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먹히는 이유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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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지로’ 을지로에서 도시재생의 단서를 찾다

요즘 서울의 힙스터들은 을지로로 모인다. ‘힙스터’란, 주류 문화에 반항하며 독특한 자신들의 문화를 새롭게 만드는 젊은 세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1940년대의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힙스터 문화는 2019년 서울의 을지로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다.

을지로의 좁은 골목 안에 숨겨져 있는 카페.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을지로의 핫플레이스다. ⓒ김지나
을지로의 좁은 골목 안에 숨겨져 있는 카페.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을지로의 핫플레이스다. ⓒ김지나

전통적인 을지로의 이미지는 ‘힙지로’와 많이 달랐다. 공업사, 인쇄소, 조명 상가 등,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도심산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다. 유기적으로 활발히 작동되는 산업 생태계는 을지로 생명력의 근원이었다. 저렴한 인테리어 견적을 찾아 발품을 팔거나, 오래된 맛집을 찾거나,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기회를 잡기 위한 사람들로 을지로는 여전히 붐빈다. 전성기 을지로의 영광은 그 색이 다소 바랬지만,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린 을지로 생태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저력을 뽐내고 있다.

밀레니얼들은 그 위로 또 다른 층위의 을지로를 만들어낸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금의 20~30대 청년들을 가리킨다. 밀레니얼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그들 삶의 수단은 정보통신 기술(IT)이다. 베이비부머들이 호황의 세대라면, 밀레니얼은 불황의 세대다. 밀레니얼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이 핸디캡을 극복하고 창의적으로 세상을 개척해나가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집이나 차를 사는 대신 공유 경제를 발전시켰고, 가지고 있는 부족한 자원으로 가장 필요한 대상에 집중하는 ‘소확행’을 실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고 ‘유튜브’로 교류하는 밀레니얼의 문화는 겉으로 봐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SNS 속 을지로는 밀레니얼이 자유롭게 해석하고 조합한 힙스터의 세계다. 조선시대, 개화기, 근대 따위로 구분하는 시간의 흐름은 밀레니얼에게는 지루하고 무의미하다. 각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매력적이고 유일무이하다고 여겨지는 시간의 풍경들을 조합해 현대의 SNS 속에 펼쳐놓는다. 을지로는 이 꼴라주를 다양하게 완성할 수 있는 자원의 보고가 됐던 것이다.

밀레니얼들이 찾는 명소들은 물리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곳은 '레트로' 소품으로 유명한 상점이 위치한 곳이지만, 언뜻 봐서는 찾기 어렵다. ⓒ김지나
밀레니얼들이 찾는 명소들은 물리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곳은 '레트로' 소품으로 유명한 상점이 위치한 곳이지만, 언뜻 봐서는 찾기 어렵다. ⓒ김지나

 

을지로 곳곳은 왜 ‘세운상가'처럼 되지 못하나

그런 을지로가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연일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을지로 재개발의 논란은 그 역사가 상당하다. 을지로를 가로지르는 세운상가가 대표적일테다.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개발되면서 구시대의 유물로 낙인찍힌 세운상가는, 90년대부터 시작된 오랜 논의 끝에 전면 철거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업성이 문제가 되며 철거가 보류되었고, 2014년 서울시는 마침내 세운상가 존치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도시재생’이란 새로운 정책기조를 실행할 첫 번째 장소로 세운상가가 선택된 것이다. 조금씩 세운상가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서울시의 실험도 빛을 보는 듯했다.

최근 불거진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 논란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을지로에는 역사가 있고 현재의 삶이 있으며 새로운 상상력과 기대감도 여전히 있다. 노장의 기술과 청년의 아이디어를 조우시켜 새로운 기회로 만들고자 한 세운상가 재생사업의 철학이 왜 을지로의 다른 현장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일까.

밀레니얼들에 의해서 ‘힙지로’로 재해석되는 을지로를 보며, 도시를 재생하는 힘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시와 정부의 변화무쌍한 도시재개발 정책, 오래된 맛집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여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사람들의 분노가 뒤섞인 을지로에서는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선뜻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신, SNS 속에서 을지로가 꾸준히 재창조되고 소비되고 있는 이유로부터 도시재생에 필요한 약간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재개발 계획으로 갈등을 불거진 을지로. 을지로 재생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지나
재개발 계획으로 갈등을 불거진 을지로. 을지로 재생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지나

 

마을이 계속 ‘엉뚱’할 수 있게 하자

미국 오레건 주의 포틀랜드 시는 ‘괴짜들과 힙스터들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포틀랜드 시 곳곳에서는 ‘Keep Portland Weird’란 슬로건이 심심찮게 보인다. 포틀랜드가 계속 괴상하고 엉뚱한 곳이 될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모든 도시에는 그 도시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참신하고 혁신적인 지점들이 있다. 이것을 얼마나 잘 찾아낼 수 있는지는 기성 문화에 갇히지 않고 얼마나 자유롭게(즉, 엉뚱하게) 상상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포틀랜드를 힙한 도시로 주목받게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원동력은 그런 엉뚱함의 기회들을 열어두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곧 을지로가 소위 ‘뜨는 곳’이 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심은 수많은 문화의 결이 얽히고설키어 있다. 그 깊이감이 가지는 가능성을 얕보지 않는 서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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