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갈대숲 들어간 ‘가면 쓴 남자’…포항 흥해 토막살인 사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8 17:00
  • 호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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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시신 발견됐지만 수사 진전 없어 미궁에 빠진 상태

지난 2008년 7월8일 경북 포항에는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오후 2시20분쯤 70대인 황아무개씨 부부는 북구 흥해읍 금장리와 흥해읍 칠포해수욕장 간 왕복 2차로 도로를 지나다 갈대숲에서 살구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황씨는 아내와 함께 살구를 따기로 하고 나무에 접근해 갔다. 시야를 가리는 키 높이의 갈대를 조금씩 잘라가면서 숲 안쪽으로 들어가던 황씨. 그는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심하게 부패된 토막 난 시신의 오른쪽 다리였다. 황씨는 뒤따라오던 아내에게 “큰일 났다.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황씨 부부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주변 일대를 수색하며 나머지 신체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 후 오른쪽 다리가 발견된 곳에서 1m쯤 떨어진 곳에서 검은 비닐과 포대에 싸인 왼팔과 왼쪽 다리를 발견했다.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고, 짐승에 의해 살점이 뜯겨져 있었다. 피해자의 오른손 손가락은 마디가 모두 잘려나가고 없었지만 왼손 손가락은 그대로 있었다. 감식 결과 양 팔과 두 다리는 모두 한 사람의 것이었다. 경찰은 시신의 나머지 부위를 찾기 위해 200여 명의 병력과 수색견을 동원해 이 일대를 수색했지만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약 2주 후인 7월22일 팔다리가 발견된 곳으로부터 1.2km 떨어진 도로변에서는 꽃길 조성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때 작업반장인 소아무개씨(51)의 눈에 비탈길 아래에 놓인 포대 하나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곳에 쓰레기나 동물 사체를 버리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소씨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웃 마을에서 토막 시신이 발견돼 포항이 술렁이고 있던 차였다. 그는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며 낫을 가져와서 포대를 약간 찢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찢겨진 포대 틈 사이로 사람의 신체 일부가 드러난 것이다. 포대에 들어 있던 것은 토막 시신의 머리와 몸통이었다. 쌀 포대와 검은 비닐에 겹겹이 감겨진 채 버려져 있었다. 처참하게 흩어져 있던 시신은 그제야 온전히 하나가 됐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었다. 

경찰은 시신의 왼손에서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확인했다. 시신의 주인은 동해면 석리의 한 아파트에 살던 차아무개씨(여·49)였다. 그는 6월12일 집을 나간 후 행방불명됐고, 함께 살던 남편 정아무개씨(42)가 그로부터 12일 후인 6월24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차씨의 체형은 신장 163cm, 체중 47kg, 보통 체격, 단발머리였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피부와 장기는 부패가 심했지만 뼈는 차씨 죽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차씨의 사망원인은 설골 골절로 추정됐다. ‘설골’은 턱 아래쪽 목을 감싸고 있는 뼈다. 주로 목 졸림으로 살해된 시신에서 설골 골절이 생긴다. 차씨는 누군가에게 목을 졸려 살해된 뒤 시신이 훼손된 채 버려진 것으로 판단됐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훼손된 채 발견된 아내의 시신

차씨는 어쩌다가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일까. 범인은 왜 이렇게 잔혹하게 시신을 훼손해 들판에 버렸을까. 제주도가 고향인 차씨는 6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육지로 떠났다. 그는 동생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하지만 육지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10년 전에 7살 연하의 남편 정씨를 만나 결혼했지만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경찰은 차씨의 주변 인물들과 지인들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실종되기 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위태로운 심리상태였다는 증언을 들었다. 4개월 전인 2008년 2월 차씨는 한 교회에 불쑥 찾아왔다. 추운 겨울인데도 외투도 걸치지 않고 얇은 옷에 맨발 상태였다. 교회 목사는 “그냥 막 뛰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다급하고 불안해 보였다”고 말했다. 

차씨는 또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웃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술을 많이 사서 마셨다. 한 주민은 “우울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실종 당일에도 차씨는 낮부터 술을 마셨다. 남편 정씨는 경찰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나는 잠들었고, 그 사람은 외출했다”고 진술했다.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탄 차씨는 한 노래방에서 차를 세웠다. 이때가 저녁 9시30분에서 10시 사이였다. 차씨는 택시기사에게 “지금 차비가 없으니 노래방에서 차비를 가져다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노래방에 들어간 차씨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노래방으로 가서 여주인에게 차비를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택시기사는 노래방 안에서 차씨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12일 오전 2시30분쯤 차씨는 자택 인근에서 친구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 “사는 게 힘들다. 술 한잔 마시러 나가려 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 정씨에 따르면 차씨가 집에 들어온 시간은 오전 4시쯤이었다. 그는 “잠결에 아내가 들어온 것을 봤는데 가방을 싸고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 정씨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차씨가 집을 나간 후였다. 옷가지 등이 들어 있던 가방은 그대로 두고 손가방만 들고 나갔다. 이후 차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가 연락이 되지 않고 귀가하지 않자 남편 정씨는 가족과 지인 등에게 수소문해 차씨를 찾았다. 하지만 차씨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편 정씨는 실종 12일 만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차씨는 집에서 30km 떨어진 갈대밭에서 참혹한 토막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은 영상 증거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차씨가 거주하던 아파트 현관과 시신 유기 장소 인근에는 방범용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시신 유기 장소를 지나간 차량 수만 대를 모두 확인했지만, 용의차량을 특정할 수 없었다. 사체를 포장했던 비닐봉지와 포대, 청테이프에서도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차아무개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 경북지방 경찰청
차아무개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 경북지방 경찰청

남편의 수상한 행적

경찰은 차씨의 주변 인물들로 수사를 확대했다. 전 동거남도 용의선상에 올리고 조사를 벌였으나 당일 알리바이가 확인됐다. 다른 사람들도 차씨의 실종이나 살인과 관련 있다고 할 만한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다. 

