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를 뺀다고요?” 명절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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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44%, 법정 공휴일 보장 못받아…“공휴일 법제화” 커지는 목소리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10월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고, 10월6일은 대체공휴일이어서 면서 ​역대 가장 긴 추석 연휴가 됐다. 추석연휴에 10월9일 한글날까지 합치면, 직장인들은 최장 열흘을 쉴 수 있게 됐다. 긴 연휴로 명절의 설렘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연휴가 연휴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 지침상 추석 연휴에 연차 휴가(이하 연차)를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쉬려면 최대 6일의 연차를 공제해야 한다. 주로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1년에 두 번 명절 기간에 연차를 쓰면 사실상 개인적인 휴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이들이다. 어찌 보면 추석 연휴 때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욱 박탈감이 클지도 모른다.

 

 

“이번 추석 연휴 때 연차 6일이나 사라졌다”

 

한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아무개씨(남·31)는 얼마 전 팀장으로부터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추석 연휴에 쉬는 대신 연차를 공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빨간 날(공휴일)에 쉬는 건데 연차를 공제하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며 “이전 회사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버릇없는 부하직원’으로 찍혔을 뿐이었다.

 

올해 초 이직 제의를 받고 고민 끝에 회사를 옮겼던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노무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회사에서 법을 어긴 것 아니냐는 게 김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답은 예상과 달랐다. 회사에서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당연히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도 없다는 답변이었다. 김씨는 어쩔 수 없이 내년에 발생할 연차에서 미리 공제하는 방식으로 추석을 보내야 했다.

 

사장이 “공휴일은 공무원이 쉬는 날이지, 우리가 쉬는 날이 아니다”라고 버티면, 노동자들은 쉬지 못한다. 공휴일에 일해도 휴일수당이나 특근 수당을 받지 못한다. 지독한 사장은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쓰게 해 휴가를 못 쓰도록 하는 방법도 동원한다. 연간 공휴일이 15일로 노동자들이 연간 사용할 수 있는 연차휴가 일수와 비슷하다는 점을 악용하는 셈이다. 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약 44%가 법정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적용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빨간 날’이 휴일이 아니었다니…

 

법적으로 반드시 휴일을 부여해야 하는 날이 있다. 근로기준법 55조에서 규정한 법정휴일이다. 법으로 보장한 법정휴일은 주휴일과 근로자의 날(5월1일) 뿐이다. 명절은 법정휴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민간기업에서 임시공휴일과 대체휴일을 쉬지 못하게 해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달력에 빨간 색으로 칠해진 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휴일로 정하는 날을 말한다. 이를 ‘법정 공휴일’이라고 한다. 법정휴일과 한 글자 차이지만, 강제성에선 확연히 차이가 있다.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 적용된다.

 

빨간 날에 쉬는 기업은 몰라서 그럴까. 당연히 아니다. 회사에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휴일을 정하는데, 이를 약정휴일이라 한다. 대다수 회사에선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정했다. 그래서 대다수 기업이 빨간 날에 쉰다. 반면 취업규칙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에선 ‘사장님 마음대로’다.

 

 

시민들이 추석 연휴에 앞선 8월29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차승차권을 예매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법조항 한 줄만 바꾸면 되는데”

 

이 조항을 악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철 민주노총 경기본부 안산지부 부지부장은 “4, 5년 전부터 ‘빨간 날’에 쉬지 못한다는 상담전화가 늘고 있다”며 “취업규칙을 편법으로 변경해 휴일로 지정한 ‘빨간 날’을 없앴다”고 지적했다. 이규철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사무장은 “사용자가 공휴일에 연차를 쓰도록 강제하면 새로 입사하는 노동자들은 입사와 동시에 마이너스 연차를 안고 시작하는 셈”이라며 “황금연휴에 노동자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근로기준법 55조를 개정해 명절이나 어린이날, 현충일 등의 공휴일을 법정휴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과 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 등 노동단체는 9월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휴일 법제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19대와 20대 국회에서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위해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를 위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며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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