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빠들이여, 페미니스트가 됩시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1 17:00
  • 호수 15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내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를 확장시키고자 열심히 뛰던 시절이 있었다. 노사모 이야기다. 그때 노사모 사람들이 많이 했던 말이 “내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라는 것이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게 더 나은 미래라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꿈꾸던 미래를 잘 알아듣고 실천해 줄 정치인이 노무현이라는 말이었다. 특정 사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념이, 특권이나 관습이 아니라 인식의 방법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 모든 꿈을 생각으로만, 말로만 하고 사람이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헛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이 제대로 민주주의자가 되자.  

이런 고민을 하던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이다. 1987년 체제가 한창 무르익으면서 동시에 망조가 들 무렵, IMF 관리를 겪으면서 급격히 금융자본주의 체제가 되고, 임금양극화와 자산양극화가 극심해지고, 힘에 부친 사람들이 가부장의 의무를 벗어나고자 노숙자가 되고… 바로 그런 시절에 정치를 지키고 바꾸는 것,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의 해법이라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그것이 노사모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시대정신이었던 줄 이제는 안다.  

엄마·아빠의 ‘페미니스트화’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 뉴시스
엄마·아빠의 ‘페미니스트화’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 뉴시스

자유·평등·박애 실현을 위한 페미니즘

민주란 자유뿐 아니라 평등과 함께 가고 평등은 박애가 있어야 실현된다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중요하게 여겨진 생각도 있다. 노사모 사람들은 ‘아이디(닉네임) 평등주의’라는 것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게시판에서 글을 쓸 때 그 사람의 실제 지위나 연령, 성별 등등을 전혀 묻지 않고 그의 글쓴이 아이디로만 소통하자는 것이었다. ‘OO아씨’가 알고 봤더니 70대 노인이라거나 ‘아기물고기’가 건장한 청년이라거나. 그 밖에도 닉네임이 주는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체들이 즐비했다.

이 결과,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병을 앓다시피 한 사이버성폭력 사태가 극히 드물었다.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성폭력을 예방한다. 나중에 선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남녀노소가 화합하며 큰 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평등에 대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박애는 뭐냐고? 정치적으로 말하면 복지국가론이겠지만, 내 아이의 미래는 다른 아이들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바로 박애다. 거기에 딸·아들이 구별될 리가 없다. 모든 차별에 맞서는 일 또한 새로운 시대정신이었다.

다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을 인식의 지평으로 끌어올리는 데까지 새로운 이름과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내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때까지 알려진 민주주의만으로는 2% 부족했던 그것이, 제대로 민주주의자가 되려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각성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3대 국정목표와, ‘원칙과 신뢰’라는 큰 틀 아래 ‘대화와 타협’(정치 분야), ‘투명과 공정’(경제 분야), ‘분권과 자율’(정부와 사회)이라는 4대 국정원리는 지금 봐도 민주주의의 기본얼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하나만 보태면 된다. 국민, 즉 사람의 절반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특별히 자각하는 것. 내 아이의 미래는 다른 아이들에게 달렸으며 그 다른 아이들을 아들과 딸로 차별할 수 없다는 각성이야말로 미래세대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