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들의 홍콩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3 16:00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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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보안법’ 소급 적용 가능성 대두
홍콩 민주파 인사 ‘줄 망명’ 이어질 수도

6월30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홍콩 국가보안법(香港國家安全法)’이 통과됐다. 중국에서 법률은 기본적으로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3차례 이상 심의를 거친다. 상무위원회는 보통 두 달에 한 번 개최된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거쳐 법안이 통과되려면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홍콩보안법은 5월 하순 전인대 전체회의에서 초안이 통과됐다. 통과 직후 열린 상무위원회는 심의만 했을 뿐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회기에는 심의부터 투표까지 12일 만에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렇게 홍콩보안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된 날 홍콩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성명을 통해 “홍콩 정부는 전인대의 홍콩보안법 통과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홍콩보안법은 홍콩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제정됐고, 홍콩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며 “법률 시행으로 지난 1년 동안 홍콩을 괴롭힌 사회적인 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콩 정부는 신속하게 홍콩보안법을 헌법 격인 홍콩특별자치구기본법 부칙 3조에 삽입했다. 또한 중국은 홍콩보안법에 따라 신설되는 국가안보수호공서 수장에 강경파인 정옌슝(鄭雁雄)을 임명했다.

7월1일 홍콩특별행정구 설치 23주년을 맞아 홍콩보안법 반대 집회 도중 경찰이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EPA 연합
7월1일 홍콩특별행정구 설치 23주년을 맞아 홍콩보안법 반대 집회 도중 경찰이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EPA 연합

홍콩보안법 통과 후 민주단체 줄줄이 해산

홍콩 민주파 진영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홍콩보안법이 통과되자마자, 7개 단체가 잇달아 해산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양대 정치세력 단체가 같은 날 동시에 해산해 큰 충격을 주었다. 먼저 홍콩 민주화운동의 주역 중 한 명인 조슈아 웡(黃之鋒)이 이끄는 ‘데모시스토(香港衆志)’가 해산을 선언했다. 데모시스토는 우산혁명의 주류세력이 2016년 4월 결성한 정당이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 아래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홍콩의 정치적 미래를 시민투표로 결정 등의 강령을 내걸어 왔다.

그들보다 훨씬 급진적인 비주류세력은 2016년 3월에 ‘홍콩민족당’을 창당했다. 홍콩민족당은 ‘홍콩 독립’을 강령으로 명확히 내걸었다. 그를 위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홍콩공화국 수립 △불법적인 홍콩기본법 폐지 △홍콩 주민에 의한 자주헌법 제정 등 5가지 과제를 내세웠다. 이런 정치 노선은 중국 정부의 일국양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2018년 9월 홍콩 정부로부터 정당 해산을 당했다. 그 뒤 비주류는 ‘홍콩민족전선’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해외지부만 남겨둔 채 홍콩본부는 해체하고 모든 조직원은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기간 학생들을 조직해 이끌었던 ‘학생동원(學生動源)’도 홍콩본부를 해체하고 해외에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홍콩 정부의 정무사장(총리)을 역임한 뒤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안손 찬(陳方安生)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안손 찬은 ‘철의 여인’ ‘홍콩의 양심’이라 불리며 홍콩 시민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그 밖에 홍콩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을 국제사회에 고발했던 ‘국제사무대표단’이 해체를 발표했다. 홍콩 독립을 지향했던 ‘홍콩독립연맹’, ‘빅토리아사회협회’ 등도 해산을 선언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데모시스토의 초대 주석을 맡았던 네이선 로(羅冠聰)가 해외 망명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네이선 로는 2014년 ‘전상학생연합회(學聯)’ 상임위원을 맡아 우산혁명을 주도했던 주역 중 한 명이다. 이듬해에는 학련 사무국장에 당선되면서 학생운동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이듬해 조슈아 웡, 아그네스 차우(周庭) 등과 함께 데모시스토를 창당했다. 창당 당시 조슈아 웡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네이선 로와 아그네스 차우가 정당을 이끌었다. 아그네스 차우는 우산혁명 기간 학생들 사이에서 ‘학민여신(學民女神)’이라고 불렸던 여성 투사다.

2016년 5월 네이선 로, 아그네스 차우, 조슈아 웡 등의 행적과 생각을 그대로 방송했던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일본 NHK가 그해 2월 몽콕(旺角) 시위를 시작으로 홍콩민족당과 데모시스토의 창당 과정을 그린 《우산혁명 이후 홍콩 젊은이들은 어디로?》였다. 몽콕 시위는 어묵을 파는 노점상을 정부가 단속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력사태다. 금세기 들어 시위대가 과격화 양상을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국 시위로 130여 명이 부상했고, 54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운동 비주류세력은 여세를 몰아 홍콩민족당을 창당했다.

그들과 달리 폭력과 과격한 독립노선에 반대했던 주류세력은 데모시스토로 집결했다. 네이선 로는 그해 9월 열렸던 홍콩입법회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를 득표해 사상 최연소로 당선됐다. 그러나 2017년 7월 홍콩 고등법원은 네이선 로가 의회에서 행한 의원 선서가 무효라면서 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네이선 로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제3국으로 왔다”며 “민주파 인사의 절반이 홍콩을 떠나 대만·캐나다 등 외국으로 나갔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SNS를 통해 홍콩의 동료들과 긴밀히 연락하고 있다”면서 “여기서 민주화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조슈아 웡은 홍콩에 남아 투쟁하기로 결정했지만, 아그네스 차우도 연고가 있는 영국으로 망명을 도모하고 있다. 다만 두 명은 모두 불법집회 조직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라서 출국이 금지됐다.

ⓒEPA·AP 연합
ⓒEPA·AP 연합

중국 수사망 압박에 ‘망명’ 고려

그렇다면 홍콩 민주파 인사들은 왜 홍콩을 떠나 망명길을 택한 것일까? 그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홍콩보안법의 내용과 최근 홍콩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홍콩보안법은 6장 66조항으로 구성되었다. 법률은 △국가 분열죄 △국가정권 전복죄 △테러 활동죄 △외국 세력과 결탁해 국가안전을 위해한 죄를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조항을 분석해 보면, 처벌 대상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홍콩 영주권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법 적용이 가능하다. 또한 안보수호공서는 수사만 할 뿐, 기소와 재판은 중국의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이 지정한 기관이 맡도록 했다. 따라서 피의자는 중국으로 인도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안보수호공서의 관할권도 중앙정부가 가지기에, 수장을 중국이 임명했다. 즉, 중국 마음대로 수사와 재판을 좌우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홍콩 일각에서는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소급 적용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인해 법률 통과 직후 홍콩에서는 체포될 가능성이 높은 민주파 인사 54명의 명단을 담은 블랙리스트가 나돌았다. 그중 두 명이 네이선 로와 조슈아 웡이었다. 물론 중국이 그들을 바로 체포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법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그들의 활동을 옥죄게 되었다. 홍콩 정부는 조슈아 웡, 친완(陳雲), 탄야 찬(陳淑莊) 등의 저서가 홍콩보안법을 위반했는지 심사한다면서 대출을 금지했다. 따라서 적지 않은 민주파 인사의 망명은 우선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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