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위탁가정)보다도 못했던 ‘인면수심’의 부모
  • 경남 창녕/ 이상욱 부산경남취재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3 14: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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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창녕 9세 여아 아동학대 탈출부터 쉼터 보호까지…주민 "말문이 막힌다"

지난 5월29일 오전 10시쯤 경남 창녕군 대합면 십이리의 한 빌라. 9살 A양은 맨발로 거주지인 4층 베란다에서 경사진 지붕을 넘어 옆집으로 갔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목줄이 채워지지 않았다. 부모가 없는 틈을 타 옆집에 들어간 A양은 컵라면 등으로 주린 배를 채운 뒤 계단으로 나가 물탱크가 설치된 공간에 숨었다. 5~6시간을 그곳에서 숨죽이던 A양은 부모에게 들키지 않게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빌라 담벼락 옆에 서 있었다.

이날 오후 5시쯤 대구 달성군에 사는 40대 주부 송아무개씨는 A양을 발견했다. 그는 대합면에서 일하는 자신의 아버지 부탁을 받아 반려견에게 먹이를 주고 대구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송씨가 "네 여기서 뭐 하노?"라고 묻자 A양은 "배가 고파서 슈퍼에 간다"고 했다. 송씨는 주저하는 A양을 차에 태우고 1㎞가량 떨어진 편의점으로 데리고 갔다.

송씨는 A양에게 먹고 싶은 것을 사라고 했다. 송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A양은 도시락부터 빵, 우유, 과자 등을 연신 먹었다. 그러기를 20~30분. A양은 송씨에게 "동생들이 잘못해도 내가 혼나 억울하다" "아파트 발코니에 갇혀 있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었고, 물을 안 주면 베란다 구정물을 마셨다" "아빠가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왼손바닥을 지졌다"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등의 믿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9살 여아, 4층 베란다로 목숨을 건 탈출

심각한 상황이었다. 송씨는 A양을 데리고 승용차로 20분 거리의 창녕경찰서로 곧장 향했다. 오후 6시20분쯤부터 경찰 조사가 진행됐다. A양은 2시간에 걸친 조사에서 계부(35)와 친모(27)로부터 당한 학대를 진술했다.

분홍색 잠옷 바지와 회색 티셔츠를 입은 A양은 먼지와 흙투성이였다. 폭행당한 흔적도 뚜렷했다. 양쪽 눈 주위에는 피멍이 남아 있었고, 수포가 생긴 왼손바닥은 부어 있었다. A양은 "큰아빠, 큰엄마한테 가고 싶다"고 했다. '큰아빠, 큰엄마'는 실제 친척이 아닌, 친모가 의붓동생을 출산한 2015년 당시 만 4살이던 A양을 2년간 위탁해 맡았던 경남 창녕군 고암면의 한 부부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계부와 친모가 너무도 무서웠던 것이다.

창녕 아동학대 계부(모자 착용)가 15일 오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창녕 아동학대 계부(모자 착용)가 6월15일 오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A양은 친모와 계부가 재혼한 2017년부터 거제에서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올해 1월 창녕으로 이사를 왔다. A양은 친모와 계부 사이에서 태어난 이부형제(異父兄弟) 3명(6세, 5세, 태어난 지 100일이 안 된 영아 등)과 달리 복층 다락방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학대는 화장실과 테라스 등에서 주로 이뤄졌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최근 A양이 부모로부터 당한 학대 정황을 발표했다. 6월2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밝힌 A양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A양은 자신의 집에서 빠져나오기 전 이틀가량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 테라스에 갇혀 있었다. 계부와 친모는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갈 때만 쇠사슬을 풀어줬다.

A양이 당한 학대는 참혹했다. 계부와 친모는 유리창을 닫으며 A양을 감금했다. 하루에 한 끼만 밥을 주는 등 굶기기도 했다. 물을 받은 욕조에 얼굴을 담가 숨을 못 쉬게 했다. 쇠파이프로 옴몸과 종아리를 때렸다. 또 계부는 프라이팬으로 A양의 손가락을 지졌다. 빨래건조대로 폭행을 가했다. 친모는 글루건을 발등에 쏘는 한편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A양의 발바닥을 지져 화상을 입혔다.