그러다 남편 정씨의 수상한 행적이 도마에 올랐다. 정씨는 차씨 실종의 마지막 목격자다. 그렇다 보니 경찰도 그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씨의 진술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차씨가 실종된 후 정씨는 돌연 화장실 세면대 배수관을 교체했다. 설비업자도 “배수관을 교체한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가 배수관 교체를 위해 집을 방문했을 때, 벽에는 차씨가 애완견을 안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도 했다. 

경찰은 차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후 부부가 살던 아파트 욕실에서 혈흔 검사 등을 실시했는데, 이때는 배수관이 교체된 이후였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세면대의 배수관을 교체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교체된 배수관은 이미 폐기물로 처리돼 증거물로 확보할 수 없었다. 

남편 정씨의 의심스러운 행동은 또 있었다. 차씨가 실종된 후 정씨는 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집사람이 제주도에 갔는데 돌아오지 않으니 찾아 달라. 배를 탔든 비행기를 탔든 출입기록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만 해도 차씨가 어디로 갔는지 행적이 파악되지 않을 때였다. 그리고 차씨는 제주도에 가지 않았다. 

정씨는 제주도에 있는 처가에도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장모에게 “아내가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대구에 있는 남자 집에 있으니 장모님이 올라와서 좀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인에게는 아내가 제주도에 있다고 했던 정씨는 장모에게는 전혀 다른 말을 했던 것이다. 

정씨는 또 친구에게 전화해 해병대 장병들이 외박할 때 이용하는 숙소에 “온돌방 하나를 예약해 달라”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친구에게는 “대구에 가야 하는데 렌터카를 빌려야 하니 돈을 빌려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씨는 이미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었고,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차씨가 실종된 전후 정씨 집의 수도 사용량도 큰 차이를 보였다. 차씨 부부는 2007년 12월 이 아파트에 이사 왔다. 차씨가 실종되기 전인 2008년 7월까지 8개월 동안 사용한 물의 양은 한 달 평균 15톤이었다. 차씨가 사라진 후인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까지 정씨 혼자 사용한 물의 양은 9톤이었다. 

관련 전문가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달에 보통 18~20톤을 사용하고, 남자 혼자 있으면 평균 5톤 정도를 사용한다. 이것을 근거로 보면 정씨가 사용한 물의 양은 평균치의 두 배에 달한다. 정씨는 아내가 실종된 후 한 달 동안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물을 사용했던 것일까. 정씨는 이런 의혹들에 대해 “잘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평소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고 자주 다퉜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있었지만 수사에 진전은 없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진 상태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차씨는 집 근처에서 살해됐다. 

경찰 조사 결과 차씨의 휴대전화는 실종 당일 집에서 반경 1.5km 지점에서 꺼졌다. 차씨가 도보나 승용차 또는 택시 등 교통수단을 이용해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것은 차씨가 아파트 인근에서 살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신 훼손 장소는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일 확률이 높다.

부검 결과 차씨의 위에서는 죽상 상태의 음식물이 발견됐다. 참깨, 과일 껍질, 열매 씨로 추정되는 음식물이 소량 남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음식물이 죽상 상태로 남아 있으려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것을 토대로 차씨의 사망시간을 추정해 보면 친구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6월12일 오전 2시30분에서 오후 4시30분 사이,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오전 4시에서 6시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2. 범인은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다. 

국과수 부검 결과에 의하면 차씨는 목이 졸려 살해됐다. 범인이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노나 원한, 치정 등에 의해 순간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볼 수 있다. 범인이 시신을 토막 낸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시신을 이동하기 쉽게 하거나 신원을 알아볼 수 없게 할 목적이다. 후자의 경우 주로 면식범에 의해 살해됐을 경우에 해당한다.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면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어서다.

이 사건의 경우 범인은 피해자의 오른손 손가락까지 예리한 도구로 절단했다.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왼손 손가락을 그대로 두면서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범인이 오른손에서만 지문이 검출된다고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었거나, 시신을 처리할 당시 범인의 다급하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범인은 피해자의 소지품인 휴대폰이나 옷가지 등을 하나도 남김없이 처리하면서까지 완전범죄를 노렸다. 

3. 범인은 시신 유기 장소를 잘 알고 있다. 

차씨의 시신 발견 지점은 거주지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이다. 낮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더욱이 당시에는 어른 키만 한 갈대가 꽉 들어차 있었다. 바로 앞의 시야도 가릴 정도였다. 밤에는 차량의 라이트와 시동을 끄면 뭐가 있는지 전혀 식별되지 않는다. 

범인은 갈대밭 옆 조그만 차량 진입로까지 알고 있었다. 평소 자주 지나다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이다. 넓은 갈대밭은 시신을 숨기고자 하는 범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따라서 범인은 흥해읍 일대 지리에 밝거나 거주한 적이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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