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세대교체’ 절실한 한국 축구의 구세주 될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0 09: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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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소속팀 발렌시아에 이강인 차출 요청
3월 A매치 데뷔 유력

2월19일 이강인은 특별한 18번째 생일을 맞았다. 1월31일 발렌시아는 이강인과 정식으로 성인 계약을 맺고 그를 1군에 등록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에서 성인의 기준인 만 18세 생일을 앞두고 드디어 프로 선수로 대접받게 됐다. 지난 2011년 스페인 명문구단 발렌시아의 적극적인 구애 속에 유스팀에 입단, 가족 모두 스페인으로 이주한 지 8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이번 성인 계약에서 연봉 등 구체적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발렌시아가 거는 기대는 파악할 수 있다. 그에게는 팀이 배출한 대표적 유스 출신 스타 후안 마타(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등번호 16번이 주어졌다. 금액과 선수 가치가 비례한다는 바이아웃(소속팀 동의 없이 선수와 이적 협상을 할 수 있는 금액)은 기존 2000만 유로(약 250억원)에서 8000만 유로(약 1000억원)로 올라갔다. 계약 기간은 2022년 6월(1년 연장 옵션 포함)까지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 CF의 유망주 이강인의 성인 대표팀 합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PPE 연합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 CF의 유망주 이강인의 성인 대표팀 합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PPE 연합

만 18세 이강인, 대표팀 세대교체의 선봉

아무리 유스 단계에서 에이스라고 해도 빅리그에서 성인 계약을 맺는 건 힘든 일이다. 과거 바르셀로나 유스 소속으로 이름을 날린 한국인 삼총사 백승호(지로나),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장결희(포항 스틸러스)도 결국 성인 계약엔 실패하고 팀을 떠났다. 매년 유스팀이 배출하는 유망주는 십여 명이지만 그중 계약은 1~2명이 될까 말까다. 이강인은 과거 바르셀로나 삼총사보다 알려진 바가 적었다. 발렌시아는 현재도 그의 단독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린 선수에게 대중의 지나친 관심과 언론 노출은 독이기 때문이다. 육성 과정에서 공식적인 활약만 알려졌던 이강인이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프로 2군 격인 B팀에 호출된 2017년 말부터다. 백승호가 바르셀로나에서 이 단계까지 간 바 있다.

스페인 1부 리그 소속 B팀들이 참가하는 3부 리그에서 성인 선수들을 상대로 활약을 펼친 이강인은 지난여름부터 1군에 본격 합류하며 프리시즌 경기에 출전했다. 올 시즌 국왕컵과 유로파리그에서 차례로 데뷔전을 가졌고, 어린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숙된 플레이로 호평을 받았다. 결국 발렌시아와 성인 계약을 맺으며 한국 선수로는 여섯 번째(이천수·이호진·박주영·김영규·백승호) 프리메라리가 선수가 됐다.

1군 엔트리에 꾸준히 포함된 이강인은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파울루 벤투 A대표팀 감독에게도 중요한 자원이다. 8강이라는 아쉬운 결과로 아시안컵을 마친 벤투호는 대회 후 기성용·구자철·김진현 등이 차례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미드필드의 주축이었던 기성용·구자철의 은퇴는 새 얼굴의 수혈이 불가피할 정도로 큰 공백이다. 이강인의 A대표팀 발탁은 지난해 벤투 감독 부임 후 대표팀에 제기된 주요 이슈 중 하나였다. B팀에서 성인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보이자 “어린 선수를 빨리 선발해 대표팀에 새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의견과 “검증이 끝나지 않은 유망주다. 너무 이르다”는 반박이 팽팽히 맞섰다. 그에 대해 벤투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발탁은 아시안컵 이후에 고려하겠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아시안컵이 끝난 시점에 이강인의 성인 계약과 1군 진입이 본격화되고, A대표팀에 세대교체가 필요해지자 “이제는 뽑을 타이밍”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스페인 국왕컵 4강전에서 2도움을 기록하며 발렌시아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유로파리그에서 수준 높은 팀들을 상대로도 존재감을 발휘해 스페인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실제 벤투 감독도 아시안컵 이후 휴가를 겸해 유럽에서 뛰는 기존 국가대표 선수들을 점검하면서 이강인을 보기 위해 직접 경기장을 찾았다. 당시 이강인은 교체 투입되지 않았지만, 경기 후 벤투 감독과 만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1군 성장통 겪는 지금, 국가대표는 자신감 얻을 기회

이강인은 볼리비아·콜롬비아와 국내에서 평가전을 치르는 3월 A매치를 위한 소집 명단에 포함될 것이 유력하다. 원래 나이라면 오는 5월 폴란드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대표팀에도 이미 두 차례 선발된 바 있다. 하지만 5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20세 이하 대표팀의 스페인 전지훈련 명단에 이강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1군 데뷔를 마친 정우영이 이름을 올린 것과는 정반대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대표팀에도 이강인은 뽑히지 않았다. A대표팀 선발을 위한 포석이다. 20세 이하 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이 아닌 A대표팀으로 월반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축구협회도 3월 A매치 2연전에 이강인을 차출하기 위해 최근 발렌시아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부상 변수를 고려해 실제 소집 인원보다 더 많은 선수에게 차출 공문을 보내는 만큼 무조건 발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이 점검을 마쳤고, 20세 이하 대표팀이 선발하지 않은 만큼 미리 교통정리가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강인은 아직 유망주의 위치에 있는 선수다. 뛰어난 볼 간수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 공간 이해 능력을 통한 패스는 성인 레벨에서도 통하지만 힘과 속도, 경험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주목을 받으며 1군 계약을 맺은 뒤에는 오히려 출전 시간이 줄어든 상태다. 포지션 경쟁자였던 곤살로 게데스가 부상에서 복귀하자 9경기 중 1경기에서 출전하는 데 그쳤다. 발렌시아의 마르셀리노 감독은 최근 팀 성적이 부진하자 더욱 베테랑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4-4-2 포메이션을 고집하는 마르셀리노 감독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제격인 이강인을 왼쪽 측면에 세우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아직 힘이 필요한 수비력이 부족하고, 스피드가 뛰어나지 않은 선수의 단점만 부각시켰다는 비판을 들었다.

결국 이강인 측은 최근 팀에 다음 시즌 임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 선수에겐 꾸준한 출전이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강인의 잠재력을 주목한 다수의 팀이 임대 영입을 원하는 상태다. 다음 시즌 1부 리그 승격이 유력한 데포르티보, 오사수나, 그라나다 등이 후보다. 시즌 후반부로 오며 1군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이강인에게 성인 국가대표 선발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동시에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과거 이천수·박주영·이청용·기성용·손흥민 등도 그런 과정을 통해 더 높은 목표의식을 갖고 소속팀에 돌아가 성장하고, 다시 대표팀에 소집돼 활약하는 올바른 패턴을 보여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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