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의 속내는 K배터리 동맹? 현대차 이익?
  • 김도현 시사저널e. 기자 (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20.06.26 14: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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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구광모 이어 최태원 만남 추진···재계 1~4위 ‘배터리 어벤져스’ 전망도

재계 1~4위 총수들의 잇따른 만남이 주목받고 있다. 구심점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다.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6월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차례로 조우했다. 7월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만남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총수 회동의 연결고리는 배터리다. 앞서 두 차례의 만남에서 정 부회장은 삼성SDI 천안사업장과 LG화학 오창공장을 각각 방문했다. 삼성·LG의 배터리 국내 생산기지가 위치한 곳이다. 정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만남이 성사될 경우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에서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대기업 간 협력이 그동안 드물었다고 볼 순 없으나 전문경영인(CEO) 또는 실무진이 아닌 총수가 직접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유일의 완성차 업계 수장인 정 부회장이 ‘포스트 반도체’라 일컬어지는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은 국내 빅3 업체 수장들과 잇따라 자리한다는 점에서 그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연합뉴스

총수가 전면에 나선 실무 협상, 이례적

일각에서는 내연차에서 전기차로 변화하는 완성차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춰 국내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계가 손을 잡는 이른바 ‘K배터리 어벤져스’가 구성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과 함께 1000억원대 규모의 ‘차세대 배터리 펀드 결성과 공동 연구개발(R&D)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어 연합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전기차·배터리 분야의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현대차에 총대를 맡긴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최근 대규모 전기차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고, 배터리 업계가 한·중·일 3국 중심의 ‘3강 4중’ 체제로 개편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재계 1~4위가 모두 연계돼 있어 높은 기대감을 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해당 업체들은 “과장된 해석이다”고 선을 긋는다. 현대차가 개별 배터리 기업들과의 관계를 좀 더 굳건히 다지려는 목적임엔 틀림없으나, 연속 회동을 바탕으로 경쟁사인 배터리 업체들이 손을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정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것에는 큰 의미를 부여했으나, 이를 제외하면 완성차 업계의 흔한 모습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EV세일즈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 전기차 판매 4위를 기록했다. 1~3위는 테슬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폭스바겐그룹 등이 차지했다. 테슬라는 당초 일본의 파나소닉으로부터 배터리를 독점적으로 공급받았으나, 최근에는 LG화학, 중국의 CATL 등으로부터도 공급받고 있다. 로느-닛산 측도 LG화학 및 일본 AESC 등과 거래 중이다.

폭스바겐·아우디·벤틀리·람보르기니·포르쉐·부가티 등 다양한 브랜드 라인업을 보유하고, 글로벌 완성차 판매 1위를 유지 중인 폭스바겐그룹은 향후 10년 동안 100여 종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에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3사 및 중국 CATL 등과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아울러 스웨덴의 노스볼트와 합작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배터리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움직임은 이미 완성차 업계의 트렌드다. 특정 배터리 업체와 합작사를 설립하더라도 복수의 배터리 공급망만큼은 유지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련의 회동은) 정의선 부회장과 현대차 중심으로 해석해야지, 배터리 업계 전반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현재 거래하는 LG화학·SK이노베이션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삼성과도 협력할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공급사들 간 경쟁을 유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배터리 공급가격을 낮추기 위함이 목적일 것”이라며 “배터리 업체들 간 연대를 가장 꺼릴 수밖에 없는 게 정의선 부회장과 현대차그룹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다. 내연차로 따지면 엔진에 해당한다. 가격도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한다. 하중도 상당해 주요 기업들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도 최근 최초 자체 전기차 플랫폼 E-GMP를 선보였다. 초도 배터리 공급사로는 SK이노베이션을, 2차 배터리 공급사로는 LG화학을 낙점한 바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수소차 및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플라잉카 등의 상용화를 추진 중”이라면서 “배터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만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친환경 자동차 박람회에서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가 전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친환경 자동차 박람회에서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가 전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쟁 부추겨 비용 절감 노렸나

이 관계자는 이어 “포스트 반도체라 불리는 만큼, 현재 배터리 시장은 초기 반도체 시장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면서 “치열한 치킨게임을 거쳐 최근에는 ‘3강 4중’ 체제로 개편되는데, 국내 반도체 시장의 버팀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손잡지 않는 것처럼 국내 배터리 업계도 국경 없는 국제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업체들일 뿐”이라고 시사했다.

실제 배터리 업계 내부에서 그동안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 관계도 적지 않았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현재 기밀유출·특허침해 등의 이슈를 놓고 한·미 양국 법정에서 치열한 소송전을 전개 중이다. 올 4월까지 글로벌 점유율 1위를 기록한 LG화학은 CATL·파나소닉 등과 3강으로 분류된다.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은 4중에 포함됐다. 후발주자로 꼽히는 SK이노베이션이 최근 점유율을 높이며 삼성SDI를 턱밑까지 추적하면서 신(新)경쟁체제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편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오는 2030년까지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분야다. 2030년까지 현재의 9배까지 시장이 커질 것으로 진단된다. 시장 성장에 대비해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그간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느라 실익을 거두지 못했지만, 향후 1년 새 흑자전환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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