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쓰리, 2020년 여름을 싹 쓸어버리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6 14: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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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코드로 탑골 뉴트로 신드롬 정점 찍어…《무한도전》의 추억 소환도 일조

최근 중장년층에게 절대적으로 호응받는 《미스터트롯》 멤버들과 함께 트렌드를 양분하고 있는 팀이 ‘싹쓰리’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 여름 특집으로 기획한 팀인데 특히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에 《놀면 뭐하니》 여름 특집은 ‘여름×댄스×혼성그룹’을 내세웠다. 1990년대 혼성 댄스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팀을 만들어 그때 스타일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놀면 뭐하니》의 중심인 유재석에 더해 비와 이효리가 합류했다. 광희도 매니저 역할로 힘을 보탠다. 바로 이 구성이 터졌다.

처음 멤버 오디션 때부터 화제의 연속이었는데, 특히 비가 나왔을 때 신드롬이 일어났다. 비가 2017년에 발표했지만 완전히 실패하고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깡》을 여기서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깡》이 역주행하면서 대세곡으로 등극하고 비도 다시금 주목받게 됐다.

싹쓰리 팀원들의 만남이 본격화되면서는 이효리가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섰다. 과거 연예대상을 받았던 시절보다 더 무르익은 예능감을 과시하며 거침없는 토크로 웃음 폭탄 역할을 해냈다. 그러자 예능감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가 뜨겁게 환영했다. 과거 이효리의 엄청났던 인기도 다시 소환됐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추억을, 몰랐던 어린 세대에겐 이효리의 스타성을 새롭게 알렸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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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깡’ 신드롬에 이효리 신드롬까지 보태져 큰 호응

한 프로그램이 하나의 신드롬만 일으켜도 대성공이다. 그런데 《놀면 뭐하니》 여름 특집은 벌써 ‘비-깡’ 신드롬, 이효리 신드롬이라는 두 개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거기에 유재석의 존재감까지 합쳐져 싹쓰리가 인터넷을 달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7월18일 첫 번째 곡인 《다시 여기 바닷가》 발표에 이어, 7월25일 《그 여름을 틀어줘》 발표와 음악 프로그램 데뷔, 8월1일 각 멤버들의 솔로곡 발표가 이어진다. 그 이후엔 유산슬의 《합정역 5번 출구》 활동 당시처럼 다양한 활동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2020년 여름은 싹쓰리가 ‘싹쓸이’할 것으로 보인다.

대중이 싹쓰리에게 이렇게 환호하는 것은 복고 코드와 연관이 있다. 싹쓰리는 대놓고 1990년대식 그룹의 댄스음악을 표방한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도중에 1990년대 자료화면이 수시로 등장한다. 듀스, 쿨, 서태지와 아이들, 핑클 등의 자료화면 다음에 싹스리 멤버들이 그 시절을 재현하는 설정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이러면서 19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중이 반응했다.

싹쓰리가 나타나기 전부터 복고 코드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복고에 요즘 감각을 더한다는 의미에서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과거 음악방송 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보는 인터넷 ‘탑골’ 현상도 생겼다. 그 과정에서 양준일이 재발견돼 데뷔 30여 년 만에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에 서울 동묘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고품 시장은 젊은이들에겐 절대적 기피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뉴트로 열풍 속에서 동묘는 ‘힙’한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된다. 동묘 지역에서 중고품을 고르는 젊은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요즘은 젊은이들이 많아져 젊은 층을 대상으로 새롭게 꾸민 업장들도 나타났다. 을지로처럼 옛날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골목의 정취도 젊은이들이 찾기 시작했다.

그러한 뉴트로 탑골 스타일의 정점이 1990년대다. 1990년대는 충분히 옛날 같으면서도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낯설게 느끼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그 접점, 경계선에 1990년대가 있는 것이다. 《놀면 뭐하니》는 바로 그 1990년대를 콕 짚었다. 그러면서 당대 최고의 스타인 유재석과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최고 스타인 이효리, 그리고 월드스타 비를 조합했다. 그러자 바로 탑골 뉴트로 신드롬의 정점에 올라설 수 있었다.

1990년대는 조선 말기 이래 우리 민족이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였다. 조선 말은 세도가들의 가렴주구에 우리 민족의 체형이 쪼그라들었다고 할 정도로 궁핍한 세월이었다. 일제시대 때는 잔혹한 수탈에 신음했다. 1950년대엔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어 미군 쓰레기를 뒤져 먹는 처지로 내몰렸다. 개발연대엔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기계처럼 일해야 했다. 정치적으론 억압에 시달렸고 문화적으론 폐쇄적이었다.

싹쓰리의 데뷔 타이틀곡 《다시 여기 바닷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싹쓰리의 데뷔 타이틀곡 《다시 여기 바닷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MBC

1990년대 소환이 전해 준 작은 행복

이런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빛을 본 것이 1990년대다. 개발연대 시기에 국민들은 언젠가는 집집마다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자가용 차를 갖춘 중산층 사회가 올 거라고 염원했다. 그게 1990년대에 이뤄졌다. 한강의 기적이 일단락됐다. 정치적으론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자유와 풍요가 우리에게 닥쳤다.

