류(漢流)가 몰려온다
  •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31 13:01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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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韓流에 도취되어 있는 사이, 韓流 노하우 익힌 ‘중국드라마’ 무서운 속도로 성장

“우리에게 《겨울연가》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랑야방(琅榜)》이 있다.” 요즘 중국드라마에 매료된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성공한 것이 세련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옛 감성 때문이었던 것처럼, 중국드라마 《랑야방》은 묘하게 우리네 추억의 한 자락을 건드린다. 그것은 무협의 감성이고, 지금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그리 추구되지 않는 야망에 대한 욕망이다. 아주 세련됐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일단 첫 회를 보고 나면 묘하게 주인공인 ‘매장소’의 매력에 이끌린다. 《랑야방》은 양나라를 배경으로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쓴 매장소의 복수를 다룬 사극. 1980년대 소림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도 팬덤을 갖고 있는 무협 장르가 가진, 황당하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액션에, 황실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벌어지는 쟁투가 새삼 ‘야망’의 시절을 회고하게 한다. 1990년대의 IMF를 경험하면서 야망보다는 현실적 행복을 추구하며 조금씩 사라져버렸던 그 욕망을 《랑야방》이라는 중국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2014년 BTV에서 제작한 《랑야방》은 지난해 중국 50개 도시에서 모두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무협 정치 사극으로, 중국드라마는 촌스럽다는 편견을 깬 드라마이기도 하다. 실제로 드라마 첫 회의 시작부터 펼쳐지는 장쾌한 전투신과 마치 한 폭의 풍경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미장센은 중국이 이 드라마를 ‘명품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바로 이런 점들이 국내에서도 《랑야방》 팬심을 만들어낸 요인이 되었다. CJ 계열의 중화TV는 《랑야방》으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티빙’에서 회당 최고 약 1만5000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고 중국 배우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관련 여행상품은 출시되자마자 신청자가 몰려 모집인원을 훌쩍 넘겼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고 그 나라를 방문하는 이 풍경. 《랑야방》이 중국의 《겨울연가》로까지 불리는 이유다.

 

중국드라마 《랑야방》 © 중국 북경BTV


촌스럽다는 편견을 깬 건 막대한 투자 덕분

 

물론 《랑야방》에서조차 CG 부분이 아직 어색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중국드라마 전체에 ‘촌스럽다’는 이미지가 여전히 박혀 있는 건 사실이다. 한 회로 압축하면 충분할 내용을 한 10회 정도로까지 늘려놓아 늘어지는 전개를 보이는 드라마들이 적지 않고, 여전히 공산주의의 이념을 강조하는 근현대사 소재의 드라마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드라마가 모두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는 건 오산이다. 지금 현재 중국드라마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물론 우리네 드라마나 미국드라마 등에서 따온 듯한 장면 연출법이나 이야기 구성이 자주 보이지만, 그래도 성장속도는 엄청나게 빠른 편이다. 

 

이처럼 중국드라마가 급성장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시청층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와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세대가 주 소비자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1979년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이후 태어난 이른바 ‘소황제(小皇帝)’ 세대들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자라 자기중심적이고 원하는 건 반드시 얻으려는 욕망이 강하며 또한 제품에 대한 안목도 높은 세대들이다. 어찌 보면 중국 내 한류(韓流) 콘텐츠 열풍을 이끄는 이들 세대들은 이제 중국 콘텐츠들에도 그만큼의 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 한 편에 무려 500억원을 투자하기도 하고, 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한류 제작자들을 제작에 투입하며, 또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아예 우리네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중국 콘텐츠가 급성장하고 있는 이유다. 즉 엄청난 인구의 소비자들이 깨어나고 있고, 그래서 규모 또한 커진 중국의 콘텐츠 관련 사업자들은 더 큰 제작비를 투입해 더 많은 수익을 얻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고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질적인 성장도 자연스럽게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韓流)와 한류(漢流)의 양방향 흐름 만드는 시도도

 

중국 자본의 힘은 이미 국내 콘텐츠 제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사전제작이 본격화된 건 전적으로 중국의 영향이다. 사전 검열을 넘어서야 중국에서의 방영이 가능하게 되자 이제 아예 중국 자본을 들여와 드라마를 제작하고 한·중 동시 방영하는 패턴이 새로운 드라마 제작 방영의 수순이 되고 있다. 《태양의 후예》는 그 성공사례가 되었고, 그 뒤를 꿈꾸는 한·중 합작 드라마들이 속속 제작되어 방영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후난TV에서 2011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보보경심》이 리메이크되어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SBS)로 만들어진 건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중국의 콘텐츠를 우리가 리메이크해서 한·중이 동시에 방영한다는 것은 한류(韓流)와 한류(漢流)의 양방향 흐름을 만들어내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중국 측의 관심 또한 이끌어내는 시도다. 한·중 합작의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제작한 한류 콘텐츠가 중국에서 인기를 얻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이미 중국의 자본력은 우리네 실력 있는 제작자들과 스타들을 대거 중국 콘텐츠에 끌어들이고 있다. 우리에게 ‘쌀집아저씨’로 잘 알려진 김영희 PD는 중국에 아예 회사를 설립해 《폭풍효자》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후난 위성TV에서 방영한 바 있다. 《별에서 온 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감독은 중국에서 중국 자본으로 《몽상합화인》이라는 영화를 제작해 상영했다. 우리가 한류 콘텐츠의 중국 열풍에 들떠 있을 때 중국은 조금씩 그 한류에 발을 얹어 막대한 이익을 얻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콘텐츠 제작 능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중국에 잠식당하는 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콘텐츠는 결국 소비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폐쇄적으로 그 중국 콘텐츠의 흐름을 막으려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 무의미한 일이다. 한류(韓流)와 한류(漢流)가 뒤섞여 보다 큰 의미에서 독특한 아시아의 글로벌 콘텐츠류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우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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