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 정부, 사회적 약자보다 사업주 감쌌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5 14:00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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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8%→87%…文정부서 노동법 위반 사업장 적발 비율 증가
같은 기간 법적 처분은 9%→5%→2%로 오히려 감소
솜방망이 처벌일까, 법 지키지 못할 노동환경 탓일까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 계통에서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의류 계통에서 종사하는 어린 여공들은 평균 연령이 18세입니다. 기업주들은 많은 폭리를 취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생산공들의 피와 땀을 갈취합니다. 그런데 왜 현 사회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지 저의 좁은 소견은 알지를 못 합니다. 존경하는 근로감독관님. 이 모든 문제를 한시바삐 선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전태일 열사가 1969년 12월19일 ‘근로감독관’에게 남긴 편지 형태의 진정서 일부다. 여공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진정서를 서울특별시 근로감독관실에 제출했지만 심사도 받지 못했다.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썼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렇게 전태일 열사는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숨졌다. 

5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2020년 대한민국은 또 다른 청년 전태일들의 외침에 제대로 응답하고 있을까.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핵심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는 어떨까. 시사저널은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로부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요청한 자료의 근로감독 대상은 여성과 청소년, 외국인, 장애인 등 4대 노동권 취약 계층을 고용한 업체에 한정했다. 우리 사회가 가장 앞서 껴안아야 할 사회적 약자가 이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근로감독을 실시해 국회에 제출했던 자료와도 비교분석했다.

지난해 4대 노동권 취약 계층을 고용한 업체 10곳 중 9곳가량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위반해 정부 당국에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에 노동부는 여성과 청소년, 외국인, 장애인 등을 고용한 사업장 1만4017개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는데, 이 중 87%인 1만2148개 업체가 노동 관련법을 총 4만879건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사회적 약자 채용 기업 87%가 ‘노동법 위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장애인들을 고용한 업체들이었다. 근로감독을 실시한 201개 사업장 전부가 노동법을 어긴 것으로 조사됐다. 201개 사업장이 총 938건을 위반해 사업장 1곳당 평균적으로 노동법을 4개 이상 어기고 있었다. 여성들을 고용한 사업장은 700개가 근로감독을 받았는데 그중 683개 업체가 노동법을 어겨 98%의 위반율을 보였다. 총 3085건의 위반 건수를 기록해 역시 사업장 1곳당 노동법을 4개 이상 어긴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을 다수 고용하는 편의점, 커피전문점, PC방 등은 1만53개 사업장이 근로감독을 받았는데 이 중 9592곳(95%)이 문제가 됐다. 이들 업체는 노동법을 총 29961건 위반했다. 외국인을 고용한 업체는 3063개가 근로감독을 받았고 이 중 1672곳(55%)이 적발돼 상대적으로 낮은 위반율을 보였다. 노동법을 총 6895건 위반했다.

통계를 보면 문재인 정부는 사업장을 근로감독하는 데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만845개, 2018년 1만1179개, 2019년 1만4017개로 매년 꾸준히 근로감독 점검 대상을 늘려왔다. 지난해에 근로감독을 실시한 업체 1만4017개는 2015년 1만2848개, 2016년 1만2629개 등 지난 정부 때보다 10%가량 늘어난 수치일 뿐만 아니라 최근 10년간 가장 많다. 

노동법 위반 업체 적발 비율도 현 정부 들어 크게 높아졌다. 2017년 72%, 2018년 78%, 2019년 87%로 매년 꾸준히 상승했다. 2015년 47%, 2016년 66%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오른 셈이다. 이 통계는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더 강한 의지를 갖고 근로감독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혹은 현 정부 들어 4대 노동권 취약 계층을 고용한 업체들이 노동법을 더 많이 어겼을 수 있다. 후자라고 해석한다면, 그 원인에 대한 의견도 갈릴 수 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그만큼 한계기업이 많아졌다고 볼 수도 있고,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등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현실과 괴리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난 10년간 통계를 보면 적발 비율이 가장 높았던 기간은 이명박 정부 때였다. 적발 비율은 2010년 92.5%, 2011년 91.7%, 2012년 94.9%로 매우 높았다. 반면에 박근혜 정부 때는 적발 비율이 꾸준히 낮아졌다. 2013년 89.1%, 2014년 77.6%, 2015년 47%, 2016년 66%로 크게 하락했다. 

