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원장’ 놓고 치킨게임 벌이는 與野…법사위가 뭐길래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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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내 ‘수퍼 상임위’…법안 막으면 본회의 못 올라가
과거 국회에서도 ‘법안 갑질’ ‘상원’ 지적 많아

21대 국회가 결국 상임위원회 구성의 법정 시한을 넘겼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원 구성 시한인 8일까지 협상을 매듭지으려 했으나, 법제사법위원장(법사위원장)을 비롯해 핵심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번 원 구성 협상의 핵심은 법사위원장이 꼽힌다. 그동안 최근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왔지만, 이번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를 맡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야당은 이에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사위는 왜 여야의 첨예한 대립 한가운데 서게 된 것일까.

 

‘체계·자구 수정’ 넘어 ‘최종관문’ 역할

법사위는 소위 ‘슈퍼 상임위’로 불린다. 법사위는 국회 내 개별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다시 심사하고 본회의에 올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입법부인 국회에서 발의되는 모든 법안이 법사위를 통하게 되는 셈이다. 근거는 국회법 86조다. 국회법 86조는 “각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친 모든 법률안은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법안이 법사위의 손을 거칠 수 밖에 없게 되면서 사실상 법사위는 ‘상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법사위에는 2개의 소위원회가 있다. 제1소위는 사법제도와 관련된 고유 정책 및 법률 자체에 관한 법안을 다룬다. 법무부나 법제처,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원과 관련된 안건이 여기에 해당된다. 제2소위는 타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의 위헌 여부 및 체계·자구 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국회법상 규정하고 있는 ‘체계·자구 심사’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국회법상 취지는 타 법안과의 충돌 가능성이나 잘못된 문구를 바로잡는 수정의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하지만 실상은 법사위 내 여야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라도 법사위에서 멈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 상임위에서 숱한 논의를 거쳐 통과하더라도 본회의 표결조차 못가는 경우가 생긴다.

여야의 대치가 심할수록 법안통과율이 낮아지는 것도 ‘법사위 문턱’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상 최악의 ‘동물국회’로 평가받는 20대 국회의 법안처리율은 36.6%를 기록했다. 역대 최저 수치다. 이전 최저 수치는 19대 국회가 기록한 41.7%다. 19대 국회는 20대 국회 이전에는 ‘최악의 국회’로 손꼽힌 바 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며 도입한 국회선진화법 등이 있었지만, 이 역시 선거법 개정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5월20일 열린 20대 국회 마지막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연합뉴스
5월20일 열린 20대 국회 마지막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연합뉴스

과거 국회서부터 반복돼 온 ‘법사위 논란’

여당인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차지하려 하는 것도 이처럼 법사위가 ‘게이트(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발목잡기’에 각종 개혁과제가 지지부진했다는 인식이 있다. 그 중심으로 법사위가 지목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권 후반기이긴 하지만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다. 코로나19 후속 정책 관련 입법도 속도감이 필요하다. 국정운영을 위해서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법사위원장마저 가지게 될 경우 사실상 ‘국회 폭정’을 펼치게 된다는 입장이다. 관례상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간 것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살리기 위한 취지라는 것이다.

법사위가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며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2014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새누리당(당시 여당) 의원들은 법사위에서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국회에서 길목을 막고 행패를 부리는 동네 양아치 같은 짓이 뻔뻔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보다 한 해 전인 2013년에는 민주당 정무위원회 위원들이 같은당 박영선 당시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정무위를 통과한 ‘FIU법안(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이용법 개정안)’이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수정됐기 때문이다. 당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정무위에서 오래 숙성시켜 법안을 잘 만들었는데 법사위가 내용을 바꿔 가져오면 어쩌자는 거냐”며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들은 껍데기냐”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도 법사위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인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각 상임위가 한국당과의 합의 없이 처리한 법안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허용되는 한 해당 상임위로 다시 회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여 위원장이 밝힌 것은 명백히 법사위 심사 권한 밖의 일이며, 일하는 의원들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위헌·위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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