세계화도 그때 시작됐다. 서구문화가 익숙해졌고 세계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 속에서 형성된 것이 1990년대 대중문화다. 1990년대부터 나이트클럽에서 한국 가요의 전주와 팝송의 전주를 구분할 수 없게 됐다. 그 전까지는 전주만 들어도 가요와 팝송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었다.

서구문화가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오늘날까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댄스, 힙합, 리듬 앤 블루스 등 서구식 가요 장르들이 그때 탄생했다. 아이돌그룹이라는 형식도 그때 나타났다. 한국영화가 현대화된 것도 그 시절이다. 트렌디 드라마도 그때 생겼다. 디지털 통신 문화가 생긴 것도 1990년대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 입장에서도 1990년대에 이질감이 없는 것이다.

1990년대의 풍요는 외환위기로 막을 내렸다. 그 후엔 대량해고, 노동유연화, 무한경쟁, 양극화라는 불안과 상대적 결핍의 시대가 시작됐다. 절대적 수치로만 보면 점점 더 풍요로워졌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주관적으로 느끼는 삶의 질이 피폐해졌다. 1990년대까지는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턴 각 개인으로 파편화된 각박하고 삭막한 사회다. 그래서 1990년대는 따뜻한 추억이다. 1990년대 대중문화엔 그 시절의 온기가 담겼다. 원래도 답답한 시절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 더욱 답답해졌다. 웃을 일이 없다. 중장년층에게 위로가 된 것이 《미스터트롯》이었다. 싹쓰리는 1990년대 코드로 젊은 층에게 위로를 전해 줬다. 유재석, 이효리, 비가 과거를 추억하고 아련한 행복에 젖어드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도 잠시나마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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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귀환을 보는 느낌

싹쓰리는 《무한도전》의 추억도 전해 줬다. 《무한도전》은 중장년층에겐 그저 요즘 예능 중 하나 정도일 수 있지만, 젊은 세대에겐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기억이다. 20대가 《무한도전》을 떠올리며 10대 시절을 상기하는 식이다. 《무한도전》이 10여 년 만에 종영한 후 상실감을 느낀 젊은 시청자들이 많았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설정가 때문에 마치 《무한도전》의 귀환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이 시청자에게 각별한 경험이다.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에서 유고스타, 유산슬, 라섹, 유르페우스, 유DJ뽕디스파뤼, 닭터유 등 다양한 캐릭터 즉 ‘부캐’에 도전했다. 과거 《무한도전》이 예능에 캐릭터 플레이라는 영역을 개척했었는데, 그 캐릭터를 전면화한 것이다. 이것이 인터넷 ID에 익숙하고 B급 놀이를 선호하는 젊은 층의 취향과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부캐 열풍이 일어났다. 싹쓰리에선 유재석이 유두래곤, 이효리는 린다G, 비는 비룡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캐릭터 플레이와 더불어 가요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것도 《무한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무한도전》은 다양한 특집을 진행했었는데 그중에서 가요제가 대표 기획 중 하나였다. 특히 1990년대 가요제 특집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바 있다. 또 유재석 등 멤버들이 신곡에 도전하는 것도 가요제 특집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번 싹쓰리를 통해 1990년대 노래들이 소개되고, 유재석이 신곡에 도전하자 《무한도전》의 추억이 소환된 것이다.

 

혼성그룹과 옛날식 댄스음악이 오히려 신선감 자아내

싹쓰리는 1990년대 추억을 재현하는 것이지만 현시점에선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 측면도 있다. 바로 혼성그룹의 희소성 때문이다. 90년대엔 쿨, 코요테, 잼, 철이와 미애, 룰라, 유피, 영턱스클럽, 자자, 스페이스A 등 수많은 혼성그룹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젠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그래서 혼성그룹 싹쓰리가 단지 옛 기억의 소환뿐만 아니라 신선한 새 콘텐츠로 느껴지는 것이다.

음악도 그렇다. 요즘 음악은 미국 음악과 너무 가까워져서, 한국 음악에 한국인이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렇게 팝과 가까워진 덕분에 방탄소년단과 같은 글로벌 한류가 나타난 장점도 있지만, 우리 음악이 우리 감성을 온전히 채워주지 못한다는 허전함도 있다. 《미스터트롯》의 ‘뽕끼’에 국민적 호응이 나타난 데도 이런 허전함이 영향을 미쳤다.

싹쓰리의 음악도 그 허전함을 채워줬다. 《놀면 뭐하니》가 처음에 1990년대식 댄스음악을 표방하자 시청자들이 열렬히 환영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중반에 요즘 트렌드를 접목한다면서 최근 음원차트에서 잘나가는 젊은 뮤지션들과 힙합 뮤지션들을 초빙해 그들의 색깔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때 시청자들이 반발했고 결국 온전히 1990년대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돌아갔다.

이런 시도가 우리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세계화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미국 음악처럼 변해 가면 우리 음악이 우리에게 낯설어진다. 요즘엔 세대별·집단별로 히트곡이 세분화됐지만 1990년대엔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대형 히트곡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의 보편적 감성에 부합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음악들과 혼성그룹이라는 팀 형식의 부활이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것이고, 우리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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