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다선’ 밀어내고 통합당 주류로 떠오른 ‘새내기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6.30 10: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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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與 강경론 주도…김종인·주호영 대표도 초선에 의지

“라떼(나 때)는 말이야 초선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는데….”

미래통합당 초선 A의원은 최근 의원총회가 끝나고 회의장을 나가면서 한 선배 의원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A의원이 기자에게 들려준 이 에피소드는 이른바 ‘꼰대 말투’를 빌린 우스갯소리였다. 그러나 A의원은 “뼈 있는 농담으로, 실제 당내 ‘초선 퍼스트(first)’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의총에서 초선 의원들의 발언이 더 많아지고 있다”며 “월드컵으로 치면 5대0으로 참패한 경기 뒤에, 주전들은 벤치로 밀리고 후보들이 그라운드에 나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 의원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선 의원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심만리’ ‘명불허전 보수다’로 뭉친 초선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방 사찰에 칩거 중이던 지난 6월2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18개 상임위원장직 모두를 포기하겠다. 이는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초선 의원들의 뜻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당 대표인 김 위원장과 함께 초선 의원을 나란히 거론했다. 김 위원장 또한 취임하자마자 초선 의원들과 활발한 모임을 갖고 있다.  

과거 국회, 그중에서도 특히 보수정당에서 ‘다선(多選)’은 곧 권력이었다. 그러나 21대 국회 들어 통합당 내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를 당하고 21대 국회 주도권을 여당에 넘겨준 통합당 선배 의원들의 ‘권위’가 크게 떨어져서다. 반면에 당내 절반 이상을 차지한 통합당 초선 의원들의 발언권은 ‘역대급’으로 세졌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실제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초선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통합당의 주요 결정 사항과 방향을 초선그룹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통합당의 ‘몸통’은 초선 의원이다. 그만큼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통합당 의원 103명 중 절반 이상인 58명(56.3%)이 이번 총선에서 처음 금배지를 단 ‘국회 새내기’다. 4년 전 20대 국회, 통합당 전신 새누리당 시절에는 초선 의원이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선들 간 교류도 더 활발해졌다. 선배 의원보다는 동기 의원들끼리 마주칠 일이 더 잦아졌다. 선배들에게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동기들끼리 모여 일종의 ‘정치 스터디그룹’을 만들기도 한다. 기성 정치권과의 차별화 분위기마저 풍겨 나온다. 현재 통합당 초선 의원들은 ‘초심만리’ ‘명불허전 보수다’ 등 공부 모임을 꾸리고 정기 세미나를 여는 등 당 쇄신안을 수시로 논의하고 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모임은 ‘초심만리’다. 초심만리는 ‘처음 가졌던 초심을 끝까지 가져가자’는 취지로 만든 통합당 초선 의원들의 모임이다. 2022년 대선 승리를 위해 당 쇄신과 정치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 모임의 기치다. 매주 화요일 오전 7시30분 조찬모임을 통해 현안 토론과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전주혜·박수영·황보승희·이용 의원 등이 주요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시사저널과 만난 황보승희 의원은 “외부에서 (통합당에) 주는 기대나 동기부여가 없지만, 초선 의원들끼리는 잘해 보자며 의기투합 중”이라며 “좀 더 친서민적이고 국민 전체와 함께 갈 수 있는 상식적이고 품격을 지키는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초선으로서 혁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명불허전 보수다’는 통합되기 전 미래한국당 출신들이 주축이 된 초선 의원 모임이다. 허은아 의원이 간사를 맡고 있고, 매주 수요일 아침에 모여 공개 강연 등을 진행한다. 주로 원외 보수 원로들을 초빙해 강연을 여는데, 통합당 4·15 총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정병국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연사로 나서 보수당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강연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통합당 초선 의원 그룹을 ‘새내기 정치인’으로 분류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초선 의원 중 상당수가 이종 업계가 아닌 정치권에서 활동한 ‘프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전체 58명의 초선 당선인 중 11명이 기초·광역단체 지방의원 경력을 갖고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과 당직자 출신도 10명이다. 정치의 생리(生理)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새내기들이 포진하다 보니, 통합당 초선의 정치활동도 탄력을 받고 있다는것이다.

6월23일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모임 ‘초심만리’에서 조찬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6월23일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 모임 ‘초심만리’에서 조찬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지도부 ‘뒤’ 아닌 ‘옆’에서 목소리 내

힘이 세진 통합당 초선들은 당내 대여(對與) 강경론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앞서 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과정, 원내대표 선거 등 당내 혁신과 관련된 사안에 수차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최근 법사위원장을 두고 여야 대치가 격화되는 상황에서, ‘총대’를 메고 전면에 나선 것도 통합당 초선들이었다.

통합당 초선들은 6월15일 성명서를 내고 “국회 상임위원장 인선을 포함한 원 구성은 역대로 여야 합의의 대원칙이 지켜졌다”며 “거대 여당이 법사위라는 국회의 균형과 견제 장치까지 빼앗는다면 국회는 청와대의 뜻을 알아서 받드는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여당이 제시한 11대 7의 상임위원장 배분을 받지 말고 18개 상임위원장 전부를 포기하자는 당내 강경 목소리를 주도한 것도 초선 그룹이다. 초선의 강경한 입장에 내심 상임위원장을 기대하고 있던 3선 이상 다선 의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당 지도부도 수시로 초선 의원들과 만남을 갖고, 당내 쇄신안 및 현안 등을 두고 의견을 구하고 있다. 지난 6월19일에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초선 의원들과 당 개편 방향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오는 7월7일 황보승희·서범수 의원과 ‘당원 중 2030세대 비율을 늘리기 위한 방안’ 등을 두고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상임위 배정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자, 가장 먼저 주 대표의 ‘컴백’을 요구한 것도 초선 그룹이었다. 지난 6월21일 박형수·이용 의원 등 통합당 초선 의원 4명은 충북 보은의 법주사를 찾아와 ‘원 구성 협상 실패는 주 원내대표의 책임이 아니다. 사의 표명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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