4대 노동권 취약 계층을 고용한 사업장 중 지난 10년간 가장 적발 비율이 높은 곳은 장애인 채용 업체들이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단 한 차례도 적발 비율이 8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여성을 고용한 업체들도 지난 10년간 계속 70% 이상이 노동법을 어겨 적발됐다. 

왜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을까. 법 위반 업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정부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에 적발된 위반 건수 4만879건 중 시정조치된 비율은 98%(3만9931건)에 달했다. 시정조치란 사업주가 즉각 문제를 시정하면 별다른 추가 제재 없이 사건을 종료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 임금체불이나 불법파견에 대해 바로 수사의 칼날부터 들이대면 정작 노동자들이 권리를 구제받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노동부는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서 먼저 사업주에게 시정 기회를 준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그때 가서 과태료와 사법처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기업 입장에서는 ‘걸리면 시정하기’ 전략이 합리적”이라면서 “법을 어긴 사업주들에게 너무 무르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 이런 시정조치 관행 때문에 지난 한 해 노동법을 위반한 사업주 대부분이 사법처리나 과태료 처분을 피할 수 있었다. 지난해 사법처리나 과태료 처분을 당한 비율은 2%(796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과거보다는 진일보했다. 노동부가 2015년 당시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법적·행정적 처분을 받은 비율은 0.1%에 불과했다. 2011년 0.1%, 2012년 0.2%, 2013년 0.3%, 2014년 1.9% 등 처벌 비율은 매우 낮았다. 

여기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지난 10년간 근로감독 통계를 보면, 과태료와 사법처리 등 강한 처벌을 했던 해에 노동법 위반 업체 적발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법적·행정적 처분 비율은 2015년 5%, 2016년 9%로 크게 높아졌는데 당시 적발 비율은 각각 47%, 66%로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2014년 법적·행정적 처분 비율은 1.9%였는데 당시 적발 비율은 77.6%로 2013년 89.1%(법적·행정적 처분 비율 0.3%)보다 크게 낮았다. 정부가 강하게 처벌할수록 노동법 준수 비율이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법 위반 판쳐도 처벌은 고작 2%

문제는 이런 흐름이 문재인 정부에서 꺾였다는 데 있다. 법적·행정적 처분 비율은 2017년 9%, 2018년 5%, 2019년 2%로 큰 폭으로 계속 하락해 왔다. 반면 위반 업체 비율은 72%, 78%, 87%로 높아졌다.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 계속 법을 어기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대의 해석도 있다. 정부가 기업들이 애초에 지킬 수 없는 노동환경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노동법 위반 업체를 적발은 하되 처벌하지 않는 기조를 택했다는 것이다. 추경호 의원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현장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지킬 수도 없는 무리한 정책추진으로 근로자의 근로여건도 개선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앞으로 고용정책의 형해화(形骸化·내용은 없이 뼈대만 있게 된다는 뜻)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 전문가로 평가받는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현 정부가 추진한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해 사업장에서 적잖은 부담을 가졌던 만큼 노동부가 ‘처벌’보다는 ‘계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 교수는 “노동법을 잘 몰라 문제가 되는 사업장도 많은 만큼 무조건적인 처벌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제도의 허점을 노려 의도적으로 법을 회피하는 업체들은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관련해서 시사저널은 노동부 담당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당시 근로감독관에게 보냈던 호소는 지금 그대로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 외벽에 새겨져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전태일 열사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당시 근로감독관에게 보냈던 호소는 지금 그대로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 외벽에 새겨져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전태일 열사가 근로감독관에게 보냈던 호소는 그 필체 그대로 한 자도 빠짐없이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전태일 기념관’ 외벽에 새겨져 있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즉,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힘이 큰 것입니다.” 그가 근로감독관에게, 대통령에게 하고자 했던 질문은 2020년 오늘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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