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승계 규제할수록 커지는 불나방 시장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9 15: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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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복잡한 절차 탓에 승계 꺼리는 2세들 늘어…중견·중소기업 M&A 유망 사업 부각

국내 제조업이 갈수록 활력을 잃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내세울 만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더욱 심각하다. 제조업 활성화 문제의 해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창업 활성화다. 다른 하나는 가업 승계 문제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최근 불고 있는 메이커 운동이 상당 부분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창업진흥원이 역점 사업으로 진행 중인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 지원 사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업 승계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얼마 전, 한 국책은행 임원은 사석에서 “과거 성공한 창업자들 상당수가 고령이 돼서 가업으로 물려주려고 하지만 승계받기를 꺼리는 자녀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상당수가 매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2018년 9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백년가게 1호 현판식에서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9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백년가게 1호 현판식에서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승계 포기한 탓에 알짜 중소기업 매물로

가업 후계자 교육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임원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가업 승계를 도와주려고 교육 과정을 개설해도 아버지 기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세법상 승계를 받기 위해서는 업종과 지분 그리고 고용을 10년간 유지해야 하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를 계속 안고 가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업종도 융합이 필요한 시대이며, 투자를 위해서는 지분을 줄여 자금유치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최근 유망 사업으로 부각되는 분야가 바로 중견·중소기업 M&A(인수·합병) 시장이다. 벤처시장처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상생의 M&A라면 좋은 일이지만, 제조 기업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M&A 시장이 커진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이런 흐름을 타고 삼성증권이 최근 가업승계연구소를 신설했고, 삼정KPMG도 가업 승계 전문팀을 구성했다. 태평양, 율촌 등 유명 로펌들도 앞다퉈 상속·가업 승계팀을 꾸리고 있다.

요즘에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사모펀드들이 가업 승계를 포기한 기업을 찾아가서 매각을 부추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차익 실현만을 노리는 불나방 같은 사모펀드가 승계를 포기한 중견기업을 인수하면 이들 기업의 기술력과 고용 유지도 위협을 받게 된다. 이 경우 기업의 사회적 가치나 창업가 정신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M&A를 부추기는 공적 기관들도 여럿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M&A 거래정보망’이나 한국증권거래소(KRX)의 ‘M&A 중개망’, 신보의 ‘중소벤처기업 M&A지원센터’ 등 6~7군데가 현재 운영 중이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산업은행에서도 조만간 ‘M&A 플랫폼’을 론칭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관이 미러링(mirroring)한 사례는 일본의 ‘니혼 M&A센터’다. 이 센터는 1991년 회계사 및 세무사 150여 명의 개인 출자를 받아 자본금 15억원 규모로 설립됐다. 최근 가업 승계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팅 사업팀을 구성하긴 했지만, 주력 사업은 역시 중견기업의 M&A이다. 연평균 650여 건을 중개했고 작년에만 5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들으면 ‘혹’할 만한 실적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가업 승계에 규제가 많으면 장수기업이 생길 수 없으며, 기업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려줄 후손이 없는 기업을 창업자가 열정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과감하고 혁신적인 투자는 전문경영인(CEO)보다는 창업자(Founder)가 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다.

2017년 독일에서 승계 예정인 중소기업의 전체 매출은 우리 돈으로 360조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일본에서는 후계자를 찾지 못한 중소기업을 방치하면 222조원의 국내총생산(GDP)이 증발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기업을 물려주는 것을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승계 경제’의 긍정적 효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서 열린 명문장수기업센터 출범식 ⓒ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서 열린 명문장수기업센터 출범식 ⓒ 연합뉴스

정책적으로 후계자 문제 접근해야

우리나라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은 후계자가 없으면 폐업하거나 M&A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도 1세대 창업자들의 은퇴 시기가 시작되면서 후계자 문제를 기업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있다.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도 후계자가 있는 경우는 정책적 지원을, 없는 경우는 후계자 매칭 서비스까지 실시하고 있다. 매칭 서비스 효과는 크지 않지만 가업 승계에 그만큼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며칠 전, 제조업 창업 활성화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해당 부처 고위 관리가 찾아왔다. 가업 승계 문제가 제조업 창업 활성화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국민 정서가 아직 가업 승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서…”라며 조용히 일어섰다. 그가 못다 한 뒷얘기가 이런 시장의 요구도 소용없음을 말해 주는 것 같아 무기력해진다. 

중견·중소 제조업의 가업 승계 문제는 단순히 한 기업의 업력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시각은 더더욱 잘못됐다. 그리고 국민 정서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간 경제가 망가진 후여서 뒤늦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언뜻 보면 가업 승계가 작은 일부 기업들의 문제로 보일지 모르지만 거의 모든 중소기업이 잠재적 가업 승계 대상 기업이다. 

따라서 원활한 가업 승계 지원 정책은 창업 의욕을 살려주며, 혁신경영을 견인하는 동력이 된다. 여기에다 일자리 창출과 사회공헌활동 등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 작은 움직임들을 통해 우리 경제는 활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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