경찰 관계자는 "A양의 탈출 당시 몸 상태에 대해 의료기관 소견을 받았을 때 몸에서 다수 골절이 확인되고 심한 빈혈을 앓고 있었다. 등과 목에 상처가 나 있으며, 눈 부위에 멍 자국과 손과 발이 심하게 부어 있고 화상 흔적이 있었다"며 "A양의 신체 손상이 상습적인 학대 때문이라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고 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계부의 차량에서 쇠사슬과 자물쇠, 집에서 프라이팬과 글루건·쇠막대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집에서 쇠사슬·쇠막대·글루건 등 증거물 압수

경찰은 6월4일 계부를 경찰서로 불러 1차 조사했다. 그는 당시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몇 대 때리거나 혼을 낸 적이 있다"고 했다. 단지 훈육일 뿐 학대 행위는 없었다고 부인한 것이다. 친모에 대한 경찰 조사는 미뤄졌다. 3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가정을 방문해 다른 자녀들에 대한 학대 정황을 관찰할 때 친모가 심리적 충격을 호소하면서다. 하지만 경찰은 A양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A양 부모를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후 경찰은 11일 계부와 친모를 추가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전날 법원이 A양의 동생 3명에 대한 임시보호명령을 집행할 때, 계부와 친모가 자해하는 등 소동을 빚으며 긴급 입원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조사가 늦춰졌다.

시간이 흐르자 경찰은 계부가 출석요구에 불응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13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계부의 신병을 확보했다. 2차 조사도 이어갔다. 이때 계부는 1차 조사 때와는 달리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사실이라 혐의 내용을 말할 수 없다"며 "다만 경미한 학대 행위에 대해서는 대부분 시인했다. 하지만 쇠사슬로 목을 묶어 감금했다는 등 정도가 심한 학대는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특수상해 혐의를 추가해 계부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다음 날 법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친모도 계부와 함께 조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신병력 관련 정밀진단이 필요하다는 의사소견이 나오면서 친모는 현재 병원에 2주간 행정입원을 했다. 뒤늦게 친모를 정밀진단한 전문의 2명이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소견을 내면서 경찰은 친모를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A양이 친모한테도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며 "병원에 수사관을 보내 친모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계부와 친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9세 여아가 탈출한 경남 창녕군 대합면 십이리의 한 빌라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계부와 친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9세 여아가 탈출한 경남 창녕군 대합면 십이리의 한 빌라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친모 "쇠사슬 목에 채운 것, 강아지 놀이" 해명

A양에 대한 학대뿐만 아니라 계부와 친모가 벌인 행각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계부와 친모는 A양을 학대하면서 지자체의 각종 양육 수당을 챙겼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거제에서 창녕으로 이사 온 뒤 계부는 셋째 아이부터 1000만원을 지급하는 창녕군의 출산장려금을 신청했다. 각종 양육수당도 매달 100만원 남짓 받았다. A양의 집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이 소식에 "인면수심 그 자체다. 말문이 막힌다"고 비난했다.

또 친모는 A양을 쇠사슬에 묶은 행동에 대해 "강아지 놀이를 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 학대 모습은 A양의 이부동생 3명도 지켜봤다. 대합면 농협 앞에서 만난 동네 주민 조아무개씨는 "부모가 어찌 그럴 수 있나"라며 "도저히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개탄했다.

A양은 병원에서 2주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해 현재 학대피해아동쉼터에 머물고 있다. 쉼터 관계자는 "A양이 현재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며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옷이나 인형 등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고 했다. A양은 쉼터에서 또래 언니를 만나 친하게 지내며 위안을 얻고 있다. 또 쉼터 관계자는 "얼굴과 몸 곳곳에 난 타박상은 대부분 나았지만, 손과 발의 화상은 흉터가 남아 치료가 필요하다"며 "내면의 상처도 앞으로 더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아동보호기관은 A양의 심리검사 이후 놀이치료 등 심리치료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A양은 법원의 임시보호명령에 따라 쉼터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향후 정식보호명령이 내려지면, 법원 판단에 따라 성인이 되는 만 18세까지 시설에서 지낼 수 있다. A양은 쉼터에서 머물다가 가정위탁이나 그룹홈 등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법원의 임시보호명령에 의해 부모로부터 분리된 동생 3명도 다른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은 신체 학대 정황은 없지만, 학대를 본 탓에 심리치료가 예정돼 있다. 창녕읍에서 만난 한 창녕 지역 신문기자는 "마음의 상처를 우선 치유해야 한다"며 "이웃의 따뜻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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