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분데스리가에 불어닥친 ‘축구 한류’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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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1, 2부에 한국 선수 12명…조현우 등 추가 이적설도

독일 분데스리가는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의 벽을 넘지 못하던 1970년대부터 유럽파 탄생의 전초기지였다. 1979년 차범근이 입성하며 아시아 축구에 대한 유럽의 시선을 바꿔놨다. 이후 ‘차붐 효과’로 박종원·박상인이 합류하며 복수의 한국 선수가 뛰는 첫 무대가 됐다. 1990년대의 유일한 유럽파인 김주성도 독일에서 뛰었다.

이동국·차두리·안정환·이영표 등 2000년대 국가대표 핵심 선수들도 거쳐간 무대다.이어 2010년 함부르크 유스팀에서 승격한 만 18세의 손흥민이 맹활약을 시작하며 새 전기를 맞았다. 차범근 이후 다시 한번 리그 정상급 선수가 등장하자 분데스리가의 많은 팀들이 한국 선수 영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구자철은 볼프스부르크·마인츠·아우크스부르크를 거치며 9년째 뛰는 장수 분데스리가 선수가 됐다. 지동원·박주호·홍정호·김진수 등이 그 뒤를 따랐다. 도르트문트·프랑크푸르트·레버쿠젠·함부르크 등 명문 클럽은 모두 한국 선수를 품었다. 분데스리가 최강인 바이에른 뮌헨도 유망주 정우영을 2017년 영입했다.

(왼쪽부터)정우영·권창훈·조현우 ⓒ 연합뉴스·EPA 연합
(왼쪽부터)정우영·권창훈·조현우 ⓒ 연합뉴스·EPA 연합

EPL에서 분데스리가로 옮겨가는 유럽파 무게중심

2019년 현재도 유럽파의 대세는 독일이다. 4대 빅리그 중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손흥민과 기성용,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는 이강인과 백승호, 이탈리아 세리에A에는 이승우가 있지만, 독일에는 무려 12명의 선수가 모여 있다. 6월28일 국가대표 미드필더 권창훈이 프랑스 리그1의 디종에서 분데스리가의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하며 독일파에 합세했다. 프라이부르크는 권창훈에 앞서 바이에른 뮌헨의 정우영도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바이에른은 당초 정우영을 임대 보내길 원했지만, 선수가 안정적인 성장과 경험을 바라며 바이백(정해진 금액으로 추후 다시 영입할 수 있는 조항)이 삽입된 계약으로 보냈다. 과거 차두리가 뛰었던 프라이부크르가 두 한국 선수를 데려오며 쓴 이적료는 100억원에 달한다. 지난 시즌 리그 11위를 기록했던 프라이부르크는 두 선수를 앞세워 중상위권 진입을 노린다.

올여름 유럽파와 관련한 이적 소식은 대부분 독일을 중심으로 나온다.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차지한 이강인의 거취나 손흥민과 관련한 이적설이 파급력은 크지만, 실질적으로 진행된 결과물은 분데스리가가 대세다. 지동원이 지난 5월 일찌감치 마인츠 이적으로 결정났다. 함부르크 소속의 풀백 서영재는 이재성이 속해 있는 2부 리그의 홀슈타인 킬로 옮겼다. 18세 이하 대표팀의 핵심 수비수 박규현은 2년 임대 방식으로 베르더 브레멘에 합류했다. 아우크스부르크와 계약이 끝난 구자철은 아직 새 소속팀이 결정 나지 않았지만 분데스리가 잔류가 확실시된다.

추가로 분데스리가에 합류하는 선수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가 대표적인 후보다.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골키퍼가 된 조현우는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문제를 해결하며 유럽 진출의 길을 열었다. 소속팀 대구FC도 유럽 진출 시 대승적 협조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조현우는 올 초부터 슈투트가르트의 제안을 받고 올여름 이적을 준비해 왔지만,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변수가 발생하며 이적료 등의 문제로 무산됐다. 골키퍼 보강이 필요한 분데스리가 구단들이 여전히 주시하고 있는 만큼, 조현우 측도 기초군사훈련을 해소하며 이적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U-20 월드컵에서 활약한 젊은 태극전사들의 유럽 진출 1차 목표도 분데스리가다. 대회 기간 동안 폴란드에는 28명의 분데스리가 스카우트들이 머물며 준우승을 거둔 한국 선수들의 경쟁력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은 선수들도 이강인·김정민·김현우를 쫓아 유럽으로 진출하길 원하는데, 1차 목적지는 분데스리가다. 혼혈 선수인 최민수는 올 시즌 함부르크 유스팀에서 B팀으로 승격하며 1군 진입을 노린다.

분데스리가로 유럽파의 주무대가 옮겨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선 독일은 노동허가(위크퍼밋) 규정의 벽이 잉글랜드보다 높지 않다. 영국 노동부는 2014년부터 자국 근로자 보호를 위해 워크퍼밋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축구의 경우 선수의 출신국이 FIFA 랭킹 50위 내에 들어야 하고, 해당 선수가 최근 2년 동안 일정 비율의 A매치에 출전해야 발급 조건이 충족된다. 한국은 최근 FIFA 랭킹이 상승했지만, 변동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자격 요건을 잃을 수 있다. 손흥민의 경우 2015년 여름 토트넘 이적 당시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높은 이적료와 임금으로 구단의 보증을 받아 해결한 경우다.

 

돌풍 일으킨 U-20 선수 등 추가 이적 잇따를 듯

반면 분데스리가는 이러한 워크퍼밋 발급이 어렵지 않다. 과거 한국인 광부·간호사 등 파독 근로자들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노동허가 신뢰가 높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도 없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워크퍼밋 장벽은 잉글랜드보다 낮지만 비유럽 출신 선수 보유 한도(3~6명)가 있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다. 분데스리가의 한국 네트워크가 든든한 것도 최근 선수들의 잇단 진출의 숨은 힘이다. 분데스리가는 지도자와 선수 교류를 통해 가장 먼저 아시아 네트워크를 확보한 리그다. 차범근과 오쿠데라로 대표되는 한·일 라이벌전도 촉발됐다. 각국 축구협회와 에이전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며 선수 스카우트에 가장 깊이 있는 정보와 경험을 보유했다.

리그 열기가 높고, 팀 운영 시스템이 균일한 분데스리가의 약점은 자금력이다.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경쟁 리그에 비해 이적료와 연봉이 낮아 수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진출 시 1, 2순위로 거론되지 않았다. 지난 2월에는 국가대표 미드필더 황인범이 분데스리가 팀들의 제안을 받았지만 이적료 문제로 인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의 밴쿠버 화이트캡스로 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근엔 유럽에 진출하는 선수들의 우선 고려 사항이 지속적인 출전을 통한 가치 상승으로 변하면서 1, 2부 리그를 가리지 않고 분데스리가로 향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황의조·김문환 등 유럽 진출을 타진하는 대표팀의 주력 선수들도 분데스리가를 우선 순위로 타진하는 것이 최근의 변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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