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사망에 갈라진 여론…“서울시장(葬) 안돼” 국민청원 37만 넘어
  • 이혜영 객원기자 (applekroop@naver.com)
  • 승인 2020.07.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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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도 신중 모드…민주당 “추모 먼저”
통합당·정의당 “성추행 피해자 고통 헤아려야”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11일 오전 11시30분 기준 37만 명 넘는 동의를 얻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이 11일 오전 11시30분 기준 37만 명 넘는 동의를 얻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 형식으로 치르는 것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하루만에 37만 명을 넘어섰다. 고인에 대한 장례 절차와 조문 방식을 둘러싼 여론의 찬반이 뜨거운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11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날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이날 오전 11시30분 기준 37만57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박원순 시장이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됐다"며 "성추행 의혹을 받는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는가.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앞서 서울시는 서울 북악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 시장의 장례를 사상 첫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른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해 일반 시민의 조문을 가능토록 했다.  

해당 청원이 하루 만에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훌쩍 넘어서면서 청와대는 해당 청원이 마감되는 다음달 9일부터 한 달 이내에 공식 답변을 내놓게 될 전망이다. 청와대 답변 전 장례 절차는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지만, 여론의 극심한 반발에 장례를 주관하는 서울시도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같은 상반된 분위기는 정치권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에선 지금은 고인에 대한 추모와 애도를 가질 시간이라며, 성추행 의혹과 장례 절차를 연결짓는 것에 선을 긋고 있다. 반면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을 우려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박 시장의 빈소에는 전날부터 여권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들은 황망함과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박 시장의 직원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닫거나 분노를 표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전날 박 시장의 빈소 앞에서 한 기자가 "고인에 대한 의혹이 있는데 당 차원의 대응을 할 것인가"라고 묻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는 것인가. 최소한 가릴 게 있고"라고 쏘아붙였다. 이 대표는 혼잣말로 "XX자식 같으니라고"라고 말하고서 질문이 들린 방향을 노려보기도 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성 파문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낙연 의원도 답하지 않았다. 김진표 의원은 "고인을 위해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예의다"라며 손사래를 치며 빈소를 떠났고, 이해식 의원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 시장의 최측근이자 상주 역할을 맡은 박홍근 의원은 박 시장을 둘러싼 의혹 제기를 중단할 것을 적극 호소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악의적이고 출처 불명의 글이 퍼지고 있어 고인의 명예가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며 "부디 무책임한 행위를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론 동향을 지켜보기 위해 전날 오후 예정했던 빈소 조문을 취소했다. 통합당 내에선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가 있는데 시민장을 치러 면죄부를 줘선 안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기호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시민장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여비서가 자신의 명예뿐 아니라 인생을 걸고 고발한 것은 눈 감나. 얼마나 서울시민에게 수치스럽고 비윤리적인지 고인이 더 잘 알기 때문에 자살을 택하지 않았나"라고 주장했다.

4선 권영세 의원도 "박 시장의 타계 소식은 안타깝고도 불행한 일이나 박 시장을 성추행 가해자로 고소했던 분은, 만일 그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번 일로 인해 엄청난 추가적인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권 의원은 "추모 과정에서 이분의 고통이 외면되거나 심지어 가중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현 의원도 "공무수행으로 인한 사고도 아니고 더이상 이런 극단적 선택이 면죄부처럼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했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이날 조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여러 공직에 계신 분들과 관련해 자꾸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시장님께서 돌아가신 이유를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아주 엄숙한 분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직 서울시청 직원에 대한 연대를 표하고 2차 가해를 우려하며 조문 거부 입장을 밝혔다. 같은 당 심상정 대표는 빈소 조문 후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분은 피해자"라고 언급했고, 장혜영 의원도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며 서울특별시장(葬) 결정을 비판했다.

1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 연합뉴스
1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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